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 '하수구의 요정'
“어린이날 같은 건 대체 왜 만든 거야? 짜증나게….”
어린이날이랍시고 교무실에 불려가 원치 않는 선물을 받은 주인공 하진구(10세). 불우한 어린이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진구의 자존감은 볼품없이 쪼그라져 버린다.
진구에게는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다. 가슴을 짓누르는 비밀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던 어느 날, 수챗구멍 안에서 솟아난 콩싹을 발견하고 똥 요정 뿌직을 만나게 된다. 생김새, 행동, 말투까지. 예사롭지 않은 요정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진구의 마음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온다.
나는 자가출판플랫폼 부크크를 통해 ‘하수구의 요정’을 출간하면서 동화작가가 되었다.
2013년 봄, 꽤 명망이 높던 아동문학 작가학교를 통해 동화 창작을 시작했고, 정식 등단 루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애당초 자가출판이니 자비출판이니 하는 방식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쓴 장편을, 그것도 단편을 장편으로 바꾼 초고를, 투고는커녕 공모전 한 번 출품 해 보지 않은 채 출간해 버렸다. ISBN이 찍힌 책이 온라인으로 유통된 순간 나는 등단 작가의 지위를 얻었고, 신인상 공모 출전 자격을 잃었다. 그 후로 이렇다 할 수상 성적이 없었기 때문에, 작가도 지망생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이따금 내 부끄러운 시작을 아는 이들의 비웃음을 받고 있다.
나는 실력은 없는데 간판만 빨리 달고자 하는, 작가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었을까?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그저 작가 소리만 들으면 장땡인지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스스로 책을 낸 걸까? 상식적으로 한번 생각을 해 보자. 너라면... 그랬겠니?
2016년은 내 인생에 잊지 못할 한 해였다. 그해 9월, 보석 같은 아들을 얻었고, 그보다 석 달 앞서 아빠를 보내야 했다. 무더위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아빠는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으나 깨어나지 못하셨다. 날벼락처럼 맞이한 이별이었다. 심지어 애도조차 할 수 없었다. 울 때마다 배가 뭉쳐서 애써 슬픔을 외면해야 했다.
출산 후 관절들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마자 나는 가장 빠른 출판 방식을 찾아보았다. 집필, 교정, 교열, 표지디자인, 내지디자인, 마케팅 등 인쇄, 유통 외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지만,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누구든 출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발견했다. 부크크는 당시 교보문고의 뒤를 이어 주문제작도서(POD) 플랫폼으로 막 자리를 잡아가던 중이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2017년 1월 3일이 아빠의 환갑이었다. 죽은 사람에게 생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나는 아빠에게 꼭 환갑 선물을 드리고 싶었다. 내가 드릴 수 있는 건 글이 전부였고, 그렇게라도 해야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뒤늦은 애도와 산후 우울증이 겹쳤던 것 같다.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던 시기였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등단했다. ‘하수구의 요정’은 다시 봐도 부족한 점이 많은 원고였다(그런데 이건 어떤 원고든 똑같을 것 같다. 자기 원고를 보며 흡족해할 작가가 몇이나 될까). 당시 플롯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대상 독자에 비해 어려운 어휘들도 간간 보이지만,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아빠를 위한 마음이 담긴 원고였고, 아빠에게 주고자 했던 책이었다. 그 이상 뭐가 필요한가. 나는 ‘하수구의 요정’ 중에서 6장 ‘문고리에 핀 꽃’이 제일 좋다. 아마 아빠도 그럴 것 같다.
미용실 앞을 지나는 데, 가게 문 옆으로 꽃을 파는 가판대가 보였다.
‘카네이션 떨이’라고 적힌 팻말 밑에 알록달록한 꽃바구니가 늘어서 있었다. 꽃을 보자 아빠가 생각났다. 꽃바구니는 하나에 오천 원이었다. 진구 한 달 용돈과 맞먹는 액수였다. 깜짝 놀라 자리를 뜨려는 데, 종이상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상자 속에는 가슴에 다는 가짜 카네이션이 가득 했다. 종이상자 앞에 적힌 천 원이라는 글자를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줌마, 이거 정말 천 원 이에요?”
“응. 천 원 맞아. 그걸로 두 개 줄까?”
“아니요, 그냥 하나만 주세요.”
“왜에? 엄마, 아빠 하나씩 달아드리려면 두 개는 사야지.”
“...그냥 하나면 돼요.”
진구는 가짜 카네이션 한 송이가 든 검은 봉지를 받아 들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
“근디 저건 뭐여?”
뿌직이 진구가 들고 온 비닐봉지를 향해 달려갔다. 봉지 속에서 꿈틀거리다가 가짜 카네이션을 질질 끌고 나왔다.
“이건 뭔 꽃이 향기도 없구 이리 뻣뻣허다냐?”
“가짜라 그래.”
“가짜 꽃은 뭐다러 샀댜?”
“어버이날이잖아, 오늘이.”
뿌직이 다시 가짜 카네이션을 쳐다보았다. 꽃송이 양옆으로 ‘어버이 은혜,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분홍색 띠가 늘어져 있었다.
“쳇, 자식 생일도 모르는 양반헌티, 뭐가 그리 감사하다고....”
“우리 집은 원래 그런 거 안 챙겨.”
“원래 안 챙기는 집이 워딨냐? 다 마음이 없으니께 그런거지.”
진구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아빠 편을 들어주고 싶지만 적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심지어 어쩌면 뿌직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점점 가습이 답답해졌다. 그래도 간신히 대답을 짜냈다.
“힘드니까 그렇겠지....”
“너는 뭐 안 힘드냐? 사람 사는 게 다 똑겉지. 어른만 힘들구 애들은 뭐, 맨날 탱자탱자 즐거운 줄 아나? 화장실두 없는 집에서, 생일 선물 한 번 못 받아보고 크구 싶은 애가 시상천지 워딨겄어. 샌드위치두 그려, 기껏 만들어줬더니 찍어도 안 보구....”
잠자코 듣고 있던 진구가 훌쩍 훌쩍 코를 들이켰다. 앙다문 입술 옆으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진구의 눈물에 뿌직이 입을 다물었다. 뭐가 그리 분한지 몸통이 연신 붉으락푸르락거렸다. 씩씩거리며 가짜 카네이션을 발로 몇 번 차더니, 쓰레기통이 있는 구석 쪽으로 냅다 던져버렸다.
해질 무렵, 아빠가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밥도 먹지 않은 채 그대로 자리에 누워 코를 골기 시작했다.
진구는 아빠를 등지고 방문턱에 앉아 부엌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아빠와 가까이 있고 싶지 않았다. 아예 바깥으로 나가버리고 싶었지만 가로등이 고장 난 골목길은 너무 깜깜하고 무서웠다.
...
진구 발에 채던 운동화가 옆으로 쓰러졌다. 진구가 쓰러진 운동화를 내려다보았다. 운동화 밑으로 무언가 희끗한 게 보였다. 허리를 숙여 그 하얀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
아침에 진구가 두고 나간 쪽지였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거뭇한 글자부분이 길어진 느낌이었다.
부엌 불을 켜고 다시 쪽지를 들여다보았다. 진구가 쓴 글 말고도 몇 글자가 더 적혀있었다.
‘아빠, 냉장고에 샌드위치랑 유부초밥 있어. 맛있으니까 일어나면 꼭 먹어.’
‘난 괜찮다. 진구 많이 먹어라.’
글자들 사이에서 아빠의 마음이 느껴졌다. 등허리가 따뜻해지더니 마음이 녹아내렸다. 섭섭함은 순식간에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진구는 부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실컷 울고 나니 문득 카네이션이 떠올랐다. 뿌직이 집어 던진 카네이션은 휴지통과 벽 사이에 떨어져 있었다. 후후 입으로 먼지를 털고 비뚤어진 띠를 바로잡았다. 그러곤 아빠가 잘 볼 수 있도록 현관 문고리에 꽂아 놓았다.
진구는 다시 방문턱에 앉아 문고리에 걸린 카네이션을 바라보며 샌드위치와 유부초밥을 먹었다. 공부방에서 먹을 때보다 훨씬 맛있었다.
-강다현 ‘하수구의 요정’ 65~7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