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 빠진 채 구조가 바뀌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기준이다.
예전에는 한 부서에서 끝나던 일이
이제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
“확인해 보겠다”는 말이 돌아오고,
“다시 연락하겠다”는 답을 기다리게 되고,
마침내 “관할이 다르다”는 결론에 닿는다.
시민이 체감하는 건 단순하다.
같은 말을 여러 번 해야 하는 상태다.
문제는 그대로인데, 설명은 매번 처음부터다.
체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사람이 먼저 바뀐다.
처음엔 A였고,
다음엔 B였고,
다시 C가 된다.
누가 책임자인지 알 수 없고,
그 사이에서 민원은
사람의 기억이 아니라
파일 번호로 남는다.
맥락은 사라지고, 기록만 남는다.
가장 큰 변화는
설명을 누가 하느냐다.
행정이 설명하지 않으니
시민이 설명자가 된다.
저번에 여기서 이렇게 말했고,
다른 구청에서는 저렇게 안내받았고,
규정은 이런 식으로 들었다고
시민이 행정을 정리해서 말한다.
행정을 받으러 갔다가
행정을 가르치고 돌아온 느낌.
이때부터 시민은
서비스의 대상이 아니라
과정의 완충재가 된다.
속도를 낸다고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늦다.
결론이 나지 않거나,
“추후 검토”라는 말로 남거나,
부분만 처리되고 끝난다.
그래서 남는 건
해결된 것도 아니고,
안 된 것도 아닌 상태다.
문제는 남아 있고,
피로만 쌓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감정이 생긴다.
“왜 이걸 지금 알게 됐지?”
이미 결정된 일을
뒤늦게 통보받은 느낌.
참여했다기보다
결과를 감내하라는 요구에 가깝다.
이 감정은 불만보다 먼저
무력감을 만든다.
이 상태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결국 이렇게 말하게 된다.
“말해봐야 소용없다.”
그 순간,
시민은 행정의 대상이 아니라
행정의 완충재가 된다.
그리고 그게
가장 비싼 비용이다.
PS.
통합되기 전부터 이미 이 블랙 코미디를 체감하며
환장할 것 같았던 시민 뻬뽀네는,
이 모든 과정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