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에 있었다

by Peppone

나는 사랑을 감정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다.

이건 체념도 아니고, 상처받아서 하는 말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태도다.


아빠가 늘 하던 말이 있다.

갈 데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으니까.

그래서 그냥 이 집에 있었다고.


그 말은 외로운 말이 아니었다.

어디에도 쓸데없이 몸을 던지지 않겠다는 말이었고,

누군가를 이유로 자기 삶을 흔들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아빠는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남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렇다.

그래서 10년을 이렇게 있었다.

도망치지도 않았고,

어디로 가겠다고 설레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붙잡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그냥 여기 있었다.


아빠가 죽고 나서

사람들은 자꾸 “그래도 살아야지” 같은 말을 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 안에는 늘 쓸데없는 감정 과잉이 섞여 있었다.

아빠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사람이다.


아빠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지금 살아 있으면 사는 거고,

움직일 이유가 없으면 가만히 있는 거다.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그걸 버팀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희생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냥 자리였다.


아빠는 사랑을 떠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신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

갈 이유가 없으면 안 가고,

필요하면 움직이고,

쓸모가 다하면 물러나는 사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아빠는 결코 쓸모가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쓸모라는 말 자체가

아빠에게는 덮어씌워지지 않는다.


부모라는 존재는

쓸모로 남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로 남는 사람이니까.


내가 막내였기 때문에

아빠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형제들 중 가장 짧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아빠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아빠는 그걸 미안해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말로 다정하게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분명했다.


그 미안함은

보상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말하지 않는 방식의 책임에 가까웠다.

같이 있는 시간에

쓸데없는 감정을 덧붙이지 않고,

필요한 것만 정확히 남겨두는 식으로.


그래서 아빠는

쓸모를 다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역할을 다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기 있다.

갈 데가 없어서가 아니라,

오라는 데가 없어서가 아니라,

움직일 이유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아빠가 있던 방식 그대로.


이 집에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강아지와 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