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써주지 않는다

by Peppone



나는 대신 써주지 않는다.

이건 냉담함이 아니라 책임의 배치다.


대신 써주는 순간,

그 문장은 친절이 되고,

친절은 곧 책임의 이동이 된다.


나는 그 이동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 절차에서

문장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다.

누가 썼는지,

어떤 지위에서 제출됐는지,

누구의 책임으로 남는지가

결과를 바꾼다.


그래서 대신 쓰는 문장은

중립일 수 없다.


그 문장은

상황을 정리하기보다

책임을 가볍게 만들고,

강요된 응답을

자발적인 선택으로 둔갑시킨다.



나는 나를 쓰는 일을 성실히 했다.

요구된 위치에서,

요구된 형식으로,

나에게 허용된 범위 안에서.


반면 상대는

대리인을 세웠고,

그 대리인은

사건의 조건과 맥락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서면들을

연이어 제출했다.


그 문장들은

사실을 명확히 하기보다

논점을 흔들었고,

정리를 돕기보다

절차를 늘렸다.



그 결과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나 역시 대응해야 했다.


이미 응답을 끝낸 이후에도,

이미 조건을 이행한 상태에서도,

응답했다는 사실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응답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건 공방이 아니라

소모였다.



그렇게 발생한

대리인의 비용은

다시 나에게 청구되었다.


상대가 선택한 언어의 비용을

내가 부담해야 한다는

손해배상 청구였다.


이 지점에서

나는 분명히 보았다.


대신 쓰는 언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책임을 이동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물론 나는

돈이 없어서 변호사를 쓰지 못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선택은

불가피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

내가 대리인을 세우지 않겠다고 한 건,

결국 204호 세입자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 말은

사건의 초기에

이미 했다.



대리인을 세우는 순간

절차는 커지고,

비용은 늘어나며,

책임은 다시 상대에게 돌아간다.


나는 그 구조를

의도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 속에서도

끝까지

직접 응답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나는

대신 써주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이

나의 문장으로 바뀌는 순간,

이 기록은

그 기능을 잃기 때문이다.



이 글은

요약을 제공하지 않는다.

빈칸을 채우지도 않는다.


다만 이렇게 남긴다.


대신 써주지 않음으로써,

나는 책임의 위치를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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