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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ANG Nov 06. 2019

조형적 문자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그림보다는 글이 더 구체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다. 미술가라 하더라도 굳이 그림과 조각 등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시기는 지나갔고, 개념과 아이디어가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간결한 텍스트만을 이용해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도 많이 생겨났다. 텍스트는 형태에 따라 이미지보다 대다수의 관념 속에서 객관적인 의미를 가지며, 구체적이고 정확한 묘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의미를 더욱 깊고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Untitled(충분하면만족하라)>(2019)

 현재 용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는 미국의 현대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전시 FOREVER가 열리고 있는데, 매표가 진행되는 입구에서부터 전시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충분하면 만족하라’

 

키를 훌쩍 넘어 천장높이까지 꽉 찬 글씨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바바라 크루거의 첫 한글 작품이라는데, 한글이지만 뭔가 어색함이 묻어나고 강압적인 어투에 의미는 알겠지만 무언가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크루거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전 약 10여 년의 잡지사 디자이너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경력들은 본인의 작품 스타일을 이루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가 있다.그녀의 대부분 작품들은 붉은색이나 검은색 테두리를 작품에 둘러 시각적인 집중을 유도시키고 그 안에 주로 흑백 사진과 같은 색 대비가 강렬한 이미지를 가공하여, 그 위에 매우 직설적이거나 혹은 재치 있는 언어유희 등을 사용해 텍스트와 이미지를 함께 병치시킨다. 잡지 광고 면과 같은 이러한 작업 방식을 통해 그녀는 계급, 젠더, 정치와 같은 이슈를 다루며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러한 메시지는 광고와 같은 그녀의 작업 스타일과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메시지에 집중시키고 사회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명동 대신 파이낸스 금융그룹 신사옥에 위치한 <LOVE>

명동에 위치한 ‘대신 파이낸스 금융그룹 신사옥’으로 가면 지난해 작고한 미국의 현대 미술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를 만날 수가 있다. 인디애나도 텍스트 아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 중 한명 인데,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들은 특히나 다른 작가들보다도 더 간결하고 상징적인 문자를 사용한다. 한 단어만을 사용해 색대비가 극적인 거대한 조각 작품을 주로 제작하는데, 그의 작품은 극단적으로 간결한 단어와 강렬한 색대비, 그리고 치밀하게 계산된 시각적인 안정감과 거대한 스케일 때문에 랜드마크로서의 기능도 심심찮게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로버트 인디애나가 얼마큼이나 현대의 시각디자인과 상업디자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인디애나는 주로 LOVE와 같이 EAT, DIE처럼 극단적으로 간결하지만,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들을 작품으로 제작함으로써 평소엔 잘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행위나 모습들에 대해 연상 작용을 유도하고 심도 있는 고찰을 이끌어낸다. 그의 LOVE 시리즈는 현재 서울은 물론이고 가장 유명한 <LOVE>가 있는 뉴욕과 필라델피아, 도쿄, 타이베이 등 세계 곳곳에서 만나볼 수가 있다.


 <Apocalypse Now, enamel and flashe on aluminum> (1988)

로버트 인디애나와 함께 미국에는 또 한 명의 텍스트 아트로 잘 알려진 현대미술가 크리스토퍼 울이 있다. 울은 넓게 펼쳐진 흰 캔버스 위에 ‘RUN DOG RUN’, ‘FOOL’, ‘RIOT’와 같은 짧은 단어부터 시작해 1987년 월스트리트의 주가 대폭락 이후에 발표했던 ‘SELL THE HOUSE, SELL THE CAR, SELL THE KIDS’와 같은 문장 단위의 텍스트까지 다양한 종류의 문자들을 차용해 실크 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검은색 글자를 스텐실로 찍어낸다. 이러한 작업들은 크리스토퍼 울이 어느 날 우연히 새하얀 트럭 위에 ‘SEX’나 ‘LUV’와 같은 단어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더럽혀진 것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와 같은 작업 스타일을 선보이게 되었다. 울의 문자들은 바바라 크루거나 로버트 인디애나처럼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을 갖진 않는다. 오히려 글자 주변엔 물감 자욱이 덕지 덕지 붙어있고, 색료가 군데군데 번져있으며, 일부러 글자를 지우고 덧입혀 씌우기도 한다. 이러한 울의 거친 텍스트들은 울이 선택한 특이한 뉘앙스의 텍스트들과 만나면서 그라피티와 같은 생동감과 함께 다잉 메시지 같은 심오함 또한 느끼게 한다.

 

이외에도 트레이시 에민, 브루스 나우만, 제니 홀져와 같은 다수의 아티스트들도 텍스트를 이용한 유수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는데, 텍스트 아트는 문자로 표현했기 때문에 이미지 위주의 그림 작품보다 해석의 여지가 부족하고 가벼운 작품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표현 방식일 뿐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철학과 메시지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난해한 현대와 동시대의 미술 작품들 사이에서, 오히려 텍스트로 표현된 작품들이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개념의 본질에 더 가까운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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