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존 ― 살아남음

by Peppone



끝난 것은 끝났는데, 끝내 남는 것들이 있다.

사람은 관계가 끝나면 감정도 함께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오래 남는 것은 대개 감정이 아니라 흔적이다. 말투 하나, 피로의 방식 하나, 어떤 인간을 식별하는 감각 같은 것들. 그것들은 관계가 끝난 뒤에야 몸 안에 정착한다.


나는 한동안 살아남았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너무 비장하고, 너무 피해자 같고, 지나간 일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만드는 표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그런 식으로 나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다. 견딜 만하면 견디고, 아니면 빠져나오고, 끝났으면 정리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오래도록 그냥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그런데 지나간 일 치고는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내가 남긴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남겨진 것들.

설명을 반복하다가 지치는 감각.

겉으로 다정한 사람을 보면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는 습관.

상대의 말보다 말의 결을 먼저 듣게 된 버릇.

분위기보다 구조를 먼저 보게 된 눈.

이상하게 오래 피곤한 사람 곁에서는 이유를 찾기 전에 먼저 물러서게 되는 몸.


그것들은 지나간 뒤에 생겼다.

정확히는, 지나간 뒤에야 이름을 얻었다.


나는 예전보다 빨리 안다.

무엇이 나를 닳게 하는지.

누가 사람을 편안하게 하지 못하는지.

누가 자기 감정에는 예민하면서 타인의 피로에는 둔한지.

누가 다정한 얼굴을 하고도 끝내 상대를 보지 못하는지.


이 감각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 번 생긴 감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처의 부산물일 수도 있고, 생존의 기술일 수도 있다.

어쩌면 둘 다일 것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멀쩡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는 일도 아니다.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고, 그것이 나를 조금 바꾸었고, 그럼에도 내가 계속 살아가는 상태.

나는 이제 살아남음을 그런 뜻으로 이해한다.


남아버린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나는 한때 내가 너무 늦게 알아봤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래 참았고, 너무 늦게 식별했고, 너무 점잖게 물러났다고.

조금만 더 일찍 화냈더라면, 조금만 더 차갑게 끊어냈더라면 덜 닳았을 거라고.

하지만 그것도 결국 지나간 뒤의 계산일 뿐이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방식으로 버텼고, 그 방식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러니까 잔존은 패배의 흔적이 아니다.

오히려 통과의 증거다.


내 안에 남은 감각들은 내가 약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실제로 어떤 시간을 통과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실제로 피로했고, 실제로 짜증났고, 실제로 이상했고, 실제로 닳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축소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남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사람은 상처를 통해 나빠지기도 하지만, 정확해지기도 한다.

나는 예전보다 덜 순진할 것이다.

덜 쉽게 믿을 것이고, 덜 쉽게 감동할 것이다.

하지만 대신 더 빨리 안다.

무엇이 진짜 다정함이고, 무엇이 다정한 척인지.

무엇이 인간적인 흔들림이고, 무엇이 자기연민의 반복인지.

무엇이 이해할 수 있는 결함이고, 무엇이 계속 곁에 두면 안 되는 구조인지.


이것은 냉소가 아니라 식별이다.

나는 더 이상 모든 것을 이해로 덮지 않는다.

애잔함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순간의 만감이 사람의 품성을 대신하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누군가가 상처 입기 쉬운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타인을 덜 해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이런 것들이 내 안에 남았다.

그리고 아마 오래 남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그것들을 없애고 싶지 않다.

없애버리면 다시 같은 방식으로 속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시 같은 종류의 피로를 사랑이라고 오해할 것 같기 때문이다.

다시 다정한 외피에 오래 머물다가, 정작 내 몸이 먼저 망가지는 일을 반복할 것 같기 때문이다.


살아남음은 그래서 망각이 아니다.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가진 채로도 계속 사는 일이다.

피로를 알게 된 뒤에도 사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식별하는 법을 배운 뒤에도 자기 자신까지 딱딱해지게 두지는 않는 일이다.

무너진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무너짐이 내 전부가 되게 하지는 않는 일이다.


나는 아직도 어떤 장면들을 떠올린다.

어떤 표정, 어떤 말, 어떤 피로.

가끔은 여전히 짜증나고, 가끔은 여전히 어이가 없고, 가끔은 내가 왜 그런 인간에게 시간을 썼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 기억들은 나를 전부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것들은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잔해들보다 크다.


살아남았다는 말이 이제는 조금 덜 부담스럽다.

그것은 거창한 승리가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닳았지만 없어지지 않았고, 피로했지만 무너지지만은 않았고, 늦게 식별했지만 결국 식별해냈다.

그리고 한 번 식별한 이상, 다시는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끝난 뒤에도 남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이제 잔존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바로 그 남아버린 것들 덕분에

나는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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