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발 비용
이건 욕이 아니다.
정확한 이름이 없어서 욕처럼 들릴 뿐이다.
나는 요즘 어떤 비용을 계속 치르고 있다.
원해서 쓴 돈이 아니다.
선택해서 감수한 시간도 아니다.
피할 수 있었던 감정 소모도 아니다.
그 비용은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누군가 일을 대충 했고,
어딘가에서 기준이 빠졌고,
책임져야 할 주체는 흐릿해졌는데
그 결과만 또렷하게 개인에게 떨어진다.
그 순간부터 발생하는 비용이 있다.
설명해야 하는 시간,
정리해야 하는 문서,
전화해야 하는 횟수,
잠들기 전에 한 번 더 떠올려지는 장면들.
그리고 결국은 돈이다.
수수료, 교통비, 인쇄비, 법무 비용,
혹은 “그냥 빨리 끝내기 위해” 지불한 어떤 금액.
나는 이걸 시발 비용이라고 부른다.
누군가의 무책임으로 시작됐지만
그 무책임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히려 내가 지불하게 되는 비용.
이 비용의 특징은 명확하다.
참고 넘어가면 들지 않고,
문제 삼으면 생긴다.
그래서 늘 같은 말이 돌아온다.
“왜 그렇게까지 해요?”
“그냥 좋게 넘어가지.”
“시간 아깝지 않아요?”
이 질문은 늘 구조를 비껴간다.
문제를 만든 쪽은 묻지 않고,
문제를 견디지 않은 사람만 불려 나온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비용을 말하지 않으면
다음 사람도 똑같이 치르게 된다는 걸.
시발 비용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고,
분노 조절의 실패도 아니다.
그건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의 청구서다.
다만 그 청구서가
국가도, 기관도, 조직도 아닌
개인 앞으로 배송될 뿐이다.
나는 이 비용을 자랑하지 않는다.
영웅처럼 감당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비용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은
정확하게 기록하고 싶다.
이건 분풀이가 아니다.
이름 붙이기다.
이름을 붙여야
다음에 같은 일이 반복될 때
“그냥 참으세요”라는 말 대신
“이건 비용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시발 비용.
이 사회가 개인에게 은근히 떠넘겨 온
가장 비공식적인 세금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