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을 허락받은 사람의 생존에 대하여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조금만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주 먼 과거까지 갈 필요도 없다. 중세 같은 시절이었다면 나는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유를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태도, 구조에 잘 들어맞지 않는 감각, 혼자 있으려는 성향 같은 것들은 언제나 위험한 표식이 된다. 이해되지 않는 여자를 부르는 말은 늘 같았다. 마녀. 태워 죽이는 방식이 잔혹해서라기보다, 그렇게까지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회였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는 아마 타서 죽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어릴 때 나는 집안 어른들이 모이는 자리를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명절이나 제사 날이면 풍경은 늘 같았다. 부엌에는 여자 어른들이 있었고, 거실에는 남자 어른들이 있었다. 여자 어른들은 끊임없이 요리를 하고, 치우고, 다시 만들었다. 그 음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실로 나갔다. 그 일을 돕는 것도, 계속 그 일을 맡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보였다.
내 또래나 조금 위의 사촌언니들, 언니들은 그 일을 도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좀 컸잖아, 가서 거들어야지.” 나는 어리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빠져 있었다. 부엌에도, 거실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애매한 위치. 이상하게도 나는 그 자리가 편했다.
그러다 어느 날, 힘도 좀 붙고 키도 큰 사촌언니가 나에게도 부엌에 와서 일을 도우라고 말했다. 이제는 너도 할 수 있지 않냐는 말이었다. 그때 아빠가 말했다. 하지 말라고. 너는 하지 말라고. 사촌언니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 나중에 요리를 잘해야지, 잘하려면 지금부터 배워야 한다고.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해봤자 남 좋은 일이다. 요리 잘하고 그런 일을 잘하면, 결국 계속 그런 일만 하게 된다. 그러니까 하지 마라.
그 장면을 나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말이 내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그때는 몰랐지만, 숨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처음으로 나를 그 역할에서 빼내주었다는 감각. 너는 반드시 저쪽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는 어른의 목소리. 그게 얼마나 드문 일이었는지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
아빠는 나에게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자주 이런 말을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 그게 행복이라고. 엄마는 그 말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선택하는 모든 걸 그대로 지켜보며 지지해주었다. 묻지 않았고, 재촉하지 않았고, 방향을 대신 정해주려 하지도 않았다. 그 침묵은 방관이 아니라 신뢰에 가까웠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자랐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꽃일을 한다. 재미있어서 한다. 손으로 만지고, 만들고, 계절을 느끼는 일이 좋다. 하지만 이 일은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일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돈이 필요할 때면 나는 입시학원 강사를 했다. 단기 알바에 가까운 방식이었다. 필요한 만큼 벌고, 돈이 모이면 바로 그만두었다. 다시 필요해지면 또 일을 했다. 그렇게 20대에는 꽤 큰 돈을 만지기도 했다. 그 돈은 대부분 쇼핑하고 쓰는 데 썼고, 여행 가는 데 썼다. 미래를 위해 모으기보다는 그때의 나를 살리는 데 썼다.
그래서 나는 전형적인 백수도 아니고, 안정적인 직장인도 아니었다. 고정된 궤도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사람. 필요하면 뛰어들고, 충분해지면 빠져나오는 방식. 아빠는 아마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체계적으로 쌓아 올리는 타입이 아니라는 것도, 대신 순간적으로 집중해서 벌고, 쓰고, 이동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그래서 나를 보고 엉뚱한데 재밌다고 했는지도 모른다. 기대치가 아주 높았던 것 같기도 하다. 웃기게도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아빠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않았다는 것도, 번듯한 직업명이 없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개인을 좋아해 주었다는 걸. 조건 없이, 결과 없이. 그건 사랑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할 수 없는 태도였다.
나는 여성이고, 자식을 낳지 않았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 구조는 나에게 웃기게 느껴진다. 잘하면 계속 그 일을 하게 되는 구조,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배치. 나는 어릴 때부터 그 자리에 서지 않겠다는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아빠는 그 감각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지켜주었다.
그리고 엄마는, 말없이 그 모든 걸 받아주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 왔을 때, 가장 무거운 책임을 결국 내가 혼자 지게 되었을 때, 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누군가 대신 짊어져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혼자서도 버틸 수 있는 사람으로 이미 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을 허락받은 사람은, 그 선택의 결과도 스스로 감당하게 된다.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배웠다.
그 시간은 길었고, 조용했고, 누구에게도 쉽게 설명할 수 없었다. 도망칠 수 있는 구조도 있었고, 기대어 쉴 수 있는 자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지 않겠다고 선택한 자리들이 있었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구조들이 있었다는 것을.
이 시대가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전히 여성의 선택은 쉽게 평가되고, 여전히 설명을 요구받는다. 특히 직업이 한 단어로 정리되지 않을 때는 더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결혼이 의무가 아니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으며, 삶의 궤도가 직선이 아니어도 살아 있을 수 있는 시대다. 나는 그 틈에서 아직 살아 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웃는다. 조금만 다른 시대였다면, 조금만 다른 집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겠구나. 그래서 이 삶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가능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 나는 여전히 엉뚱하고, 여전히 고정된 직업명이 없고, 여전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는 충분히 사랑받았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가장 무거운 시간을 혼자 통과해 왔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