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기록한다

by Peppone



연관된 사건 중 하나에서

재판장은 내 말을 멈추게 했다.


“선생님,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자료를 충분히 보았습니다.”


그 말은

발언을 제지하는 표현이 아니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나는 그 순간,

이 절차에서

내가 부족해서 침묵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았다.



나는 질문하지 않았다.

상대를 향해 따지지도 않았고,

왜 그러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 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다.


혼자서 자료를 정리했고,

요구된 형식에 맞춰 제출했으며,

말 대신

기록으로 응답했다.



이미 공탁으로 변제된 동일한 채권을 근거로

총 13건의 소송이 제기되었다.

모두 같은 채무자 이름으로였다.


그중 타채 사건은 두 건이었고,

그 절차를 통해

통장은 반복적으로 압류되었다.


이미 공탁을 마친 이후였고,

강제집행 정지 결정문도 있었지만,

그 상태는

생활의 차단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이건 압박이 아니라

생활의 차단에 가까웠다.



그 재판부는

동일채권에 대해 권한이 없음에도,

절차를 남용하는 사람의 절차 역시

형식적으로 존중하며

끝까지 따라갔다.


그 판단이 옳았는지는

지금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운이 나빴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입자를 만났다는 점에서.



그 과정에서

내 건강은 분명히 손상되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고성을 지르지 않았고,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정신은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았고,

자다 깨어

숨이 막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생활을 중단하라는 신호를

장시간 견뎌야 하는 상태.


그럼에도

나는 요구된 서면을 제출했고,

절차를 이행했으며,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이 사건을

통과했다.



이 나이까지

이 몸 하나로 살아오면서

내가 고생을 안 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표면만 보면

사람들은 나를

상당한 부자로 볼 수도 있다.


액면가로만 보면

주변에 나만큼의 부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숫자들은

내가 통과해온 시간과

그 시간 동안 몸에 남은 흔적을

대변하지 않는다.



이 모든 선택이 가능했던 건

내가 가진 부가

나의 가장 앞자리에 놓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나를 설명하는 첫 문장이 아니었고,

내 판단의 기준도 아니었다.


그래서

손해를 감수할 수 있었고,

속도를 늦출 수 있었으며,

말하지 않는 쪽을

끝까지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 나라의 법과 질서,

행정의 작동을

신뢰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건 낙관이 아니라

태도다.


의심보다 먼저 절차를 따르고,

항변보다 먼저 기록을 남기는 태도.


나는

그 태도로

이 사건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 글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다.

이해를 구하기 위해 쓰인 글도 아니다.


다만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끝까지 응답했던 한 사람의 위치를

지워지지 않게 남기기 위해 쓰였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이렇게 닫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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