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를 살아가기 위하여
이 글은 올해 여름에 글쓰기 모임에서 쓴 글을 편집한 글입니다.
1)
올해.
이번 초여름은 주로 칙칙한 구름이 떠 있는, 그런 여름이라고 기억한다. 이번의 장마는 며칠간 매섭게 내리치던 과거의 장마와는 달랐다고 생각한다. 소나기라고 표현하긴 어려운, 마치 동남아에서나 마주친 스콜과 같이 짧고 굵게 내려치는 순간의 비 한 번. 그 외에는 부슬거리는 비들만 지나친 것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하늘엔 내 방구석에 흐릿하게 내린 먼지들을 뭉쳐 놓은 것 같은, 그런 잿빛의 구름이 뒤덮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과거의 장마에 대한 흐릿한 ‘느낌’과 올해의 장마를 지냈던 ‘느낌’만 남아있을 뿐이다. 내가 사무실이나 방에서만 시간을 주로 보내서였을 수도 있지만,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자꾸만 흐렸던 하늘이었다.
하지만 밝은 하늘이었다고 해서 무언가 달랐을까? 지난 몇 달간 청량하고 푸른 하늘을 몇 번인가 집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과거처럼 혼자서라도 낭만을 찾아 한강 혼맥을 즐기는 등의 야외 활동을 할 의욕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나이가 되도록 그런 정취를 함께 즐길만한 사람도 곁에 두지 못하였다. 밖에서 빛나는 햇살과 한없이 맑고도 높은 하늘은 아름다웠고 때로는 경이로웠지만, 이제 타인들의 전유물 같았다. 나는 즐길 수 없는, 그런 타인들의 점유물. 그것은 아마 내가 키워왔던 나의 빛이 어느샌가 새어나가 버려서겠지. 작년을 기점으로 나의 빛이 쇠약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2)
지난 금요일, 아버지의 생일이었다. 한 명을 제외한 가족 모두 함께 저녁을 먹고, 부모님 집에 돌아와 술을 몇 잔 더 걸친 뒤 하룻밤을 묵었다. 아점을 먹고 점저를 먹자던 전날의 약속이 무색하게, 무엇이라도 챙겨주고 싶은 엄마는 우리에게 이른 아침 식사를 차려주었다. 엄마는 전날 저녁에 만든 양념게장을 내왔고, ‘OY이가 양념게장을 참 잘했는데’라고 말하며 누구나 칭찬하는 엄마의 음식에 겸손을 표했다.
어쩐지 눈부시던 햇살. 간만에 푸르던 하늘에서 그 햇살을 마주했지만, 그와 함께한 뜨거운 열기가 햇살을 외면하게 했다. 첫 조카가 놀이터에 가서 놀자고 졸라댔지만, 어른들은 30도가 넘는 날씨에 감히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칙칙하던 여름에 찾아온 모처럼의 맑은 하늘이었지만, 한증막 같던 열기로 인해 선뜻 밖으로 나서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에어컨이 주는 선선한 안락을 선택했고, 이른 기상을 보상하듯 늦게까지 늑장을 부렸다.
우리를 밖으로 이끈 것은 허기였다. 다소 멀긴 하지만 작은누나와 엄마가 평소에 좋아하던, 물회 집에 찾아가기로 했다. 하나인 가족이, 각각의 가족 차에 올랐고, 내 차 뒤에는 부모님이 함께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운전을 하고 있었고, 한산한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뻥 뚫린 내 앞의 시야에는 순수하기만 한 하늘이 펼쳐졌다. 그렇게 앞을 주시하며 운전을 하고 있다가 마침 엄마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엄마가 티 안 냈지?”
.......
자세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가족이 전부 다 모였는데 어찌 OY이만 쏙 빠져서, 얼마나 야속하던지”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본인이 느끼는 허전함에 자신도 모르게 자꾸 딸의 이야기를 했으나, 혹시 그런 행동이 사위와 손녀를 가슴 아프게 할까 봐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다시금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OY은 부모님의 딸이며, 매형의 아내이며, 첫 조카의 엄마이며, 큰누나의 자매이자, 큰매형의 처제이고, 다른 조카들의 이모며, 나의 작은누나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소중했던 존재였지만, 이제는 함께할 수 없는.
3)
완치됐다고 믿어왔던 누나의 희귀병이 작년 1월에 재발했다. 마수와 같은 질병은 수개월 만에 급격히 우리 누나를 무너뜨리며 삼켜버렸고, 채 1년이 가기도 전인 그해 12월, 누나는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그 1년간 누나가 고통받던 모습과 누나의 부재가 우리 모두의 가슴에 구멍을 만든 것 같다. 그 어떤 빛도 스쳐 갈 뿐, 그 속을 밝힐 수는 없는 그런 구멍이. 나에겐 그런 '24년의 기억이 참담하면서도, 야속하다.
터울이 적잖이 있어, 아마 누나와의 심적 거리가 가장 멀었을 나의 마음 한편에도 무언가 도려내진 것 같은데, 다른 가족은 어떻겠는가. 자신의 형제 중 가장 사랑하던 막내 남동생을 잃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딸을 잃은 엄마와, 우리 앞에서는 강한 척하지만, 한없이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있을 아빠와, 나보다 더 오랜 기간 더 가까운 곳에서 동고동락했던 큰누나, 끝까지 변치않고 누나를 사랑하며 지켜준 매형과, 커가면서 하루하루 엄마의 빈자리를 느껴야 할 어린 조카. 내가 어찌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다만 내 감정들의 격랑이 가장 약할 것이라 짐작할 뿐.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슬픔을 나누며 힘이 되어주는 것밖에는 없겠지.
엄마는 친가, 외가, 우리 가족을 통틀어서도 가장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강인한 사람이다. 그런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OY가 ~를 참 좋아했는데', 'OY가 ~는 참 잘했는데' 하며, 자신도 모르게 누나를 자주 언급하기 시작했다. 내색하진 않지만 슬픔이라는 단어 따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고통의 감정이 엄마를 사로잡고 있다는 걸 내심 눈치챌 수 있었다.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일까. 아니,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흐른다 하더라도 그런 구멍이 채워질 수 있을까? 단순히 외면하는 것뿐이다. 나조차도 웃고 떠들다가도 누나의 순간순간이 떠오르면 나는 다시 슬픔에 끌려간다.
4)
타인에게 이런 일을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다. 타인에게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마치 진흙투성이의 손으로 타인과 악수하는 것 마냥 그들에게 부정이라는 감정의 얼룩을 남긴다. 무거운 주제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사람들은 나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그래서 철저히 괜찮은 척하고 다녔다. 마음엔 항상 구름이 껴있었고, 방에 홀로 누워있을 때마다 마음속과 눈에는 비가 내렸지만, 자기검열과 절제의 방죽을 쌓아 철저히 숨겨왔다. 그러면서도 정말 가까운 친구들이 주는 편안함과 그들의 선한 호기심, 알코올은 종종 그 방죽을 무너뜨렸고 그들에게만 나의 슬픔을 퍼부었다. 직장에서는 업무의 공백이 생길 사태를 대비해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만 상황을 공유했다. 각각의 반응도 여러 가지였고 이러는 와중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안달 난 자기중심적인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 내가 말하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 때문이다. 타인의 이야기는 쉽기 때문이다.
타인의 이야기는 쉽다. '힘내',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따위의 말이 쉽게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선한 의도에서 나온 위로까지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타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고 싶을까? 힘내라고 강요해도 힘은 나지 않으며, 괜찮아질 거야 최면을 걸어도 쉽사리 괜찮아질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일들도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은 허무를 전달할 뿐이며 때때로 섣부른 짐작으로 또다른 상처를 남긴다. 나는 누군가의 상처가 차마 몇 가지 단어들로 쉽게 위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가장 큰 위로와 공감이 되는 것 묵묵히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작년에 글을 참 많이 썼던 것 같다. 글이란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지만 누군가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은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다만 글에 다시 슬픔을 배설하는 것에 다소 마음이 편치 않다.
5)
소중한 사람을 잃은 마음이 어떻게 회복이 되겠는가. 겨우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슬픔을 외면하고, 외면하며 그렇게 도망친다. 그래 봤자 하늘에 떠 있는 장마 구름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과 다르지 않음은 잘 알고 있다. 작년을 기점으로 자리 잡은, 장마와 같은 내면의 거무죽죽한 무엇인가가, 나의 진정한 내면의 밝음을 다소 바래게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마냥 슬퍼만 하는 것은 우리 누나가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나의 가장 큰 강점 중 한 가지는 밝음이다. 이는 애써 괜찮은 척하려고 하는 밝음이 아니며, 자기최면도 아니다. 이것은 나에게 내재된 밝음이다. 그리고, 나의 빛은 죽지 않았다. 인생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고난이 있기에 사소함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그런 슬픔 속에서도 나는 밝게 빛날 것이다. 또한, 나의 밝음을 회복시켜줄 다른 빛 또한 찾아낼 것이다. 장마 구름 사이에서도 눈부신 햇살은 여전히 빛나듯이. 빛을 되찾아서 나보다 더 힘들어하고 있는 다른 가족들의 암운을 잠시나마 비춰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