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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스트리치

The Ugly Ostrich

휴게소는 동물원이었다. 여름이고 휴가철이었다. 버스를 탄 단체 관광객들이 내려 허기를 때우는 곳. 무료함에 지친 아이들의 주의를 붙들어 놓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미운 아기 오리가 태어난 식당 옆 공터의 작은 동물원이었다. 어미 오리는 거기서 알을 품고 있었다. 마흔하고도 네 번째 밤이 지나도록. 길어도 스물여덟 밤이면 알을 깨고 나왔던 다른 새끼들과 달리, 이 거대한 알은 시간마저 많이 필요로 했다. 품기보다는 거의 알에 올라타 앉아, 어미 오리는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했다. 

     

“도와줘요!”     


어미 오리의 외침에 모두가 달려들어 알을 함께 품었다. 수탉도, 목청 큰 거위도, 2미터 버마뱀과 이구아나도. 날개와 날개, 꼬리와 갈퀴를 맞잡고 빙 둘러 알을 감쌌다. 깃털과 비늘로 층층이 덮인 알에서 마침내, 새끼가 나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쩍. 쩌저적!”      


단단한 부리가 두꺼운 껍질을 뚫고 구멍을 내었고, 아기 새가 긴 다리를 알 밖으로 펴고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엄청나게 크고, 엄청나게 못생긴 오리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긴 혀로 눈을 문질러 닦으며 카멜레온이 말했다.     


“저런 못생긴 새는 생전 처음 보는군.”      


그 말에 어미 오리는 주눅이 들어 속으로 생각했다. 수영을 시켜봐야겠다고. 물에 들어가면 일단은 저 흉측한 발만이라도 가려질 것이라고 말이다. 다음 날 날씨는 아주 화창해서 도로 위 아스팔트가 뜨겁게 달궈졌다. 어미 오리는 돼지들이 종종 몸을 담그는 진창의 연못으로 가족 모두를 이끌었다. 첨벙! 어미 오리가 먼저 연못에 몸을 던졌다.      


“꽥, 꽥!”     


오리 새끼들이 한 마리, 두 마리씩 수면 위로 몸을 두둥실 띄웠다. 헤엄치는 건 오리들에겐 일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의 거대한 아기 오리는 그렇지 못했다. 헤엄 자체를 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연못의 높이는 미운 아기 오리에겐 고작 정강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물 위로 드러난 미운 아기 오리의 못생긴 다리를 보며, 어미 오리는 실망했다. 어미 오리는 하는 수 없이 또 한 번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 아이 좀 도와주시겠어요?”     


동물원의 식구들이 너도나도 거대 아기 오리에게 모여들었다. 밉고 커다랗기만 한 아기 오리를 예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늙은 닭이 떼어 달아준 벼슬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거위가 가르쳐 준 노래는 시끄럽기만 했다. 공작 깃을 꽁무니에 꽂아도, 말티즈에게 재롱을 배워도 우악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급기야는 말티즈에게 배웠던 ‘손’을 따라 하다가 주인집 딸의 눈을 발로 찔러 호되게 맞기까지 했다. 당나귀를 따라 달리는 것만이, 미운 아기 오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재주였다. 


"달릴 때 기분은 정말 최고예요. 바람이 내 몸을 만지고 가는 느낌이 좋거든요." 

"그건 당나귀들이나 하는 거잖니. 날개 달린 새에겐 쓸모없는 일이야." 


숨을 고르는 미운 아기 오리에게 거위가 차갑게 말했다. 어미 오리 역시, 미운 아기 오리를 보며 상심한 얼굴로 말했다.      


“도저히 예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구나.”     


그날 밤, 미운 아기 오리는 긴 다리로 동물원을 겅중겅중 달려 나왔다. 

동물원에서 살기엔 너무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미운 아기 오리는 넓은 도로변에 서 있었다. 두툼한 발가락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던 오리의 귓가에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사슴 한 마리가 도로 한가운데 다친 다리를 꿇고 앉아 있었다.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사슴의 옆을 훅훅 지나갔다. 자세히 보니 사슴이 아니었다. 사슴과 무척 닮았지만 길고 억센 덧니가 주둥이 옆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고라니였다.      


“저 동물이 안타까워. 이빨만 못나지 않았어도 동물원에서 살 수 있었을 텐데.”      


미운 아기 오리는 동물원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꽃사슴 무리가 생각났다. 멋진 뿔과 화려한 무늬를 보이기만 하면 관광객들은 사료며 과일을 던져주곤 했다. 도로 위 동물의 처지가 자신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진 미운 아기 오리는 서글퍼졌다. 터덜터덜 걸어 도로를 빠져나왔다.      


도로를 벗어난 오리는 숲으로,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 땅바닥을 쪼던 미운 아기 오리의 눈에, 깨진 알껍데기들이 보였다. 고개를 치켜들자, 뚱뚱한 새 한 마리가 둥지를 가득 채우고 앉아 있었다. 아기 오리가 물었다.     


“너는 누구니? 왜 나처럼 혼자 있니?” 

“난 뻐꾸기야. 지금 막 둥지를 청소한 참이지. 그러는 넌 왜 혼자야?” 

“동물원에서 도망 나왔어.”      


미운 아기 오리는 자신이 지금까지 겪은 일을 뻐꾸기에게 말해주었다.      


“엄마는 못생긴 나를 좋아하지 않았어. 난 그냥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데.”

“넌 바보 같구나. 나였다면..”     


뻐꾸기가 눈을 부릅떴다.       


“형제들부터 차례대로 없앴을 거야. 어미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도록.” 

“뭐라고?”     


그제야 미운 아기 오리는 나무 밑 알껍데기들이 왜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뻐꾸기는 다른 새알들을 모조리 둥지에서 밀어냈던 것이다. 무서워진 미운 아기 오리는 서서히 뒷걸음질 치다 달리며 도망쳤다. 뻐꾸기의 외침이 나무둥치에 부딪혀 퍼져나가며 숲을 왕왕 울렸다.      


“돌아가! 가서 널 무시한 동물들에 복수하라고!”     


숲을 빠져나온 미운 아기 오리는 들과 산기슭을 전전하며 지냈다. 몸집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음식은 늘 부족했다. 운이 좋은 날엔 지렁이나 나무 열매를 주워 먹을 순 있었지만, 종종 배를 곯는 날이 다수였다. 거대해진 미운 아기 오리는 늘 배고픔에 시달렸다. 동물원에서 꾸준히 받아먹던 사료가 그리웠다. 더운 날씨가 차츰 쌀쌀해질 즈음, 미운 아기 오리는 한 농장에 다다랐다.      


울타리. 그리고 동물들의 진한 체취. 구유에서 좋아하던 사료의 냄새가 풍겼다. 농장에 가까이 다가가는 미운 아기 오리를 향해, 이제껏 본 적 없는 커다란 새들이 도도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목이 무척 길었고 긴 목만큼 다리도 튼튼하고 강해 보였다. 커다란 날개는 잿빛 아니면 검정으로 광택이 났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당당하고 멋졌다. 그중 잿빛 깃털의 새들이 미운 아기 오리에게 다가와 긴 속눈썹을 깜박이며 말을 건넸다.      


“여기 타조 한 마리가 새로 왔군.”      


다른 새들도 함께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것도 예쁜 암컷이야.”      


다른 타조들도 모여들었다. 울타리 너머로 부리를 내밀어 미운 아기 오리, 아니 어린 타조의 깃을 부리로 쓰다듬어 주었다. 어린 타조는 태어나 처음 받는 환대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자신 역시 그들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갓 자라 윤기가 나는 잿빛 깃털이 어린 타조의 몸을 덮고 있었다.      


“예쁜 아이야. 우리와 함께 살자.”      


무리 중 가장 크고 검은빛 깃털을 자랑하는 수컷 타조가 말했다. 어린 타조는 동물원에서 자신이 무시당하고 놀림 받던 일을 떠올렸다. 그런데 여기 타조 농장에서는 모두 자신을 예쁘고 아름답다고 해준다. 어린 타조는 행복에 겨워 깃털을 한껏 부풀리고는 소리쳤다.      


“못생긴 오리였을 때는 이런 행복은 상상도 할 수 없었어!”      


쌀쌀한 가을이 가고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지만 어린 타조는 동료 타조들과 함께 따뜻한 겨울을 났다. 옹기종기 붙어 있으면 매서운 바람도 견딜 만했다. 꼬박꼬박 나오는 사료 덕에 배곯을 일 또한 없었다. 어린 타조도 살이 제법 올라 커다란 날개와 튼튼한 다리를 갖게 되었다. 마침내 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이 왔을 때, 잿빛 깃털의 암컷들이 어린 타조의 앞에 모여들어 말했다.      


“이제 너도 알을 낳을 준비를 해야지.”

“알이요?”      


당황한 어린 타조의 앞에 검은빛 깃털의 수컷이 나타났다. 수컷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어린 타조의 앞에서 좌우로 흔들어댔다. 갑작스러운 구애의 춤에 뒷걸음치는 어린 타조에게 잿빛 깃털의 암컷들이 속삭였다.      


“타조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일이란다.”

“더욱 사랑받는 타조가 되고 싶지 않니?”

“저 수컷은 정말 멋있어! 그에게 예쁨 받을 수 있다니 행운이구나.”     


그제야 알을 품고 있는 다른 암컷들이 어린 타조의 눈에 보였다. 자신보다 튼튼한 날개와 다리를 가지고도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이유 또한 알게 되었다. 알을 낳아 품는 것. 그것이 농장의 타조들이 바랄 수 있는 가장 보통의 행복이자 미덕이라는 것도.       


어린 타조는 수컷 타조를 지나쳐 달렸다. 쭉 뻗은 다리로 땅을 박차고 날개를 훨훨 휘저어 도움닫기를 했다. 그리고 울타리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알을 품는 암컷도 갈고리를 들고 뒤따라오는 농장주인도, 달리는 어린 타조의 뒤로 빠르게 사라졌다. 달리기야말로 어린 타조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었다. 어린 타조는 달리는 자신이 좋았다. 땅을 박차고 달리는 자신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해 봄, 미운 어린 타조는 긴 다리로 농장을 달려 나왔다. 

농장에 머물러 살기엔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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