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이 압류된 상태에서도 가능한 대응들

by Peppone



이 글은

대응 요령을 정리하기 위해 쓰이지 않는다.

통장이 압류된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를

사후적으로 미화하기 위해서도 쓰이지 않는다.


다만

그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든

응답을 끊지 않기 위해

어떤 대응들이 가능했는지를

기록한다.


통장이 압류되었다는 것은

돈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돈이 있음에도

접근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압류된 통장은

생활비 통장이었고,

고정비가 빠져나가던 통장이었으며,

월세가 입금되던 통장이었다.

그러나 그 기능들은

모두 동시에 정지되었다.


그 상태에서도

문서는 도착했다.

기한은 명시되어 있었고,

응답은 요구되었다.

압류는

절차를 멈추지 않았다.


이 조건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선택지였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었다.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지급 경로의 문제였다.

돈을 쓰는 행위 자체가

차단된 상태에서는

선임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법무사를 상시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필요할 때마다

즉시 비용을 지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일부 절차가 아니라

모든 절차를

직접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서면을 읽고,

사건번호를 확인하고,

기한을 계산하고,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 일은

선택이 아니라

남아 있는 유일한 경로였다.


그 결과

작성한 서면은

수백 장에 달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한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학위 논문을 쓸 때도

나는 충분히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작업은

그와는 다른 종류의 노동이었다.


논증을 위해 쓰는 글이 아니라,

탈락하지 않기 위해 쓰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속이 울렁거렸고,

말 그대로

토가 나올 것 같은 상태로

서면을 썼다.


이 과정에 대해

한 변호사인 친구는

이제 능력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이

칭찬이었는지,

욕이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능력이

선택이나 훈련의 결과가 아니라

피할 수 없어서 습득된 능력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상태를 유지한 것이 아니다.


응답을 끊지 않기 위해,

절차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필사의 정신력을 소진하며 버틴 것에 가깝다.


이 일은

1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이미 넘어선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개인에게 벌어져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통장은 막혀 있었지만

절차는 멈추지 않았다.

그 불균형 속에서

가능한 대응은

끝까지 개인에게 귀속되었다.


나는

그 상태에 있었다.

이 글은

통장이 압류된 상태에서도

응답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가능했던 대응들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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