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가난

설명해야 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사람이 가난해지는 방식

by Peppone

가난해지면

사람들은 먼저 이해를 요구한다.


이해해달라는 말은

대개 사정 설명으로 시작하지만,

끝은 항상 태도의 요구로 돌아온다.


조금만 참아라.

조금만 맞춰라.

조금만 열어라.


그 말들은

돈이 없는 상태보다 먼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든다.



경기가 나쁠 때 시장을 걸으면

나는 그걸 숫자로 느끼지 않는다.


먼지가 내려앉은 어르신용 슬리퍼,

낡은 침구를 파는 가게,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는 상인.


눈길만 주었을 뿐인데

“들어와서 보라”고 화를 내고,

가격을 묻는 사람에게

왜 가격만 묻느냐며 소리를 친다.


그 장면에서

나는 성격이 아니라

상태를 본다.


팔리지 않는 시간,

쌓인 침묵,

설명해도 달라지지 않았던 날들.


이해는

여기서 이미

소진되어 있다.



가난은

돈이 없는 상태라기보다

설명해야 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상태에 가깝다.


왜 안 사는지,

왜 말을 안 거는지,

왜 들어오지 않는지,

왜 오늘은 문을 닫았는지.


설명은

처음엔 친절처럼 보이지만,

반복되면 굴욕이 된다.


그래서 가난해질수록

사람들은 먼저 화를 낸다.


이해받지 못할까 봐서가 아니라,

이미 너무 많이 이해했기 때문에.



나는 꽃가게 문을 닫아두고 있다.

주문도 받지 않는다.


꽃을 잡을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척한다.


그리고 곧 묻는다.

그럼 언제 다시 여느냐고.


이해는

항상 조건을 달고 돌아온다.



길가에 가게가 있고,

사람이 안에서 침묵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그 침묵을

무례로 오해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왜 말 안 하냐고 화를 낸다.


그건 대화가 아니다.

자기 불안을 상대에게 떠넘기는 방식이다.


가난한 상태에서는

침묵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이해라는 말을

조심해서 쓴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종종 가장 손쉬운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해해달라는 말은

대부분

경계를 낮추라는 요구다.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건

돈이 생기는 일이 아니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늘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쪽으로 가고 싶다.


그래서

꽃을 팔지 않는 날에는 팔지 않고,

문을 열고 싶지 않은 날에는 열지 않는다.


이해를 구하지 않고,

이해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게

내가 선택한

조용한 쪽이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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