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공원 안에 있는 충현원 원장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은 어떠냐,
아직도 동구청과 그렇게 문제가 있느냐고.
충현원은 금동에 있지 않다.
금교를 건너야 닿는 곳이고,
그 다리부터는 남구다.
나는 그 다리를 건너 유치원을 다녔고,
지금은 그 다리 건너에서
동구의 행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금교는 동구와 남구의 경계다.
행정상으로는 반씩 나뉘어 있다.
그래서 책임도 반씩 나뉜다.
한쪽은 자기 관할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자기 구간만 관리한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전체를 책임지지 않는다.
문제는 늘 그 경계에서 생긴다.
경계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행정이 아니라 시민이 되고,
설명을 하는 쪽도
대응을 하는 쪽도
항상 시민이 된다.
나는 여전히 그 상태라고 말했다.
설명은 이미 충분히 했고,
해결은 오지 않은 상태라고.
그랬더니 이런 이야기가 이어졌다.
올해 3월, 동구청장 선거가 있는데
아는 사람이 있으니
진선기와 한 번 이야기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겪은 행정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지금 나는 서울 시민이라고.
도와달라는 말도 아니었고,
기대한다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말할 수는 있다는 뜻이었다.
잠시 뒤,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럼 후원을 해야지.”
그 순간
대화의 결이 바뀌는 게 느껴졌다.
나는 후원하지 않는다.
후원할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정치에 기대를 걸지 않아서도 아니다.
다만,
내가 겪은 일을
돈과 교환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분노라기보다
오래 눌린 한에 가깝다.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끝내 설명조차 책임지지 않는 방식이
사람을 어떻게 닳게 만드는지에 대한 한.
행정의 문제는
지지가 부족해서 생긴 것이 아니고,
후원이 없어서 지속된 것도 아니다.
설명이 사라지고,
책임이 분산되고,
민원인이 행정의 구조를 대신 설명하게 되는 순간,
그때 이미 행정은 작동을 멈춘다.
나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밀어주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이런 방식의 행정이 실제로 존재했고
그 안에서 한 시민이
어떻게 소모되었는지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후원하지 않는다.
지지하지도 않는다.
대신 말한다.
말은 남고,
후원은 사라진다.
정치는 늘
“같이 하자”고 말하지만,
행정은 먼저
“괜찮으십니까”라고 물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새 얼굴도,
상징도,
후원 계좌도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기본이 굴러가는 행정이다.
나는 그 지점에 대해서만 말할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금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