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우리는 평온했고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었으며
특별히 설명할 필요가 없는 상태였다.
긴장은 사라졌고
의심도 줄어들었고
침묵조차 불편하지 않았다.
함께 있는 시간은
사건이 아니라 배경처럼 느껴졌다.
말하지 않아도 되었고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고
기다릴 이유도 없었다.
모든 것이 이미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기를 행복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변화가 멈춘 상태다.
파동이 완전히 겹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때처럼.
겉으로는 고요하지만
움직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관측할 수 없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를 알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예측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의 반응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일어났고
나 역시 그의 예상 밖으로 벗어나지 않았다.
놀라움이 사라지자
안정이 생겼다.
그리고 안정은
서서히 생기를 대체했다.
더 이상 서로를 발견하지 않았고
확인만 반복했다.
새로운 것은 없었지만
불편한 것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이 상태를 의심하지 않는다.
위험은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완전한 정지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서로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았고
떠날 가능성조차 상상하지 않았다.
이미 떠날 필요가 없는 상태였으므로.
모든 것이 충분했고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상한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고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가 제거된 것 같은 느낌.
감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정을 일으킬 요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
우리는 충돌하지 않았고
싸우지도 않았고
멀어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가 이미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모든 과정이 완료된 뒤
기계만 계속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나는 그 상태를 설명할 수 없었다.
문제는 없었고
불만도 없었고
고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수면 아래에서는
여전히 흐름이 존재하지만
표면은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가라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떠날 수도
가까워질 수도 없었다.
단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그 시절은
이미 끝난 뒤에 남은 고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