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으로 가장 위험했을 때는 내적으로 가장 건강했을 때였다.
지난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내적으로는 건강했지만, 외적으로는 내 인생 중 가장 위험했던 시기다. 나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디에 가던, 무엇을 하던 개개인의 정해진 명에 따라 ‘위험’은 그들 주위 어느곳에나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난다고 지인들에게 말하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없이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은 단연 “근데 거기 안 위험해?”다. 예전에는 그곳이 왜 위험하지 않은지 왜 그 정도로 가고 싶은지 구구절절 그들에게 설명했지만, 요즘은 그냥 몇 가지 질문으로 되물으면 그 대화는 비로소 끝이 나며, 그들도 나의 의도를 이해하는 듯 하다.
“근데 여기 한국은 안 위험해? 성범죄, 묻지마범죄, 세월호 같은 인재(人災) 말야. 유럽은 괜찮아? 틈만 나면 테러 나고. 잊을만하면 총기사고 나는 미국. 동남아는? 신생 테러발생지역에 한국인표적 범죄까지.”
예측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무언가에 의한 위험은 온 지구, 그리고 우주 어디에나 있다. 행성폭발 같은 것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거 말고, 내가 나를 위험하게 만든 시기가 있었으니, 바로 나의 워킹홀리데이. 내가 저지른 몇몇 행동들은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자처한 위험’임이 분명하다.
모험을 빙자한 위험을 몇 차례 겪었다.
어느 한가한 날, 집 근처로 조깅을 간답시고 나갔다가 조금 지루해지자 발길의 흔적이 없는 풀 숲을 입구로 삼아 계속 걸어보기로 했다. 호기심에서였다. 호주의 덤불 숲은 이상기온으로 불타는 태양 아래 바싹 말라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종착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비탈길을 명랑하게 걸어나가는 나뿐이었다. 파아란 하늘과 저 멀리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이 있어 명랑한 기분을 한껏 냈다. 한참 가니 녹슨 철심들이 박힌 길다랗게 주욱 뻗어 있는 성벽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한 동영상을 저절로 찍게 됐다.
마침내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의 끝에 다 달았다. 바다와 바로 맞대어져 있는 거대한 절벽층이 나의 종착지였다. 감탄을 자아내고는 “엄마야. 이건 잘못하면 저세상감이다.”하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조깅을 그렇게도 요란하게 한 적은 처음이었다. 과하게 모험적인 산책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느 나른한 휴일의 조깅이 아닌 ‘짧은 모험’이라 추억하기로 했다.
한 때 평화로웠던 나의 로드트립
워홀 막바지 무렵, 호주 동부해안을 자동차로 여행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Travel mate를 구했다. 워홀 비자로 머물고 있는 차를 가진 독일남자였다.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하고 밥도 두 끼를 먹으며 탐색전을 펼쳤다. 아주 죽이 잘 맞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냥 나쁘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출발을 해야 했던 나는 그와 함께 로드트립을 떠나기로 했다. 멜버른에서 900여 킬로미터를 달려 시드니에 도착하자 비용을 좀 더 아끼고 싶었던 그는 리버풀 출신의 로렌이라는 여자를 합류시키자 제안했다.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의 로드트립. 로렌이 합류한 후로 내 마음은 전 보다 확실히 편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호주에서의 버킷리스트가 그렇게 빨리 깨질 줄이야.
그의 트럭 짐칸에 대형 텐트를 설치해 세 명에서 캠핑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그 날 너무 피곤해 시체처럼 잠들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내 장딴지를 두 세 번 콕콕 찌르는 게 아닌가? 이런 개 자식. 피곤한 눈을 부릅뜨고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다음 날 미안하단 말도 없는 개 자식이었다. 로렌에게 이 자식 이상하다고 하니, 그날 자기도 똑같이 당했단다. 우리는 그를 떠나기로 했다.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아침 일찍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자식에게는 샤워 핑계를 대며 오늘만 호스텔에서 묵는다고 하고, 몇 시간 후에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차에 실었던 모든 짐을 서둘러 내려 다시 등허리에 지고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되길 바라며 말했다.
“See you.”
눈치를 챈 듯 아닌 듯 감이 안 오는 그의 표정. 서둘러야 했다. 그 곳에서 5분 거리에 있다는 호스텔을 찾아 나섰다. 어두워지더니 이내 깜깜해져버린 히피들의 시골마을에서 여자 둘은 서둘러야 했고, 조급함을 느꼈다.
‘도망가는 우리들을 그 독일남자가 쫓아오면 어떡하지?’
‘마약에 잔뜩 취한 히피들이 헛 짓거리를 하면 그땐?’
20분 이상을 휴대폰 조명에 의지해 돌조각이 가득한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졸졸졸 소름이 끼치는 시냇물 소리만 들릴 뿐 호스텔이 있을 만한 불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별들은 또 쏟아질 듯 많았다. 농담도 하며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호러영화: 실제상ᄒᅶᆼ이었다. 그런 무서운 영화 많지 않나. 여행가서 길 잃고, 우연히 사람을 길에서 만나 도움 같은 것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은 우리를 노리고 있던 싸이코패스 살인자. 우리는 그에게서 도망치는 도망자.
죽는 소리를 해가며 40분쯤 지났을까.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은 우리가 찾던 호스텔이었다.
“살았다. 우리!”
5분거리라는 건 차로 갔을 때 얘기였다.
사진 1. 동맥 끊어진 줄 알고 혼자 호들갑 떨었는데 라이프가드께서 쿨하게 소독해주시고 걍 다시 타러가라고 하심.
사진 2. 생명엔 지장이 (당연히) 없음을 깨닫고 다니엘라와 찍은 기쁨과 영광의 셀카
사진 3. 서핑 끝나고 확인한 누구한테 맞은듯해뵈는 광대의 흉터. 어이없음의 셀카
위험했던 시기의 최고봉은 서핑하는 동안이었던 것 같다. 서핑은 거대한 바다와 인간이 어우러져 즐기는 스포츠다. 무시무시한 상어 공격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고는 바다 위 서핑보드와 함께 떠 있는데, 반사된 그림자가 상어 머리 같아 보이길래 화들짝 놀란 적도 몇 번. ‘어쩌면, 내가 정말 운이 없으면, 내 생이 여기까지라면, 여기서 상어한테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보드 위에 곧 잘 일어서는 수준이 되자 겁 없이 바다로 나가곤 했다. 파도가 크던, 서핑보드가 바람에 휘청거리던 그냥 나갔다. 그렇게 부상도 많이 당했다. 검붉은 멍은 기본, 이곳 저곳 베고, 발목을 삐고, 발바닥도 아프고, 뱃가죽이 시뻘개지고, 앞이 흐릿하게 보이고, 어깨가 탈골된 것 같이 통증이 오고, 결국 피도 봤다. 모랫바닥에서 구르면서 새긴 내 볼따구의 거뭇거뭇한 흉터는 지금도 누구한테 얻어맞고 와서는 딴소리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구구절절 늘어놓으니 언뜻 ‘서핑 좀 하는데?’ 하겠지만 저 먼 얘기다. 이토록 다소 위험한 취미를 많으면 일주일에 6번을 하면서 살았다. 위험한 순간은 내가 직접 만들었다. 바다에서 서핑을 함으로써 서핑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 상어에게 공격받을 확률, 바다에서 표류할 확률, 익사할 확률도, 스스로 더 높인 셈이다. 이쯤 되니 새파랗게 젊은 것이 생 마감을 하고 싶어 환장한 것 같아 보인다.
근데 말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이 생을 고통스럽게 마감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 때라도, 고통스럽게 죽고 싶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주 편안하게 잠든 채 가고 싶다. 열댓장 절벽셀카에 이 목숨을 걸고 싶지 않다. 따뜻한 케언즈 앞바다서 수영하다 악어에게 물려 죽기도 싫다. 모르는, 또는 아는 인간에게 끔찍한 일을 당해 억울하게 가기도 싫다.
근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했던 시기는 맞는데,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였던 것도 분명하다.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느꼈던 그 성취감의 스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내가 자처한 저 모험적인 행동들이 내 마음의 행복과 만족을 만들어냈다.
외적으로 가장 위험했을 때는 내적으로 가장 건강했을 때였다.
이 세상에는 위험을 감수할만한 행복이 가득가득하다. 곧 부서져버릴 듯한 (그럴 일은 없음) 낭떠러지 위 두근대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엔돌핀을 돌게 하는 취미를 갖는 것, 계획할 때는 모르지만 모험으로 가득 찰 여행을 계획하는 것, 익숙하지 않은 일에서 자기도 몰랐던 흥미를 찾는 것, 하고 싶었던 일에 용기를 내는 것 등.
호주 동부여행의 최종목적지인 케언즈에서 독일남자를 봤다. 항상 잘 입던 붉은 색 티셔츠 차림으로 누군가와 함께 번화가를 걸어가는 그 독일남자를 봤다. 콧바람이 빠지면서 배에 힘이 들어가는 헛 웃음이 나왔다. 운 좋게 살아 남고 보니(?) 나만이 할 수 있는 오싹한 이야기가 생긴 것 또한 이따금씩 곱씹을 소소한 행복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