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 사라지는 방식

하청, 재하청, 그리고 끝내 남지 않는 이름들

by Peppone

문제가 생겼는데 책임자를 찾기 어렵다면,

대개 구조가 그렇게 설계돼 있다.


요즘 공공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이 그렇다.

정책은 위에서 결정됐다고 하고,

실행은 외부 기관이 맡았다고 하고,

현장은 또 다른 하청업체가 담당했다는 식이다.


문제가 터지면 항상 같은 말이 나온다.

“지침은 있었다.”

“관리 감독 역할은 수행했다.”

“운영은 위탁기관 소관이다.”


결국 남는 건

사과문 한 장과

‘재발 방지 대책’이라는 익숙한 문장뿐이다.



이 구조는 특정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린이집 사고가 나면

보육교사는 현장에서 배제되고,

위탁 법인은 계약을 해지당하거나 이름을 바꾼다.

지자체는 관리 체계를 점검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위탁이 시작된다.


복지시설도 비슷하다.

직접 운영하지 않고 위탁을 준다.

위탁기관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하청을 준다.

현장은 최소 인력으로 돌아간다.

사고가 나면

책임은 현장으로 내려가고,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도시 안전 문제도 다르지 않다.

점검은 용역이 하고,

보수는 다른 업체가 맡고,

관리는 또 다른 부서 소관이다.

사고가 나면

어느 단계에서도 “우리가 결정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단계가 늘어날수록

책임은 분산되고,

결정자는 보이지 않게 된다.


직접 하지 않으면 책임이 줄어들고,

하청이 많을수록 실패는 개인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사람은 많은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공무원 수가 늘어난 이유를

업무 증가로 설명하지만,

체감은 다르다.


문서는 늘고,

결재 단계는 늘고,

용역은 더 늘어난다.

그 사이에서 문제는 쪼개지고,

책임은 흐려진다.



이 구조는 민간이라면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사고가 나면 계약이 끊기고,

손해배상이 따르고,

회사는 퇴출된다.


하지만 공공에서는 다르다.

실패는 구조 탓이 되고,

구조는 다시 용역으로 보완된다.


그래서 점점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건 무능의 문제가 아니라,

실패해도 괜찮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하청이 문제인 게 아니다.

책임까지 함께 넘기는 하청이 문제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고,

그럼에도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 시민은

항상 결과만 감당한다.

설명은 복잡하고,

책임자는 끝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누가 옳은지보다

이렇게 묻게 된다.


이렇게 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라면,

그건 이미 고쳐질 의지가 없는 시스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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