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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Feb 28. 2024

나에게 필요한 만큼의 능력

#2


 내가 나를 위해 관심을 갖고 조금씩 해보던 것 중 하나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학창시절 이후에 그려본 적 없지만, 떠오르는 이미지를 표현해보고 싶었다. 단순한 그림이었지만 머릿속의 이미지가 현실화 되는게 신기했고, 완성된 작품은 어떤 작품보다 멋져 보였다. 나를 표현하고 나서의 개운함과 만족감이 그림을 계속 그리게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는데 자격이 있는게 아니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면 화가라는 마음에 힘을 내고 으쓱하기도 했다.     


 그런데 자칫 우쭐할 수 있던 나를 겸손하게 만든 분이 있었다. 직장에서 일을 하며 몇해전 알게 된 분이었는데, 아이 셋을 키우며 박사학위도 따고, 교수로 연구도 하고, 외부강의도 하는 분이었다. 그분을 보면 ‘나는 그중에 하나 하기도 벅찰 거 같은데 어떻게 이 모든 걸 다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분이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도 그림을 배운 적 없다셔서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웠고 내 마음속에 엄청난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그분의 그림을 보자, 그림에서도 나와는 다른 차원이시구나 싶었다. 아무리 봐도 처음 그린 사람의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처음 그림을 그리던 참이었고, 사람마다 그리는 방향이 다를 수도 있다 생각하며 있었다.  

    

 이후에도 난 직장생활을 하며 나를 위해 조금씩 이것저것 해보며 지냈고, 내가 좋아하는 ‘시’와 ‘그림책’이 닮았음을 느끼며 그림책을 구상하며 준비하고 있었다.

 그 사이 그분은 새로운 기관의 장으로 취임하셨고, 1주년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여전히 열정 넘치는 모습과 반가이 맞아주시는 모습에 힘을 얻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선물도 받았다. 달력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그린 그림으로 채워진 것이었다.

 ‘와아’ 

 나는 순간 숨 막히듯 놀랐다. 그동안 그분이 얼마나 바뻤을지 상상이 되는데, 그 와중에도 계속 그림 작업을 하셨던 거다. 또한 그림의 수준도 놀라웠다.  나 역시 정말 직장생활로 치열하게 바빴고, 짬짬이 다른 시도를 하느라 시간을 내지 못했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그동안 꾸준히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그림의 수준도 그저 일반인의 것이었다. 내가 그리는 게 순간 초라하게 느껴졌고, 그림을 그린다라고 말한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때, 그림은 이런 분이 그려야하는 건가 싶었다. 그림을 그린다고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의 재능도 있어야하는 거고, 아무리 바빠도 그림을 그릴 정도의 열정과 결과물을 내야 자격이 있는 거다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내 즐거움과 만족, 자부심들이 우물안의 개구리의 그것처럼 느껴졌고, 내안의 그 무엇이 흔들림을 느꼈다.


 그렇게,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기려 할 때였다. 문득, ‘그렇다고 내가 그림을 그만 그려야하는건 아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다양하고, 그 표현과 형태와 수준도 다양하다. 레오나르도다빈치나 미켈란젤로처럼 그리는 사람도 있지만, 마티즈처럼 그리는 사람도 있고, 바스키아처럼 그리는 사람도 있다. 인스타툰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도안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삽화를 그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모두가 다 미켈란젤로처럼 그릴 필요는 없는거다나는 그분처럼 그리지는 못하지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면 되는거다. 나의 색채가 담긴 그림을 그리면 되는거다. 그림 하나로는 그렇게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모습을 표현하면 되는거다. 그건 나만이 그릴 수 있는거니까. 그래서 그런 나에게는 나의 그림 실력이면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선생님은 그런 것도 잘하실거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나에게 맞는 능력이 필요한만큼 장착되어있는거라고.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말이다.

 내가 피아노를 쳐야하는 사람이었다면, 피아노학원을 다니던 어린시절 재능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만약 수학자가 되었을 사람이라면, 수학을 좋아하고 숨쉬듯 이해했을거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 피아노는 그냥 쳐야하는 거였고, 수학은 이상하게 잘 이해되지 않고 계속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나의 길이 아니니 그 정도의 능력이 장착되지 않은거고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러니 나에게 다른이의 능력이 없다고 아쉬워하거나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거다. 누군가 그림을 더 잘 그리는 건, 피아노를 잘 치는 건, 재테크 능력이 있는 건 그들에게 장착된 능력일테니까.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그리고 노력하면 할 수 있더라도,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갖고 있는 인간이기에 그 중에서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맞는 길을 찾아가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게 맞는 거 같다. 

     

 그래. 내게는 내게 맞는 능력이 주어져 있다.     


 그렇게 난 또 하나의 숨겨진 삶의 비밀을 알게 된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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