관계를 끊는다는 것과, 유지한다는 것

광주에서 시작된, 행정 신뢰 붕괴 이후의 생활 기술

by Peppone



광주에서 살면서,

나는 행정이 사람을 보호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학습했다.


안전사고는 잦았고,

사고 이후의 대응은 늘 늦었으며,

행정은 설명보다 절차를 앞세웠다.

부당한 압박과 불합리한 처분은

예외가 아니라 하나의 패턴처럼 이어졌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 도시에서 산다는 일은

물리적 위험만이 아니라

심리적 노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행정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사람은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흔들린다.

모든 것을 끊고 떠나고 싶어지거나,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체념 속에서

몸을 굳힌다.


그러나 현실은 대개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떠날 수 없는 상태에서,

혹은 당장 떠나지 않기로 선택한 상태에서

사람은 관계를 재조정하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


이 글은 광주에 대한 항의문이 아니다.

순응의 기록도 아니다.

한 도시에서 붕괴된 신뢰를 출발점으로,

도시 행정 일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활 기술을 정리한 글이다.



1. 도시와 어디까지 관계를 끊을 것인가


끊어야 할 것은 도시 그 자체가 아니라,

도시가 제공한다고 약속해온 허상이다.


첫째,

행정이 시민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끊는다.

광주에서든, 다른 어떤 도시에서든

이 기대는 종종 분노로 돌아온다.

분노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개인을 더 오래 노출시킨다.

기대하지 않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둘째,

행정으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끊는다.

도시 행정의 언어는

시민을 설득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언어는 대개

책임을 최소화하고 절차를 유지하기 위한 장치다.

이 구조 안에서 납득은 목표가 아니다.

기록과 증거만이 유효한 언어다.


셋째,

정의가 즉각 작동할 것이라는 시간 감각을 끊는다.

도시 행정의 시간은

개인의 삶의 속도와 맞지 않는다.

이 불일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삶의 리듬은 계속해서 침식된다.



2. 그럼에도 유지해야 할 최소한의 관계


도시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세금, 재산, 주소, 인허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일정 수준의 접속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유지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형식적 관계.

• 말로 설득하지 않는다.

•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 전화보다 문서를 남긴다.

• 즉각 반응하지 않고, 정해진 리듬으로 대응한다.


행정은 사람을 상대할 때

가장 폭력적으로 작동한다.

이것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행정 전반의 속성이다.

문서와 절차로만 만날 때,

비로소 행정은 개인으로부터 한 발 물러난다.



3. 신체와 생활 리듬을 행정으로부터 분리하는 법


도시 행정이 가장 깊이 침투하는 지점은

정신이 아니라 신체의 리듬이다.


불시에 울리는 전화,

끝을 알 수 없는 대기,

언제 다시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긴장.


광주에서 이 감각을 처음 배웠지만,

이 감각은 어느 도시에서나 반복된다.


이때 필요한 것은 해결이 아니라

분리다.


첫째,

행정에 대응하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제한한다.

하루 중 특정 시간만

도시와 행정을 다룬다.

그 외의 시간에 행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한다.


둘째,

신체 감각을 회복하는 일과를 고정한다.

걷기, 씻기, 먹기, 잠자기.

이 기본 리듬은

행정의 일정과 겹치지 않게 배치한다.

신체가 먼저이고,

도시는 나중이다.


셋째,

‘항상 대응 중인 상태’에서 벗어난다.

항상 준비된 사람은

항상 노출된 사람이다.

준비는 정해진 시간에만 한다.



4. 한 도시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기


광주에 남아 있다는 것은

광주 행정을 신뢰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느 도시든 마찬가지다.


그것은

내 삶의 일부를 아직 이 장소에 두고 있다는 뜻이고,

도시에 맡길 영역과

내가 직접 지켜야 할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겠다는 선택이다.


도시는 배경이 될 수는 있어도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행정은 관리 대상이지

삶의 기준이 아니다.



맺으며


행정에 대한 신뢰가 붕괴된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광주에서든,

어떤 도시에서든.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은 영역을 정확히 가르는 일이다.


몸의 리듬,

일상의 감각,

나의 시간.


그 영역만큼은

도시도, 제도도

침범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도시를 떠나지 않고도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며,

행정과 함께 살되

행정에 잠식되지 않는

현실적인 생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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