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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Feb 28. 2024

지하철에서 나이든 노인을 보며

#5

언젠가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이었다. 잠시 정차한 역에서 창문밖으로 허리굽은 한 헐머니가 보였다. 꼳꼳이 서서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사람들 속, 할머니는 한걸음씩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걸어가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그저 스쳐지나쳐버릴 풍경이었는데,     

문득, ‘아, 저 할머니는 저 긴 세월동안 어떻게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오셨지?’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나이 서른을 조금 넘겼을 때였다. 겨우 버티듯 지내왔고, 그렇게 지내고 있었고, 앞으로 내가 모르는 겪어야할 일들을 감당할 수 없을거같다는 생각이 드는 때였다.


그런데 저 할머니는 수십년의 세월을, 내가 겪지 못했을 그리고 아직 겪지 못한 수많은 삶의 순간을 경험하고 살아오셨겠지.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과정을 겪었을거고, 배우자도 잃었을지 모른다. 경제적인 어려워 처연한 인간관계를 경험하기도 했을거고, 비통한 때도 있었을 거다. 수많은 인간관계속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거다. 그런데도 저분은 모든걸 다 겪고도, 굽은 허리로 지하철을 다니면서 생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나이든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그 무구한 세월을 겪고 버티고도 살아남았으니까. 그들은 그 세월을 지나온 것만으로도 존중받을만 하다. 그래서 예전에 어른을 공경하라고 가르친건가 싶었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상황을 경험한다. 

어릴때는 막내 혹은 어린 사람으로서의 태도나 역할만 하면 되었는데, 나이가 들며 조금씩 내 태도와 역할이 달라짐을 느낀다. 그리고 내 나이는 많지만 집단의 위치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발생하고, 내 나이에 기대되는 역량을 가지지 못한 상황도 발생한다. 다른 이들은 나를 예전부터 나이가 많았던 사람을 보게 되고, 더 이상 어리니까란 이유로 몰라도 되거나 못해도 되는 상황이 적어진다. 난 그저 내 상황에 맞는 속도로 살아왔는데, 세상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점점 그 나이에 기대되는 것들을 채워야 어디에서건 자신을 나타낼 수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 거 같다. 안정적 직업, 돈, 배우자 같은 것들말이다. 하지만 난 그 무엇도 채우지 못했고, 엄두도 나지 않는데 말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며 언젠가 당연히 존재하실거라 여기는 부모님들도 떠나는 날이 올것이란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가까운 사람을 잃는다는건 정말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너무나 슬퍼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리고 마음에 두었던 이와 마음 뜯어지는 경험을 하고 고통스러웠었다. 그런 경험을 하기 전에는 그것이 그토록 힘들고 아픈지 몰랐는데, 한번 그런 경험을 하고보니 다시 그런 경험을 할 것이 두려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겪어야하겠지 싶었다. 그 경험도 두렵고, 그 이후에 혼자될 상황도 두려웠다. 다른 나이든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나이가 많아지면 나아지는 건가싶기도 하지만, 겉으로 그렇지 않은척 하는 것일 수도 있을 수 있고, 그들이 실제 괜찮을지 모르나 나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전에 운전을 배울 때가 생각났다. 운전하기 전에는 운전하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보였는데, 처음 도로에 운전을 하러 나갔을 때 운전하는 모든 사람이 엄청 대단해보였었다. 그때처럼 난, 세상에 나이든 수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보이는게 아니라, 삶의 질곡을 겪고 온 대단한 존재처럼 보였다.   

        

지금 나는 마흔을 넘기고 살고 있으며, 그간 또 많은 일이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삼십대 초반을 지나며 삶의 가치관이 바뀌었고, 점점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정립해나가게 되었다. 고마운 분들에게 가끔 인사하며 지내게 되었고, 인연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있으며, 소중한 인연을 만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고 있으며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서른에서 십수년이 지난 지금,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그리 많이 경험하고 성숙히 대처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거 같다. 어쩌다보니 마흔이 넘어서도 살아내고 있지만, 아직 내 나이 서른에 바라본 존중받을 만큼 나이든 사람은,아닌거 같다.      

내가 어떻게 될지, 언제까지 세상에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두려움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며 살고 있고, 조금씩 깨달은 것들을 되새기며 삶을 다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순간들이 나를 좀 더 나은 생으로 이끌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 난 오래전 깨달은 나이든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다시 꺼내 입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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