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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Feb 28. 2024

사실 우리 모두는 초능력자

#3

어릴 때부터 특별한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거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첫 번째는 란마1/2 이라는 만화였는데, 란마라는 남자주인공은 찬물을 부으면 여자가 되고, 따뜻한 물을 부으면 다시 남자가 되는 설정이었다. 근데 내가 관심을 가졌던건 무술 능력이었다. 그 주인공들은 무술을 잘해서 거의 날아다닐 정도였고, 나도 그런 능력이 있어서 멋지게 보이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었다.     


이후로도 슈퍼맨, X맨, 외화 히어로즈, 점핑 등 특별한 능력이 있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나는 무슨 초능력이 있으면 좋을까’, ‘내가 초능력이 있다면 무엇을 할까’, ‘어떻게 먹고 살지’, ‘비밀로 하고 살아야하나’ 등을 지치지 않고 상상했던 거 같다. 그런 때면 몇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어느순간 엄청난 능력을 가진 능력자에 대한 이야기에 시들해졌었다. 주인공처럼 능력이 없으니 동일시기 인되었던거다. 오히려 평범한 주변 인물들의 삶과 애환이 보이기 시작했고, 추풍낙엽처럼 죽어가는 비주인공들이 불쌍하게 느껴지고 동일시되어, 그런 히어로 영화를 잘 보지 않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열광했던, 어쩌면 예전이라면 나역시 열광했을 해리포터도 나에게 그리 큰 관심을 끌지 못했었다.  

  

그런 종류의 영화를 잘 보게 되지 않고 드라마적 영화를 위주로 보다가, 어쩌다 닥터스트레인지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 역시 특별한 능력이 있어 동일시되기는 어려운 주인공이었지만, 좋아하는 류의 능력과 스토리라 재밌게 봤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초능력에 대한 상상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초능력은 있을 수 없는 거니까하며. 그저 영화로써 오랜만에 히어로물을 재밌게 봤을 뿐이었다. 더 이상의 초능력에 대한 상상은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난 회사생활을 계속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조직의 인원이 늘어났고, 2개의 팀이 생겼다. 그리고 그중 연차가 높고 관련 자격증이 있는 내가 ‘선임’이라는 직책을 갖게 되어 팀을 담당하게 되었다.

부담이었다...난 그런 직책에 어울리는 인간형이 아니었다. 사람과 어울리는거 잘 하지 못하고 낯가리는 성격, 먼저 하자고 나가서 이끌기보다 따라가는 성격, 나서는거 좋아하지 않고 3명이상이면 집단이라 느껴져 불편함을 느끼는 아주 극단적인 내향인이다. 어릴때부터 반장, 부반장같은거 전혀 관심없었던 정말 조용한 인간이 나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되어버린걸...


뭐가 뭔지 모르고 시작하게된 역할이었고, 그렇게 또 몇 달의 시간이 지났던거같다.

성격상 뭔가를 시키는 것도 못하고, 결정하거나 방향을 잡는 것도 익숙지 않고, 혹여 내 직책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까봐 말도 행동도 더 조심하게 되었다. 책임과 일은 많아졌다. 내 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다 봐주고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내가 힘들었던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 신경쓰다보니, 난 엄청난 에너지를 쓰게 되고 있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다. 내 말한마디가 일과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란 정말 익숙치 않은 상황이 이어졌고 점점 심화되는거 같았다. 그리고 누군가를 대할 때 스스로를 다잡아야하는 순간이 점점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대가 왜 저러는걸까,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 싶은 상황이 너무 많이 생기는 것이다. 그냥 팀원이었다면 마주하지 않아도 될 상황들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함부로 하면 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혹여나 하며 더 조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내 그릇은 그게 아닌데 하며 그렇게 버거운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히어로의 초능력을 갖게 된거같다고. 초능력. 그게 내게 주어진 것일지 모른다고.

     

영화에서 보면, 초능력자들은 평범하게 지내다 어느순간 자신의 초능력을 자각하게 된다.

그 초능력을 잘 쓰면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자신도 구원받지만, 잘 조절하지 못하고 마구 쓰게 되면 다른 이들에게 커다란 피해를 주거나 흑화되어 자신도 망가지게 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그것을 잘 조절해서 쓸 수 있게 연습하고, 이 힘을 어떻게 무엇을 위해 써야하나 늘 고민하곤한다. 그리고 그 능력을 잘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수퍼맨도 스파이더맨도 X맨들도 그랬다.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만들어진 힘이 현실 초능력인거 같았다.

조직에서 직책을 갖게 되거나 오래 있다보면, 어느 순간 집단안에 ‘권력’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을 잘 쓰면 다른 이에게 도움과 힘을 주고 일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하지만, 힘이 생겼다고 목적에 맞지 않게 쓰거나, 힘에 도취되어 힘 자체를 즐기며 쓰게 된다면 다른이를 다치게 하는 것이다. 그건 초능력을 마구 쓰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이 현실세계 빌런이고 악당이 되는거겠지.

특히, 사회적으로 그런 역할을 부여받은 경찰, 정치인들은 일반인들에게 그런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미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생활에서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게 되면, 부모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초능력자가 된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힘없던 어린아이가 커가며 육체의 힘도 생기고, 지식을 쌓고, 경제력을 갖게 되면서 그 가정안에서 힘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웃이나 주변 아이들 앞에서는 힘이 있는 어른이 되어 힘을 보여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그힘을 어떻게 쓰느냐는 초능력을 어떻게 쓰느냐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초능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히어로 영화를 볼 때, 초능력이 있는 주인공이 그 힘을 쓰는 것은 다른 사람을 돕는 선한일에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주변에서 엄청난 오해와 핍박을 해도 이겨나가는 것이 당연하고, 흔들려 넘어지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실은 그게 당연한게 아니었던 거란 생각이 들었다.

실은 그들도 자신의 힘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마음껏 쓸 수 있는 것인데, 어찌된 건지 엄청난 선한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갈아넣어 도우며 살고 있는 거였다. 그리고 그 초능력을 조절하고 자유자재로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거 쉽게 보였는데, 그렇게 강약을 조절하고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이었음이 느껴졌다.     


나도 선임이라는 자리를 맡으며, 히어로는 아니지만 작은 초능력이 생긴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요청을 하면 그는 따라줘야하고, 내 말과 결정으로 그 사람의 생각과 상관없이 행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초능력은 내가 만든 것도 내것도 아니고, 조직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고, 일에서만 사용해야하는 것이며, 팀원들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팀원들이 받아주지 않으면, 그 힘은 능력의 발휘되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 적절히 사용하지 못할 때 그렇게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힘을 사용할 때는 목적을 갖고 어디에 사용할지 고민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 주어진 ‘초능력’이 목적에 맞게 그리고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게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무고한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악당은 막아주고, 억울하게 당하는 이 없고, 사회가 평화롭게 돌아가도록 하는 히어로처럼.

난 히어로는 아니지만, 일이 제대로 목적에 맞게 잘 진행되고, 팀원들이 그 일을 잘 할 수 있게하며, 그 과정에서 마음으로 다치지 않게 하며,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고 즐겁게 지낼 수 있기를, 서로 믿으며 도우며 잘 지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안다. 초심은 그러했지만, 어떤 상황과 사람들 앞에서는, 슈퍼맨의 크립토나이트를 만난 거처럼  미약해지고 흔들리고 조절하지 못할 수 있는 인간이란 것을. 히어로가 초능력을 단련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듯이 나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완전하게 단련이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니기를 바라지만 누군가를 다치게 할수도 흑화될 위험도 없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그런 소중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나를 떠올리며, 히어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심히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짐의 글을 써본다.


리스펙 슈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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