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는 멀리 떠내려가는 일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아닌 쪽으로 자꾸만 밀려나는 일에 가까웠다.
그 시기의 나는 정확히 그랬다.
내 의지는 이미 뒤로 물러나고 있었는데, 관계의 형식은 자꾸만 다른 쪽으로 나를 끌고 갔다.
나는 이미 지쳐가고 있었고, 가능한 한 조용히 빠져나오고 싶었는데, 그는 그 기류를 읽지 못했다.
아니, 읽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보자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그가 찾아왔고, 그가 중간 지점을 정했고, 내가 못 간다고 하면 기분이 상했다.
한동안은 그것을 열심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애정이라기보다 자기 기세에 가까웠다.
자기 쪽에서 먼저 달아오르고, 자기 쪽에서 먼저 동선을 짜고, 자기 쪽에서 먼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나는 자꾸만 그 사람이 만든 흐름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한 번은 남원에서 만났다.
추어탕이 맛있었다.
배가 부르니 졸음이 오글오글하게 밀려왔고, 연못가에 앉아 잉어들에게 사료를 던져주던 시간이 그날 가장 즐거웠다.
날씨는 좋았고, 꽃잎은 날리고 있었고, 나는 그냥 그 정원 안에서 잠들고 싶었다.
그 사람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대화를 한다고 해도 이미 목적은 다른 데 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자꾸 재촉했다.
빨리 움직이려 했고, 내 리듬을 기다리지 못했다.
나는 더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이 그렇게까지 거슬릴 이유는 없었을 텐데, 그는 곧장 기분이 상했고 주차장에서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
우리는 각자의 차를 타고 왔는데, 그는 그대로 먼저 가버렸다.
그리고 어김없이 문자가 왔다.
그만하자.
나는 그 문장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땡큐다.
답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끝은 늘 오래가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연락이 왔다.
자기 쪽에서 먼저 끝내고, 자기 쪽에서 먼저 다시 돌아오는 방식.
한 번은 출장길에 발이 묶였다고 했다.
공항에서 연착을 겪고 있다며, 자기가 벌을 받는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그 말이 우스워서, 그래, 벌 받았네, 라고 답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장면은 꽤 웃긴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빤해서 웃긴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사람.
멀리 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은 밴쿠버로 출장을 갔다.
그곳은 내게도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오래전 내가 어학연수를 했고, 내 시간이 한 조각 머물러 있던 곳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사진을 보내왔다. 실시간으로.
나는 그 풍경을 알아보았다. 유비씨 근처는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순간에도 이상한 이중감정이 있었다.
반가움과 무관심이 동시에 왔다.
내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를 다른 사람의 화면으로 다시 보는 일은 잠깐 낯설고도 우스웠다.
그가 그 장면을 내게 보내는 마음이 아주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관계를 더 깊게 만들지도 않았다.
장소는 바뀌어도 사람의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 무렵 그는 새 차를 끌고 나를 보러 오기도 했다.
함께 선산에 가주겠다고 했다.
나는 작업복 차림이었고, 오래전 아버지와 함께 갔던 숲길 쪽으로 올라갔다.
그 길에는 예전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한때는 사람 곁을 순하게 맴돌며 길을 안내하듯 앞서 가던 개가 있었고, 나는 그 온순한 풍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길목에 개가 있었다.
같은 개였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내가 예전의 기억을 그 위에 덧씌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방심했다.
그 개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더니 내 손을 물었다.
빵꾸가 날 만큼 선명하게.
나는 꽤 아팠다.
손은 금세 붓고 욱신거렸다.
그런데 더 이상했던 것은 그의 반응이었다.
걱정보다 먼저 짜증이 왔고, 배려보다 먼저 기분이 상한 사람처럼 굴었다.
결국 상처는 닦이고 덮였지만, 장면은 덮이지 않았다.
이빨 자국, 부어오른 손, 응급실의 형광등, 그리고 옆에서 흘러나오던 말.
상처는 한 군데만 남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고향집을 지키며 사는 방식까지 자주 훈계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런 데에 계속 있으면 안 된다고, 마치 내 삶의 자리를 정리해줄 수 있는 사람처럼 쉽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늘 이상했다.
내가 다른 선택을 못 하는 현실은 감당하지 않으면서, 내가 서 있는 자리만 쉽게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은 물었다.
그럼 네가 집을 사줄래.
그러면 그는 곧바로 물러섰다.
자기에게 무슨 그런 돈이 있냐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물론 나는 정말 집을 사달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말의 가벼움을 되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타인의 삶의 조건은 떠안을 수 없으면서, 타인의 삶의 자리만 문제 삼는 사람.
나는 그 태도에서도 늘 같은 것을 보았다.
돌이켜보면 그는 늘 그런 식이었다.
끝내는 사람도 그였고, 다시 불러들이는 사람도 늘 그였다.
멀어지는 척하는 사람도 그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문자를 보내는 사람도 그였다.
그러니까 그 관계에는 처음부터 안정된 결론이라는 것이 없었다.
함께 정리되는 끝이 아니라, 그의 기분과 필요에 따라 끊겼다가 다시 이어지는 임시의 종결만 반복되었다.
표류에는 대단한 장면이 없다.
오히려 사소한 일들이 계속 방향을 빼앗는다.
갑작스러운 방문, 내 상태를 지우는 계획, 내 리듬을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 제 기분으로 끝내고 제 기분으로 다시 돌아오는 반복.
그런 것들이 쌓이면 사람은 어느 순간 안다.
나는 지금 그냥 버티고 있구나.
그 시기의 나는 바로 그런 식으로 살아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더 잠기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하루를 넘기는 사람처럼.
그래서 표류는 방황이 아니었다.
그것은 방향을 잃은 채로도 계속 살아내야 하는 시간의 다른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