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약국이 있던 자리에 꽃가게를 열었다.
꽃처방. 그리고 Wunderkammer 약전.
이제 3년쯤 되었나.
나는 그 자리에 꽃을 놓기 위해 생각보다 오래 준비했다. 국가공인 자격증을 따고, 도시농부 전문가 과정을 이수하고, 식물을 다루는 전반의 지식과 감각을 익혔다. 누군가는 꽃가게를 예쁜 가게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내게 그것은 단순한 업종 변경이 아니었다. 약을 건네던 자리에서 꽃을 건네는 일. 아버지의 시간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내 방식으로 그 자리를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은 언제나 대단한 실패나 거대한 사건이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침범이 반복되는 일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매일 겪는 사람에게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들. 나는 금동에서 그런 것들에 오래 노출되어 왔다.
비 오는 밤이면 내 건물 앞 신호등의 빛이 통유리창을 타고 실내까지 들어온다. 암막 커튼을 쳐두지만, 가끔 그걸 잊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2층 서재에서 잠들기 직전의 얼굴 위로 빨간 불이 비치고, 조금 뒤에는 파란 불이, 다시 노란 불이 비친다. 그 순간마다 나는 오래된 괴담의 문장을 떠올린다. 빨간 휴지 줄까, 노란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사람들은 그 말을 장난처럼 기억하지만, 내게 그것은 웃긴 문장이 아니다. 닫혀 있어야 할 공간 안으로 바깥의 신호가 들어오는 방식. 쉬어야 할 시간 속으로 외부의 색이 침입하는 방식. 그건 괴담보다 더 현실적이고, 그래서 더 질이 나쁘다.
창밖을 보면 유리문에 대고 소변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 골목길에 와서, 금동에 와서, 남의 가게 문에다 대고 소변을 본다. 취한 목소리로 “금동이 예전에 아주 유명했는데” 하고 떠들면서. 예전의 금동을 안다는 듯이 말하지만, 정작 지금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은 한 장소를 모욕하는 일뿐이다. 어떤 밤에는 저들이 소변만 보고 가는지, 다른 것도 갈기고 가는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냄새와 흔적은 남고, 치우는 것은 늘 여기 남아 있는 사람의 몫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한순간이겠지만, 그 한순간의 무례는 내 일상에 오래 들러붙는다.
그리고 그 위에, 잘못된 행정을 반복하면서도 책임지지 않는 광주광역시 동구청의 공무원들이 있다. 2년마다 로테이션되고, 이름은 바뀌는데 태도는 바뀌지 않는다. 정확히 보지도 않고, 정확히 듣지도 않고, 끝내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감당은 늘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사람에게만 떠넘긴다. 설명하라, 증명하라, 다시 내라, 다시 기다리라. 꽃을 다루기 위해 만든 자리에서 나는 꽃보다 더 자주 대응과 기록과 반박과 증명을 다루고 있다. 돌봄의 언어보다 방어의 언어를 더 많이 쓰게 되는 날이 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고향 집에 진절머리를 느끼기 시작했다.
고향이라는 말에는 원래 보호와 안식이 따라붙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장소는 오래 살수록 더 낯설어진다. 아니, 장소가 낯설어진다기보다 그 장소를 둘러싼 인간들의 무례와 구조의 무책임이 사람을 소진시킨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자리인데도, 내가 다시 손을 들여 꽃을 놓은 자리인데도, 나는 이곳에서 점점 더 쉬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나는 약의 자리에 꽃을 놓았다.
그 문장은 아직도 내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꽃을 놓는 일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무심하게 불쾌한 광선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문 앞에 싸고, 행정은 책임을 흐리고, 고향은 더 이상 저절로 안식처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꽃을 다루면서 동시에 기록한다. 무엇이 이 자리를 아름답게 했는지보다, 무엇이 이 자리를 계속 훼손하는지를. 무엇이 나를 이곳에 남게 했는지보다, 무엇이 나를 이곳에 진절머리나게 하는지를.
아마 그래서 나는 금동에서 쓴다.
좋아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견디기 위해서도 쓴다.
한 장소를 사랑했던 사람이 그 장소에 진절머리를 느끼게 되는 과정까지, 끝내 적어두기 위해 쓴다.
약의 자리에 꽃을 놓았지만, 그 꽃만으로는 다 덮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 자리에 있다.
밤마다 스며드는 신호의 색을 견디며,
유리문 앞의 모욕을 치우며,
금동에서, 여전히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