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 시토 수도원
밖은 초라하고 안은 소박하다. 종탑도 높이 솟은 십자가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엔 무슨 낡은 연립주택인가 싶었다. 시토 수도원(*1) 입구에서 만나는 성당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그저 담백하다. 벽과 천장이 텅 빈 흰색이다. 벽화도 천장화도, 그 흔한 스테인드글라스도 없다. 자연 채광을 간접 조명으로 활용해 은은하고 아늑하다. 세상이 크고 화려한 건축을 추구할 때 이 수도원은 단순함과 소박함을 택했다.
성당 입구 벽면에 무채색 부조 작품 하나가 눈길을 끈다. 글씨를 해독해 보니 요한 복음서의 말씀이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요한 2,5) 수도승의 본분인 순명을 강조한 것인가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카나의 혼인 잔치’에 나오는 포도주와 연결된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에게 도움을 청한다. “포도주가 없구나.” 그러자 아들이 답한다.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믿고 일꾼들에게 이른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결국 아들은 일꾼들에게 말한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 그러자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
시토 수도원 주변에 포도밭이 많다. 그러니 저 문장은 지역 농민의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이 수도원 또한 포도 농사를 짓는다. 설립 초기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해 왔다. 수도원이 있는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방은 최고급 와인 산지로 유명하다. 한 병에 1억 원을 훌쩍 넘기는 로마네 콩티가 이 지역에서 나온다. 시토회 수도원은 체계적인 연구와 실험으로 부르고뉴의 와인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시토 수도원은 클뤼니에서 북쪽으로 100km쯤 떨어져 있다. 부르고뉴의 중심 도시 디종보다는 남쪽이다. 가는 길 내내 드넓은 평원이 펼쳐졌다. 비옥한 대지 위로 풍요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수도원은 산속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들판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수도원의 역사에서 11세기는 오래된 나무에서 새 가지가 뻗어 나오듯 새로운 수도회가 탄생한 시기이다. 수도 생활이 점차 타성과 형식에 젖어 들고 있을 때 분연히 현실을 박차고 원천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시토회를 창립한 성 로베르토(S. Robert)도 그런 수도승이었다.
그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몰렘(Molesme) 수도원의 원장이었다. 부와 특권으로 물든 수도원의 관행을 개혁하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1098년에 21명의 동료 수도승을 이끌고 시토(Cîteaux)라는 마을에 새 수도원을 세웠다. 이들의 소망은 더욱 외딴곳에서 참으로 가난하게 살면서 베네딕토 규칙을 더 철저히 지키는 삶이었다. 봉건제에 기반한 수도원의 수입을 거부하고 기도, 노동, 성독(聖讀)을 엄격히 준수했다. 그들의 이상은 베네딕토 규칙 이전의 사막 수도승 생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시토회는 초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으며 존속이 위태로웠지만, 뛰어난 후임 아빠스들의 활약으로 곧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로베르토는 교황의 결정으로 어쩔 수 없이 몰렘 수도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몰렘에서 삶을 마쳤다. 시토 수도원은 3대 원장인 스테파노 하딩의 노력으로 안정을 찾았다.
하딩은 시토회의 전반적인 생활을 규정한 「사랑의 헌장」을 작성해 교황의 인준을 받았다. 이로써 시토회는 독자적인 회헌을 갖춘 새로운 수도회가 되었다. 그들은 검은 수도복을 입는 클뤼니 수도승과의 차별을 위해 흰색 수도복에 검은 스카풀라를 착용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S. Bernard)는 시토회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는 1112년에 입회해 3년 뒤에는 새로 생긴 클레르보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위대한 영성의 시인이었다. 신학과 영성에 모두 뛰어나 ‘최후의 교부’라는 칭호도 얻었다.
“사랑은 어떤 이유도, 어떤 결실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 자체의 열매이며, 사랑 자체의 기쁨입니다.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하기 위해 사랑합니다.” (성 베르나르도)
베르나르도의 노력으로 시토회의 수도원이 급속히 늘어났다. 교회사 학자들은 그를 ‘제2의 설립자’로 평가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1153년에 시토회 수도원은 339개나 되었다. 시토회 수도원이 가장 많았을 때는 유럽 곳곳에 700개를 넘었다.
수도원의 성장과 확산은 한편으로 수도 정신의 약화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초기의 엄격한 회칙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1664년 프랑스의 라 트라프(La Trappe) 수도원이 중심이었다. 이들은 나중에 시토회와 분리되어 엄률 시토회 또는 트라피스트회로 불리게 된다. 오늘날 두 수도회는 시토회(O.Cist.)와 엄률 시토회(O.C.S.O.)로 구분된다.
시토 수도원은 프랑스 혁명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폐쇄되었다가 1898년에 복구되었다. 이때 엄률 시토회를 채택하고 시토의 아빠스가 엄률 시토회의 총장을 겸임했다. 현재 시토 수도원에는 30여 명이 수도승이 살고 있다. 이들은 하루 일곱 번의 기도를 준수하면서 노동을 소중히 여기는 조화로운 수도 생활을 추구한다.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덕목은 겸손, 겸손, 그리고 겸손입니다.” (성 베르나르도)
이 수도원은 훌륭한 피정의 집을 운영한다. 2006년에 새롭게 단장해 깔끔해 보였다. “종교적 신념과 무관하게 ‘하느님을 찾는’ 분들을 기꺼이 환영합니다. 위대한 수도 전통 안에서 영적인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 고요와 평화를 사랑하는 분들, 인생의 전환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젊은이들,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영접할 것입니다.” 다만 숙박 기간은 최소 2일에서 최대 7일로 제한하고 있다. 잠깐 머물고 떠나기보다 충분히 체험하라는 취지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전 한나절이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서둘렀다. 수도원에 도착하니 5시가 조금 넘었다. 이 수도원의 밤기도는 새벽 4시이다. 아침기도는 7시 반이었으므로 시간이 한참 남았다. 수도원 주변의 농로를 따라 동네를 한 바퀴 산책했다. 새벽이슬이 발끝을 적셨다.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었다. 드넓은 대지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기다리며, 또 하루의 은총을 가슴 설레며 맞았다.
“책보다 숲에서 더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무와 돌은 스승에게서 배울 수 없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신성한 학문과 성경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모두 숲과 들판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너도밤나무와 참나무 말고는 다른 스승이 없습니다.” (성 베르나르도)
그날은 날씨가 흐릿했다. 햇살은 구름 뒤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아침기도 시간에 맞춰 성당으로 돌아왔다. 백의의 수도승들이 낭랑한 소리로 기도를 바쳤다. 피정의 집에 머문 방문객과 주민 몇 분이 함께했다. 아름다운 전례였지만, 프랑스어를 모르니 온전히 녹아들 수는 없었다.
수도원의 아침기도를 라틴어로 라우데스(laudes)라고 한다. 소리높여 찬미한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도 조과(朝課) 대신 찬과(讚課)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각에,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으며 찬미를 바치는 성격이 강하다. 새롭게 열어주신 하루의 은총에 감사드리고, 온전히 하루를 당신께 봉헌하겠다고 다짐한다. 시편 중에 찬미의 성격이 강한 시편을 낭송한다. 나는 핸드폰으로 한국어 시편을 찾아 읽었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뿔 나팔 불며. 주님을 찬양하여라, 수금과 비파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손북과 춤으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현악기와 피리로. (시편 150,3-4)
시토 수도원은 방문객을 위해 안내 관람을 제공한다. 담당 수사의 안내로 1시간 정도 제한된 영역만을 둘러볼 수 있다. 방문 전까지는 이 수도원의 주된 노동이 포도 재배와 포도주 생산일 것으로 생각했다. 막상 와보니 치즈가 주력 생산품이었다. 수도원 설립 초기부터 낙농을 해왔지만, 본격적인 치즈 생산은 1925년부터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100마리 넘는 젖소를 기르고, 수도승이 직접 치즈 공정에 참여하고 있다. 수도원 치즈는 ‘시토 수도원(Abbaye de Cîteaux)’이라는 상표로 판매된다. 보통 ‘시토 치즈’라고 부르는데, 수도원의 기념품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인기 품목이다.
시토회는 900년의 역사 속에 수도 영성을 빛내는 뛰어난 저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현대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사람으로 토마스 머튼을 들 수 있다. 그는 미국 트라피스트회의 수도승이었다. 30여 년 전에 그의 작품 『칠층산』을 읽고, 이 수도회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더 나중에야 트라피스트회가 시토회의 한 줄기임을 알았다. 영성이니 관상이니 명상이니 하는 단어에 매혹당한 것도 아마 이 책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너무 늦게야 깨닫게 되는 진실이 있다. 고통을 피하려 하면 할수록 더 고통받는다는 사실이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마저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고통을 가장 피하려 애쓰는 사람이 결국 가장 큰 고통을 겪게 된다. … 그의 고통은 존재 자체, 그 삶과 의식에서 비롯되며, 바로 그 존재와 의식이 그의 가장 큰 고통이다.” (토머스 머튼, 『칠층산』)
(*1) Abbaye Notre-Dame de Cîteau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