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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JANG Nov 06. 2019

꽃, 숲

봄이구나라고 체감이 들 만큼 추위가 많이 가신 최근이었다. 봄이 오면 개나리나 민들레같이 많은 꽃이 필 텐데 일찍이 가을부터 겨울까지 이미 MMCA 서울관에서는 민들레 꽃이 피고 숲도 무성해있었다. 먼젓번부터 서울관에서는 최정화의 ‘꽃, 숲’ 전시가 진행 중에 있었는데, 서울관에서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연계해 최초로 열리는 뒤샹의 전시 열이 워낙 뜨겁다 보니 현재도 같은 장소에서 전시 중인 최정화의 전시는 비교적 언급이 적다. 내가 MMCA 서울관을 방문했을 때 최정화의 전시를 본건 도합 10회가량은 될진대, 그만큼 전시 기간이 길기도 했고 많이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이 이야기를 쓰는 게 조금은 겸연쩍기도 하다.

최정화_꽃, 숲 Blooming Matrix, 2016-2018, 혼합재료 Mixed materials, 가변설치 Dimension variable 출처 : MMCA

최정화의 전시는 플라스틱 바구니, 빗자루, 풍선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지만 그 용도를 다했거나 버려진 소모품들을 반복적이고 불규칙적인 조합을 통해 다채로운 설치작품들을 선보인다. 폐품과 쓰레기라는 소재로 만들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꽃이나 숲, 씨앗 같은 제목의 작품들을 선보이는데 이러한 최정화의 작품들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모품들을 이용하여 친숙한 외관을 띄면서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폐품과 꽃을 재료와 작품이라는 관계로 병치시킴으로써 색다른 재미를 준다.

서울관의 지하에 마련된 공간에 최정화의 전시명이자 작품명 <꽃, 숲> 전시는 펼쳐져 있다.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여러 가지 폐품과 공산품들로 만든 꽃탑 146개를 관람객의 동선에 맞추어 늘어놓고 마치 산책길을 걷는 듯 숲을 형상화해놓은 공간 설치 작품이다.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텔링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한 장치로 귀뚜라미 소리 나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스피커를 통해 흘려보내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은은한 조명 빛이 밝기를 조절하며 강하게 혹은 약하게 쬐기를 반복한다. 최정화가 폐품들로 만든 이 가상의 숲에서 관람객들은 어느새 이것들이 폐품임을 잊고 잠시나마 짧은 산책을 즐길 수가 있는데, 최정화가 의도했듯이 쓸모 없어진 물건에 꽃과 식물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이것을 공간형 체험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최정화_민들레 Dandelion, 2018, 생활그릇, 철 구조물 Used Kitchenware, Steel structure, 9MØ 출처 : MMCA

서울관 마당으로 나가보면 최정화의 초대형 설치작품인 <민들레>가 우두커니 서있다. 이 작품을 위해 최정화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 부산, 대구 등지를 돌며 <모이자 모으자> 프로젝트를 통해 약 7천 점의 생활용품을 시민들에게 기증받았다. 그 결과 높이 9미터 무게 3.5톤의 초대형 고철 설치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시민들이 기증한 생활용품을 사용해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시민들이 작품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용도를 다하고 버려진 소모품들로 시작과 생명의 상징인 민들레와 그 씨앗을 형상한 작품을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었다. 그야말로 공공에 의한 공공을 위한 공공의 미술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언젠가 최정화의 민들레 앞에서 약속 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민들레를 둘러싼 그 공간에는 가족과 연인 단위의 사람들이 많이도 모여있었다. 이 작품의 향후 행방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으나 나에겐 이 광경이 퍽이나 기억에 남아 괜스레 아쉬움이 남는다. 주말을 끝으로 마지막 겨울 산책을 나가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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