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1 카르투시오 수도원
영화감독 필립 그로닝은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고 싶다고 문의했다. 늦지 않게 알려주겠다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16년이 흘렀다. 수도원에서 연락이 왔다. “혼자 오십시오.” 영화 『위대한 침묵』은 그렇게 탄생했다. 900년 역사의 봉쇄수도원을 처음으로 들여다본 영화였다.
한국에서도 상영된 이 영화 덕분에 우리는 카르투시오회라는 수도회를 알게 됐다. 영화는 깊은 산속의 봉쇄수도원 내부와 수도승의 일상을 비춘다. 수도승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영화는 대부분 대사 없는 영상으로 끌어간다. 조명도 없고 음향효과도 없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 시편을 읊조리는 기도 소리가 고요히 울려 퍼진다. 때로는 신발 밑창을 고치는 망치질 소리가 적막을 깨트린다.
이곳은 프랑스 남동부의 해발 1,300m 계곡, 카르투시오회의 본원인 그랑드 샤르트뢰즈(Grande Chartreuse)이다. 11세기 수도승 성 브루노(S. Bruno)가 보다 엄격한 수도 생활을 꿈꾸며 설립한 수도원이다. 그는 1030년경 독일 쾰른에서 태어났지만, 아마도 생애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것으로 보인다. 공부를 마치고 26세에 주교좌 학교의 교수가 되었지만, 얼마 안 가 은수 생활을 택했다. 그가 택한 장소가 이 산속이다. 알프스 쪽에서 뻗어 내린 산들이 최고 높이 2,000m쯤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어로 샤르트뢰즈(Chartreuse), 라틴어로는 카르투시움(Cartusium)이다. 카르투시오라는 수도회의 명칭은 이 지명에서 유래한다.
카르투시오회를 찾아가던 날 비가 뿌렸다. 길은 마치 한계령 고갯길처럼 굽이굽이 돌아들며 고도를 높인다. 짙은 운무가 시야를 가렸다. 멋진 사진을 찍기는 글렀다는 생각에 살짝 실망에 잠겼다. 막상 도착했을 때는 정반대였다. 바람이 운무를 흩어 낼 때마다 그 사이로 햇살이 비쳐 들었다. 모습을 감췄던 바위와 산들이 해맑은 얼굴을 드러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안개와 햇살이 순간순간 모습을 바꿔가며 황홀한 파노라마를 펼쳤다. 마치 멀리서 온 나그네에게 샤르트뢰즈의 산들이 스스로 비경을 드러내며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감사와 경탄의 마음으로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가는 길에 민가라곤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수도원 입구에 다다르면 먼저 박물관으로 안내된다. 수도원의 옛 건물을 박물관으로 꾸며 카르투시오 수도승의 삶과 역사를 보여준다. 기도실과 작업실, 침대와 책상 등을 실제 모습 그대로 꾸며 놓았다. 기도서와 악보, 편지, 일기를 비롯해 수도승이 입던 수도복과 작업복, 벽난로와 작업 도구, 약품 장비 등 다양한 물품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은 눈이 많이 오는 겨울 몇 달 동안 문을 닫는다. 봄부터 가을까지에만 5만 명 넘는 방문객이 이곳을 찾아온다. 박물관 옆으로 작고 아름다운 경당이 보였다. 잠시 기도할 수 있을까 싶어 문을 밀어보았지만 굳게 닫혀있었다. 그 옆으로는 기념품 매점이 있다. 카르투시오회의 리큐어 제품은 수도원 주변의 약초를 전통 제조법으로 달여낸 일종의 약술이다. 한 해에 100만 병 이상 팔린 적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수도원은 여기서 산속으로 2km 남짓 더 들어가야 한다. 길은 널찍하지만, 자동차 통행은 금지되어 있다. 우산을 펼쳐 들고 길을 걸었다. 길옆의 비탈진 풀밭에서 소들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이다. 대장인 듯한 소의 목에서 연신 딸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울린다. 그러고 보니 수도원 건물도 모두 지붕이 뾰족하다. 눈이 많이 오는 알프스의 풍경과 닮았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은 엄격한 봉쇄수도원이다. 웬만해서는 일반인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누리집에 메일 주소가 있지만 따로 메일을 보내보지도 않았다. 기도나 미사를 함께 하고 싶다는 정도로는 방문이 허락되지 않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들의 위대한 침묵과 고독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냥 이 목가적인 산책로를 걷고 수도원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 의미를 두기로 했다. 드물게 이 수도원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묘사와 수도원이 제공하는 자료를 통해 수도승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카르투시오회의 수도 생활은 은수(隱修)와 공동생활의 혼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봉쇄 구역 안에 함께 살지만, 또한 따로 산다. 수도승은 서로 분리된 암자(cella)의 독방에서 대부분 시간을 기도와 침묵 속에 보낸다. 하루 중 미사와 저녁기도, 한밤중에 올리는 길고 아름다운 밤기도를 성당에서 함께 드린다. 나머지 네 번의 성무일도는 저마다 암자 안에서 홀로 바친다. 개인 기도와 성독(聖讀), 식사와 노동도 모두 혼자 한다.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관상의 삶에 온 힘을 다하는 일과표이다. 일주일에 한 번 주일 미사 후 점심 식사를 함께한다고 알려져 있다.
수도원 밖으로 나서는 공동 산책도 일주일에 한 번 있다. 수도원 주변이 온통 산악이라서 산책보다는 등산에 가깝다. 이 시간이 동료 수도승과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기회이다. 고독에서 올 수 있는 긴장을 풀어주고 형제적 친교를 다진다. 함께 어울려 웃고 떠들지는 않는다. 둘씩 짝지어 걸으며 조용한 담화를 이어간다. 두 사람이 출발하면 또 한참 있다가 다음 두 사람이 나선다. 서로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적절한 간격을 유지한 채 걷는다. 다음 기회에는 또 다른 사람과 짝을 짓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월요일 오후가 공동 산책 시간이다.
수도원을 찾아간 날이 마침 월요일 오후였다. 산책에서 돌아오는 수도승을 만났다. 젊은 수도승 두 분이 신발과 바짓가랑이에 흙을 묻힌 채 걸어오고 있었다. 비 온 뒤라 길이 질퍽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겨우 이 정도의 인사만 나누고 지나치려 하기에 다시 한번 말을 붙였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입니다. 한국에 카르투시오 수도원이 두 곳이나 있습니다.”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아, 그렇죠.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뜻밖에 한국어로 말했다. “축하합니다.” 아마도 한국의 수도원에 다녀간 적이 있거나 소통을 위해 한국어 인사말을 익혔을 거라고 짐작했다.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그들이 지나간 울창한 숲길을 한참 거슬러 올랐다. 이 길은 아마도 900년 전 성 브루노와 그의 여섯 동료가 즐겨 걸었던 산책로일 것이다. 불멸의 저술을 남긴 9대 원장 귀고 2세도 이 길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피워올린 영성의 향기가 이 숲속에 짙게 배어있다. 계속 걸으면 가까운 산정으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수도원을 내려다보는 사진을 한 장 찍고 싶었지만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일찍이 프랑스 사상가 장자크 루소가 남긴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이곳에는 게으른 나태가 없고,
잠결의 쾌락 역시 자라지 않으며,
덧없는 재물을 향한 탐욕의 광풍이
모든 무모한 일을 부추기지도 못한다.
그대들에게는 모든 것이 달라져
부와 영광, 쾌락은 아예 빛을 잃어버렸고,
굶주림, 추위, 더위, 침묵, 눈물,
긴 밤과 노동마저도
그대들에게는 오히려 향기로운 매력일 뿐.
오 하늘이여! 이 사람들은
더는 인간이라 부를 것도 남지 않았구나.
(루소, 「La Grande Chartreuse」, ChatGPT 번역)
카르투시오 수도원의 전례는 전통의 보존이라는 관점에서 매우 소중하다. 수백 년 동안 전승된 고유의 성무일도를 바친다. 중세기부터 내려오는 라틴어 전례를 원형대로 보존해 온 수도원이다. 전례의 절정은 밤기도(vigilia)이다. 자정에 시작해서 새벽 2시에 끝난다. 주일과 축일에는 3시까지 이어진다. 그레고리안 가락으로 읊는 시편 기도는 감미롭고 황홀하다. 성당은 어둑하고 고요하다. 감실의 불빛만 은은하게 빛난다. 기도석 주위의 조명은 장작불처럼 아늑하다. 그 아래서 하얀 쿠쿨라(cuculla)를 덮어쓴 수도승들이 낭랑하게 기도를 읊는다. 매일 바치는 기도이다 보니 거의 모든 시편을 암송하는 수준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대부분의 수도회가 밤기도를 새벽의 독서기도로 바꿨다. 카르투시오 수도회는 여전히 자정의 밤기도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 아마도 가톨릭 수도회로서는 유일하거나 매우 드문 사례가 아닐까 싶다.
카르투시오회는 세상에 그리 드러난 수도회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 수도회의 존재를 잘 모른다. 매우 엄격한 생활 방식 때문에 이 수도회의 회원이 많았던 적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들의 강렬한 삶과 참된 기도가 지닌 내적 힘은 세상과 교회를 떠받쳐온 기둥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카르투시오회 회원들은 개혁된 적이 없다. 변질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Cartusia nunquam reformata quia nunquam deformata)
한국에도 카르투시오회의 남녀 수도원이 있다. 1999년에 진출한 남자 수도원은 경북 상주에 자리 잡았다. 수녀원은 2002년 5월에 진출했지만, 2010년에야 충북 보은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카르투시오 수도원은 현재 전 세계에 21개가 있다. 남자 수도원 16개, 수녀원 5개이다. 수녀원은 프랑스에 2개,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각각 1개씩 있다. 이 세 나라 말고는 한국 수녀원이 유일하다. 남자 수도원도 유럽을 벗어나면 미국과 브라질, 아르헨티나에 하나씩 있을 뿐이다. 카르투시오회의 남녀 수도원이 모두 있는 나라는 유럽 말고는 한국뿐이다. 이 수도회가 한국에서 사랑과 희망을 키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감사하게도 한국의 카르투시오 수녀원에 몇 차례 드나들 기회가 있었다. 미사와 강의를 위해 가끔 방문하는 허무 신부님을 모시고 간 덕분이다. 선입견을 깨는 놀라움이 있었다. 프랑스 출신 원장 수녀님의 표정이 너무나 밝고 유쾌했기 때문이다. 고독과 침묵 속에 살아가는 수녀님의 얼굴이 어쩜 저토록 밝을 수가 있을까. 환한 미소와 거리감 없는 대화로 진심으로 반겨주었다. 그날의 메모에 이렇게 적혀있다. “우리에게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수도 생활이 잘못되고 있다는 징표일 것입니다.”
카르투시오회의 한국 진출은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이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영적인 풍요로움을 호흡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돌지만, 십자가는 우뚝하다.” (Stat crux dum volvitur orbis.) 카르투시오회의 문장(紋章)과 표어처럼 그들이 깊은 영성의 샘으로 오래 존재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