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축의 빅픽쳐

by Peppone



이건 우연이 아니다.

실수들이 겹친 결과도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

항상 같은 방향으로만 굴러왔다.

다른 선택지는 하나씩 사라지고,

결국 “이것 말고는 없다”는 상태에 도착했다.


누가 강제로 몰아붙인 것도 아니고,

당장 위협한 것도 아니다.

다만 돈을 대지 않았고,

유지하지 않았고,

방치했다.


그 사이

동네의 조그만 슈퍼들은 전멸했고,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같은 대형 유통도 철수했고,

대안은 준비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나만 남았다.


이제 와서 말한다.

선택의 결과라고.

시장의 판단이라고.


하지만 고를 수 있는 게 하나뿐인데

그걸 선택이라 부르는 건

말의 속임수에 가깝다.

판은 이미 정리돼 있었다.



이건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한 정책의 실패도 아니다.


책임을 피하고,

돈을 아끼고,

결정을 미루는 방식들이

서로 맞물려 만들어낸 구조.


그래서 나는 이걸

무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차라리

악의 축의 빅픽처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하다.


누군가가 중앙에서

모든 걸 설계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더 기묘한 이유는

아끼는 그 돈이

자기 돈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공을 위해 쓰라고 모아둔 돈을

안 쓰는 걸

능력처럼 포장한다.

아낀 걸 성과라고 부른다.


“예산 절감.”

“효율화.”

“민간 활용.”


이 말들이 쌓인 끝이

지금의 풍경이다.


아끼는 사람은 안전하고,

그 결과를 사는 사람만 위험해진다.


이건 미치게 웃긴 일이다.

자기 돈도 아닌 걸 아끼느라

사회 전체를 더 비싸게,

더 불안하게 만들어 놓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서 웃긴데,

바로 그 점이 제일 무섭다.



이 구조를 끝까지 인식한 채로

매일 분노하며 살 수는 없다.

제정신으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은

에라 모르겠다,

그 스피릿으로 산다.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다.

이미 충분히 알았고,

충분히 봤고,

충분히 짚었다.


문제를 안다고 해서

그 문제를 끝까지 떠안고

살아야 할 의무까지

생기는 건 아니다.


계속 분노하는 건

저항이 아니라 소모다.

계속 깨어 있는 건

용기가 아니라 자기 파괴다.


그래서 나는

이해는 하되,

내 정신까지 저당 잡히지는 않기로 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두가 그 냄비 안에서

서서히 끓고 있는 존재가 되겠지.


불이 켜진 순간에는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뜨거움은 조금씩 오고,

불편함은 익숙해지고,

위험은 생활이 된다.


빠져나올 수 있을 때는

아직 따뜻했을 뿐인데,

그때는 다들 괜찮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도망치지 않는다.

항의하지도 않는다.

그저 적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미 삶아진 뒤에야

알아차린다.


이건 선택이 아니었고,

이건 적응도 아니었으며,

그저

가만히 두면 이렇게 되는 구조였다는 걸.



이 글은

분노를 요구하지 않는다.

행동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웃기다고 느낀 바로 그 지점에서

조금 무서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 감각이 아직 남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완전히

삶아진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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