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HY Feb 28. 2024

'도깨비'의 칼 뽑기

#4

‘도깨비’라는 드라마를 본적이 있다. TV 채널을 돌리는데, 공유와 이동욱이 어두운 밤 터널을 지나는 실루엣이 나오는 장면이 너무 멋있어서 빠지게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드라마가 나의 인생드라마 중 하나가 될지.       

‘도깨비’는 공유가 분한 김신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가슴에 칼이 꽂힌 채 도깨비로 900년을 살고 있었다. 고려시대 장군일 때, 간신에 휘둘리는 어린왕의 시기와 질투에 의해, 가슴에 칼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된다. 너무나 억울했던 김신은 하늘에 기도했고, 그는 죽지 않고 가슴에 칼을 꽂은채 도깨비가 되어 살게 된다. 그리고 도깨비 신부를 만나 그 신부가 칼을 뽑아주면, 그 도깨비는 ‘무’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드라마의 스토리, 인물, 연출 모든 것이 좋았고, 드라마는 흥행에 성공하였다. 드라마를 잘 보지 않던 내가, 스스로에게 놀랄 정도로 드라마에 빠져 본방을 사수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그 드라마를 빠져본 것은 재미도 재미였지만, 개인적인 바람이 생겨서이기도 했다.          

바로 ‘나도 누군가 내 심장에 꽂힌 칼을 뽑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 심장에 답답하게 꽂힌, 그래서 나를 계속 괴롭히는 이 칼을 누군가 뽑아주었으면 했다.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시원할까했다.   

  

내가 뽑고 싶던 내 심장에 박혀있던 칼은, 바로 아버지였다.     


난 당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수년간 아빠와 말하지도 보지도 않고 있었다. 난 아빠를 없는 사람을 취급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난 그래도 사이가 괜찮은 편이었다. 아빠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귀히여겨줄 것이다. 라는 근거없는 미신같은 믿음을 갖고 있었을 때가지는 말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는 순간, 난 그를 더 이상 아버지라고 보지도 않았고, 존재하는 인간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가장 힘든 시기에, 아버지는 잘못된 행동을 했고, 그간 내가 애써 외면하고 버텨왔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어버린 것이다. 과거, 경험들이 조각처럼 이어붙여져, 겨우 유지하던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부숴주었다.          


난 그를 보고 싶지 않았고, 다행인지 아버지는 주로 방에서 생활해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렇게 다른 이들에게 말못하는 그런 삶이 지속되었다. 웃고 있어도 늘 마음의 무거운 짐이었다. 어쩌면, 어릴적 가졌던 환상에 대한 미련과 마음이 있기에 아팠을 것이리라. 그리고 나의 마음이 그리 모질지 못해서였으리라. 여전히 좋았던 모습을 알고 기억해서 그러했으리라. 하지만 한번 끊어버린 마음은 다시 붙이기 힘들었고, 붙이고 싶지도 않았다.    

 

 난 그렇게 그 아픔을 가슴에 박은채 살게 되었다. 겨우 다시 웃는 일이 있어도, 어쩌다 누군가를 만나도, 내 심장에는 아주 굳게 그것이 박혀있어 마음껏 기쁘지 못했고 무겁고 답답했다.          

그런 상황에서 도깨비를 보는 나는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종영하고도 나는 ‘나도 누군가가 내 심장의 칼을 뽑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지속되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고, 아버지와 그렇게 지낸지 9년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칼은 도깨비 스스로가 뽑았다는 것을....    

 

누군가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스스로의 손으로 그 칼을 뺐던거였다.

그때 알게 되었다. 자기 심장에 꽂힌 칼은 스스로 뽑아야한다는 걸 말이다.

생각해보니, 드라마에서 도깨비는 신부를 사랑하는데, 그 사람이 칼을 뽑아 도깨비가 죽으면 힘들어할텐데, 그 사람에게 그런 일을 시키지는 않았겠구나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 그랬구나 그랬었구나....갑자기 그런 깨달음이 크게 들어왔다.          

내 심장에 박힌 칼은 내 스스로 뽑아야겠다. 누군가의 혹은 무엇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뽑아내야겠구나. 그러면 뽑아낼 수도 있겠구나. 꼭 누군가가 뽑아주길 기다리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고통스러워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게 말이다. 그때 난 뽑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뽑히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날부터 아버지가 거실에 나와 TV를 보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다. 그리고 어느날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바둑채널을 보고 있었다. 더는 참고싶지 않았다. 못본척하고 싶지 않았다. 이러다 계속 바둑채널을 아무렇지 않게 나와 볼거같았다. 나에겐 그 자극이, 그 모습이 고통이었다. 예전의 안좋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아빠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리라.        

난 참지 않고 ‘어떻게 여기서 바둑티비를 볼 수 있어’라며 화를 냈고, 그렇게 내 심장의 도깨비 칼 뽑기는 시작되었다. 아주 크게 아버지와 싸웠고, 이후에도 아빠와는 부딪히는 일이 있었다. 난 그냥 넘어가지 않고, 화내고 말하기 시작했이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상황이 끝날지는 모르지만, 잘끝나기를 바라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끝이 어떨지 몰라 두렵기도 했지만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침, 저녁, 평일, 주말, 언제 어떻게 부딪힐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었고, 부딪히기도하며 지냈다.   

  

2달정도 지났을까. 어느날, 아빠가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렇게 식탁에 엄마 아빠 나 셋이 앉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진심아닌 이야기를 다 필요없다’는 마음도 있고, 듣고 싶지않은 마음도 있었고, 그리고 혹시나하는 마음을 갖고, 앉아보았다. 하지만 일부러 크게 기대하지 않으며 앉았다.  

        

그리고...     

아빠는 뭔가 결심한 듯이 이야기했다.  

        

‘미안하다’고    

      

처음에는 그냥 순간을 넘어가려는 말인가하며 억지로 겨우 앉아있었던거같다. 어쩌면 그럴까봐 걱정되서이기도하고 말이다. 하지만 점점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란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도 난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수년, 아니 수십년이었다. 그런 생활들이. 쌓여왔던 것들이. 그런 것들이 어찌 쉬이 변할까. 인간이란 그런것이란걸 난 그리 의심을하며 알고 있었다. 또 쉬이 믿으면 내가 다시 다친다는 것을 알아 마음주지 않아야한다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경계태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 믿고 싶기도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의 평안이 올 수 있을것이란걸 아니까...          

결국 그 말의 진심은 시간이 보여줄 것인걸 알았다. 난 그리고 지켜보게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아버지의 행동을 보며, 그 말이 더욱 진심이었다는 걸, 그리고 행동으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알게되었다. 아빠는 집에서 바둑채널을 보지 않았고, 담배를 피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 기운이 빠진듯한 모습이 보이기도했다.      

 어느순간, 아빠가 진심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왔다. 그리고 아빠가 그렇게 해주셨는데 나도 용기를 내야지하며, 먼저 식사를 하러가자하기도 여행을 가자고도했다.   

  

그렇게 조금씩 박혀있던 아빠와의 관계의 칼을 나는 아니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뽑을 수 있었다.   

       

그리고 3년 후, 몸이 많이 약해진 아빠는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아빠에게 참 고맙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 아빠는 용기를 내어주셨다.     

만약 그때 아빠가 그렇게 사과해주지 않았다면, 난 아마 정말 회복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상처가 박혀 평생 아프고 고통스러웠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사과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런 경우가 정말 드물다는 것도.      

그래서 더 아빠에게 고마웠다. 아빠가 자신을 버리고 나를 받아준 것이라 생각들었다. 그렇게 자존심 강한 분이말이다. 나라도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되었다.         


아빠도 이 세상의 삶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버티며 사셨을 것이다. 그런 아빠에게 가족으로써 참 고마웠다.     

아빠는 지금 어떤 모습일지, 어떻게 지내실지.     

아마 돌아가실 때의 모습처럼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고 평안하게, 마음껏 자신의 마음을 펼치며 지내고 계실 것이다. 언젠가 그런 아빠의 모습을 다시 반갑게 기쁘게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아빠 고마워요.

작가의 이전글 사실 우리 모두는 초능력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