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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Feb 28. 2024

사과와 귤은 같이 먹어야한다

#6

난 어렸을 때 귤을 좋아해서 겨울에 집에 귤 한상자를 들여놓으면 며칠만에 먹곤했다. 얼마전에도 엄마가 ‘넌 귤을 좋아해서 어렸을 때 손이 노래질때까지 먹었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도 어릴때의 나의 노래진 손바닥이 기억난다.


몇해전, 월급을 받고 큰 맘먹고 처음으로 귤 한상자를 산적이 있었다. 상자 단위의 과일은 선물받거나 부모님이 사오시는거란 생각을 해서 산적이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크게 한번 사볼까하며 새로운 시도를 했던거 같다. 하지만 커서는 어릴때처럼 귤을 많이 먹지는 않아 잘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즈음 친구가 선물로 사과를 보내줬다. 난 사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친구가 보내준 사과의 맛이 궁금해 먹고 싶었다.

그때 엄마는 내가 산 귤이 무르고 상하고 있고 많으니, 귤을 먼저 먹고 사과를 나중에 먹기로 했어란 말을 했다.

그런데 순간 난, ‘왜 내가 선물받은 사과를 묵히고 나중에 말라비틀어져 맛없게 된 다음에 먹게 하자는 거지’란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야하는거지?, 왜 그런 순서로 해서 늘 맛없는 것을 먹는 방식을 취하려하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그래, 그럼 엄마는 그렇게 해. 난 내가 먹고 싶은거 먹을거야’라 얘기했다. 엄마의 그런 방식을 나에게까지 강요하지 말라고, 난 내가 하고 싶은대로 나를 위해서 나도 좋은 것을 먹겠다고 그리 이야기했다.     


엄마는 그저 단순하게 오래된 것을 먼저 먹자고 이야기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과거의 나라면 엄마처럼 생각하고 그리했을것이고 엄마의 말에 그렇구나하고 따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좋은 것’, ‘나를 위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때였고, 친구의 마음과 사과의 가치를 생각하니 그럴 수 없었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최상의 가치일 때 최상의 것을 먹는 것. 그것이 나와 선물을 준 사람에 대한, 그리고 그 사과의 생에 대한 예우이고 바른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사과를 꺼내 씻어 바로 먹었다. 시원하고 신선하고 사과향이 가득한 맛있는 사과였다.


난 좋은 것을 아끼고 나중에 먹거나,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고 나는 안먹거나 갖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왔었다. 물론 만족지연이 나에게 가져다준 것도 많다. 스스로 절제하며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도 기쁨이어서 만족스러웠던거같다. 그런데 그것이 모든 것에 적용되었던 거 같다. 그래서 난 내게도 이순위였고,‘난 괜찮아’,하며 내가 원하는 것은 미루고 잊으며 넘어가게 된 거 같다. 언젠가 가질 수 있게 되겠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며, 그 원칙이 모든 것에 적용되어서는 안되며, 그 ‘언젠가’가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점점 깨닫게 되었다. 한정된 시간과 재원속에서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우선시 해야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다. 10개의 음식이 있는데, 맛있는 것을 아껴서 나중에 먹겠다며 억지로 다른 것으로 배를 채우면, 나중에 그토록 먹고 싶었던 그 음식도 맛있게 먹지 못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해야함’도 깨달았다.

사과와 귤이 있을 때, 하나의 과일을 다 먹고 나서 다른 것을 먹으면 나중에 먹는 것은 시들고 물러져 맛있게 먹을 수 없다. 그러니 사과도 귤도 신선할 때, 내가 먹고 싶을 때 동시에 먹어야하는 것이다. 그게 과일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고, 맛의 즐거움과 신선한 영양소를 제공하는 과일의 중심 가치가 실현되는 것일테니까. 

일도 그런 것 같다. 내게 필요한 고요의 시간도, 해야할 일을 하는 것도, 하고싶은 것을 하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방을 치우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모두 다 동시에 해야하는 구나 생각했다. 하나를 다 끝내고 해야지하는 생각이 강했는데, 그 하나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모든 것에 다 때가 있는 것이니, 그때에 맞춰서 해야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물론 이것 역시 상황에 맞춰하면 되는 것일테다.     


얼마 전에 설명절이었다. 그때 감사히도 지인들로부터 샤인머스캣, 사과, 배를 선물 받았다. 그리고 모든 과일을 먹고 싶을 때 골라 신선하고 맛있게 먹었다. 지금은 서늘한 방한켠에 망고를 후숙하고 있고, 냉장고에는 자몽과 반건조 홍시가 있다. 언제 어떤 과일이 먹고 싶을지 모르지만, 맛있게 먹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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