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가 무너진 순간

by Peppone



204호 세입자로 인해 내가 체감한 감각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욕설을 퍼붓고 달려들어 뺨을 맞는 상황과 비슷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기도 전에 공격이 먼저 도착해 있었고, 이후에야 그 사람이 바로 그 세입자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사전에 어떤 말도 없었고, 동의나 허락을 구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동거인을 전입신고해 두었다는 사실 역시 그때 처음 확인했다.


나는 동거인 전입 사실을 알림을 통해 바로 확인했고, 직접 가서 확인했을 때 실제로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계약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거주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였지만, 갈등을 키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즉각적으로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판단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수도세를 포함한 관리 비용을 내가 부담하고 있는 구조에서, 계약 당사자 외 거주는 계약의 범위를 벗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만났던 세입자들이 주마등처럼 겹쳐 보였다.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는 이름들이 있다. 말투와 태도, 언어의 결이 닮아 있는 경우들이다. 겁에 질린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밀릴 것처럼 달려드는 태도, 모든 상황을 적대 구도로 밀어붙이는 방식이었다.


처음 계약을 체결했을 때, 204호 세입자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강릉 출신의 20대 여성이었다. 서울 생활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가진 사람처럼 보였고,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래서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고, 시세보다 낮은 조건으로 전세를 맞췄다. 최초 계약은 2년이었고, 이후 두 차례 재계약을 했다. 전세금은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시작일과 만료일은 분명했고, 이탈 없이 계속 거주했기 때문에 총 6년의 거주 기간이 형성된 계약이었다.


재계약을 할 때마다 세입자의 전세대출 연장을 위해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 주었다. 두 번째 재계약까지는 서면 계약서를 작성했다. 세 번째 갱신 시점에는 같은 조건으로 연장을 요청했고, 나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다만 이 세 번째 갱신은 서면 계약서 없이 카카오톡을 통한 명시적 합의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이후 세입자는 이를 묵시적 갱신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는 계약 구조에 대한 명백한 오해였다.


입주를 한 달 정도 앞두고 방을 직접 꾸미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고, 공실이었던 상태에서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둔 뒤라 이를 허락했다. 단 하나, 벽에 못만 박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벽에 못이 박혀 있었고, 창틀은 제거되어 있었으며, 화장실은 훼손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고 문짝까지 뜯겨 나가 있었다. 그 이후 6년 동안 나는 그 방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요구는 점점 많아졌다. 다른 세입자들과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을 텐데도, 다른 세입자들을 비난하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전달되었다. 나는 직접 확인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고, “알겠다”라는 최소한의 응답만 유지했다. 그것은 방임이 아니라 관리자로서의 거리 유지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선을 넘는 요구가 등장했다. 돈을 빌려달라는 말, 전세금에서 일부를 먼저 달라는 요구가 아무렇지 않게 나왔다. 전세금이 왜 네 돈이냐, 내 돈이지라는 말까지 들었을 때, 나는 이 문제를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붕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시점까지 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204호 세입자는 나에게 아무런 고지도 없이 전세금에 대해 이미 채권양도를 해둔 상태였다. 나는 전세금 전액이 자기 돈이라는 주장을 들으면서도,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대응하고 있었다. 그 구조를 알게 된 것은 나중에 법무사를 통해 변제공탁을 진행하면서 관련 서류를 확인했을 때였다.


204호 세입자가 자기 돈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금액은 전세금 전체가 아니라, 그중 약 23퍼센트에 해당하는 일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입자는 전세금 전액을 자신의 개인 통장으로 바로 입금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채권 구조를 무시한 채 집주인에게 이중변제를 강요하는, 구조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위험한 요구였다.


그 모든 일은 계약 만료 8개월 전에 이미 무단퇴거한 상태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열쇠도, 계약서도 반환되지 않은 채였다. 나는 감정을 섞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중변제의 위험을 내가 감수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계약 구조에 따라 은행의 반환계좌로 전액을 반환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였다.


2024년 10월, 해당 대출은행의 담당 과장과 직접 통화했고, 은행으로부터 공식 반환계좌를 안내받았다. 계약 만료 시점에 그 계좌로 반환하면 된다는 명확한 안내였고, 세입자 개인에게 직접 입금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확인했다. 반환이 가능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안은 분명히 그에 해당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세입자는 “이런 대화는 카카오톡에 다 남아 있으니, 문제 되면 고소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나는 왜 이 상황을 굳이 고소와 입증의 단계까지 끌고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책임 있는 반환 절차가 이미 정해져 있고, 그 절차를 따르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데, 왜 갈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만 사고가 흘러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무렵부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감이 급격히 쌓였다.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종류의 피로였다.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깨어나는 일이 반복됐고, 새벽에 휴대전화 알림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잠에서 깼다. 메시지를 확인하면 욕설에 가까운 문장이 이어져 있었다. 낮과 밤의 구분이 사라졌고, 몸은 계속해서 경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주변에서는 형사 고발이나 고소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소는 문제를 정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안을 완전히 분쟁의 단계로 밀어 넣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 사안의 핵심은 처벌이 아니라 정리였고, 나는 끝까지 절차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돌아보면, 그렇게 참고 설명으로만 대응했던 선택은 혹처럼 남았다. 상황을 키우지 않으려 했던 태도가 오히려 일방적 요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인내의 실패라기보다, 책임을 지는 쪽만 끝까지 절차를 붙들고 있을 때 발생하는 비대칭의 문제였다.


이 단독주택의 단독 소유자인 나는, 수익이 거의 발생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주택 하나로 인해 매년 상당한 보유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납부하고 있다. 전세사기라는 말은 이 구조에 적용될 여지가 없다. 전세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는 제도이고, 그 제도를 성실히 유지해 온 집주인도 분명 존재한다.


10년이 넘게 거주한 세입자도 있다. 그 세입자는 이 집에서 석사와 박사 논문을 썼고, 내가 “이런 소동으로 불안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을 건넸을 때에도 늘 하던 대로 “감사하다”는 말만 했다. 조용히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이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세입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집을 거쳐 간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자신이 어떤 조건에서 거주했는지를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떠날 때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늘 앞마당과 뒤뜰을 정리하고, 나무를 손보고, 식물들이 집을 설명하도록 두었을 뿐이다.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니다. 비례가 무너진 지점, 그리고 설명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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