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입력되지만 답변은 생성되지 않는다

by Peppone



나는 혼자 있을 때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대체로 멍하게 있는 편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시간이 가장 편하고, 아마 가장 안정적인 상태다.


질문은 내 안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상황이 만들어질 때만 발생한다.


사건이 생기고, 선택이 이루어지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지점이 오면

나는 질문을 한다.

감정이나 태도를 묻지 않는다.

누가 결정했는지,

그 결정이 가능했던 근거는 무엇인지,

책임이 어디에 귀속되는지를 묻는다.


나는 이런 질문을 비교적 정확하게 하는 편이다.

하지만 문제는 늘 그 다음이다.

제대로 답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사람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질문은 입력되지만, 답변은 생성되지 않는다.

대신 검토, 절차, 규정, 종합 고려 같은 문장들이 출력된다.

그것은 답변이 아니라 완충 문구다.

질문을 해소하지 않고, 흐름만 유지하기 위한 출력값이다.


정확한 질문을 실행하려면 권력이 필요하다.

흐름을 멈추게 하고, 상대를 응답 위치에 세우는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그보다 더 구조적이다.

답변을 생성하도록 설계된 주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현대의 시스템은 설명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지속을 위해 존재한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관리하고 분산시키는 쪽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질문이 정확해질수록,

응답은 줄어들고 회피 문장만 반복된다.


이런 구조 안에서

현실에서 발생하는 범죄, 비극, 슬픔, 고통은

더 이상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다.

개인의 악의나 불운으로 설명하려는 서사는

이미 작동 방식을 잃었다.

고통은 예외가 아니라 운영 비용이 되었고,

비극은 정상 작동의 부산물이 되었다.


더 서늘한 지점은 따로 있다.

이 상태를 무섭게 느끼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공포가 사건으로 오지 않고,

질서와 절차로 작동할 때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

그저 수긍한다.


나는 세대 공감에서도 벗어나 있다.

동년배에게서 공감을 찾지 못하고,

나보다 열 살 어린 세대가 오히려 더 낡아 보일 때가 있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벡터의 문제다.

같은 시간에 살아도,

사고가 향하는 방향이 다르면 공감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남용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때는 멍해지고,

상황이 요구할 때만 질문을 실행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질문은 응답 없이 종료된다.


이제는 안다.

질문이 무효한 게 아니다.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이 사회에는

그 질문에 답변을 생성하도록 설계된 구조가 없다.


질문은 입력되고,

시스템은 계속 작동한다.

응답 없이도.


나는 다시 멍해진다.

그건 회피가 아니라,

이 조건에서 가능한 가장 정확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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