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을 떠난 작은누나를 기리며
1)
벌써 일 년이려나, 아니면 아직 일 년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은 나의 작은누나의 기일이고, 누나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일 년이 지났다. 바쁜 일상 속을 지내다 보니 벌써 일 년이 지났나 싶지만, 누나의 빈자리가 남긴 우리 가슴속에 구멍이 좀처럼 아물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일 년밖에 지나지 않아서인가 싶다.
일요일인 기일을 맞아, 토요일 저녁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다. 떠난 사람의 부모, 남편, 딸, 언니, 형부, 조카들, 남동생인 나까지, 열 빼기 하나인 아홉. 우리 모두 떠난 사람을 추모하고 슬픔을 나누기 위하여 모였지만, 우리가 모일 때마다 그 빈자리를 더욱 상기하게 된다. 한 명만 빼고 모두 모인 우리 가족. 모이면 모일수록 빈자리의 크기는 더 크게 느껴지며 더욱 허전하게 느껴지는, 그런 가족. 일 년이 지났지만, 상실에 둔감해진 것은 없다. 오히려 더 많은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아린 마음의 순간들만 쌓일 뿐.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빈자리의 공허함과 안타까움의 고통만 남는 그런 생각.
2)
우리 가족에게는 슬픈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젊은 나이의 형제들을 하나씩 잃었다는 것. 우리 아버지는 형, 내겐 큰아버지를 잃으셨다. 내가 태어나기도 몇 년 전에 급작스러운 심혈관계 질환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던 것 같다. 우리 어머니는 가장 사랑하던 막내 남동생, 우리를 누구보다 챙기던 나의 작은 외삼촌을 내 중학생 시절 잃었다. 말기에서야 발견한 뇌종양으로 인해, 사십 대 초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리고 나와 큰누나는 둘째인 작은누나를 잃었다. 주위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여서 시크한 큰누나와 가족들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과묵한 나를 사이에 두고 가족의 단합을 이끌었던 작은누나. 누구보다 활달하고 부모님과 가족들을 모두 잘 챙기던 누나.
3)
2017년, 30대 초반의 누나는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척삭종이라는 뇌종양을 발견한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자다가 원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천운으로 증상이 발현하기 직전에 발견했고, 당시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목에 다소 장애는 얻었으나, 보이는 모든 종양을 제거했다고 했다. 완치했다고 믿은 우리는, 그 이후에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니, 내가 느끼기에는 이전까진 이렇다 할 유대감이 없던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됐다. 그렇게 2023년 말까지 우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누나는 2023년 초에 임용고시에 합격했고 다음 해에 교단에 오를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2024년 1월, 우리는 다시 절망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누나에게 척삭종의 전형적인 증상인 복시 현상이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했다. 분명히 몇 달 전에 실시한 검사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던 뇌에 마수 같은 종양이 단시간 만에 급격하게 누나를 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에 진단 즉시 바로 예정됐던 수술은 당시 의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미뤄졌으며, 그 사이 뇌에서 종양이 퍼져 연구개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재수술 후에도 종양을 모두 제거할 수 없었고, 이전의 방사선 치료의 여파로 수술의 회복도 좀처럼 되지 않았다. 회복을 위한 재수술을 한 다음, 겨우 퇴원이나마 할 수 있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던 누나는 방사선 치료라도 받고자 이곳저곳 돌아다녔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종양의 위치가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사선 치료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연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우리 가족 모두 그 조그만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11월에 다시 MRI 검사를 받은 누나는 종양이 수술하기 전보다 더 무섭게 증식한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시한부 판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도 누나의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재발한 지 채 1년이 되기 전인 그해 12월, 수술하고 1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라던 의사의 말이 무색하게,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너무도 이른 시점에,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보내야 했다.
나에겐 이런 일들이 발생한 2024년이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뇌를 잠식하기 시작한 종양으로 인해 우리는 누나가 천천히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켜볼 수밖에 없음이 너무 야속했다. 차라리 내가 대신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을. 누나의 복시가 나타나던 시점, 수술하고 회복을 기다릴 때, 천천히 무너지는 누나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때, 누나를 떠나보내던 순간, 장례부터 수목장의 절차까지. 그 모든 기억의 파편들이 나의 가슴을 드리우는 암운이 되어 내 마음속에 잠겨있으며, 내 삶의 어느 시점에 불현듯 떠올라 내 마음속에 비를 퍼붓는다.
4)
내가 누나에게 미안한 점 중 하나는, 울음이 터질까 봐 누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것과 누나 앞에서 바보같이 울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누나의 수술을 기다릴 때 의사로부터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후로 누나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볼 때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1월의 어느 날, 우리 가족들이 모두 모였을 때.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난 뒤, 누나가 우리에게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였음을 침착하고 덤덤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를 남기고 떠나야 할 누나가 가장 고통스럽고 힘들 텐데, 거기에 있던 사람 중 나 혼자 바보같이 울어버렸다. 그게 혹여나 떠나게 되어 복잡해진 누나의 마음에 짐이 되었을까, 미안하다.
5)
누나는 나에게 가족의 사랑을 가장 절실히 알려준 사람이다. 누나가 처음 뇌종양을 진단받았던 그해 여름. 나는 지하철에서 누나의 전화를 받게 된다. 뇌종양을 진단받았다는 전화. 그때의 나는 가족과의 유대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어 이민까지 고민했었는데,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비슷한 경험으로 외삼촌을 잃은 우리는 이대로 누나를 잃는 것인가 하는 겁이 덜컥 났다. 그리고 그런 감정이. 강렬히 들었다. 차라리 나였으면. 진심으로. 가능하다면. 차라리 내가 대신할 수 있다면. 착한 척 따위가 아니라, 정녕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이 진심으로 들었다. 가족에 대한 큰 유대감도 없던 나는 그런 모순적인 감정을 겪으면서, 가족이 주는 유대감과 사랑의 힘을 절실히 느꼈다. 누나의 투병으로 인해 우리 가족이 모두 하나가 되었고,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누나도 나에게 정말 잘해주었다. 그러기에 지금도 진심으로, 나의 생명을 대가로 우리 누나를 건강히 살려낼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6)
일 년이 지났지만 좀처럼 마음의 암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누나로 인한 슬픔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문득문득 생각날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들이랑 만나서 어울리는 것도 종종 힘들다. 그 빈자리만 더욱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며, 가족들의 슬픔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리기 때문이다.
터울이 적잖이 있어, 아마 누나와의 심적 거리가 가장 멀었을 나의 마음 한편에도 무언가 도려내진 것 같은데, 다른 가족은 어떻겠는가. 모임 때마다 가족 중 한 명이 없어서 허전하다는 말을 반복하게 된 엄마, 이제는 우리 앞에서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아빠, 나보다 더 오랜 기간 더 가까운 곳에서 동고동락했던 큰누나, 아직도 변치 않고 누나를 사랑해 주는 매형과,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만 씩씩한 척하는 어린 조카. 내가 어찌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다만 내 감정들의 격랑이 가장 약할 것이라 짐작할 뿐. 그렇기에 사랑하는 이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아무리 힘들더라도 더욱 자주 이들을 만나며 함께 슬픔을 나누는 것밖에는 없겠지.
7)
누나가 떠난 지 일 년. 오늘 다 같이 성묘를 가서도 나는 누나 앞에 있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며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다른 가족들은 나보다 더 큰 슬픔을 억누르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더 슬프지 않기 위해 외면하고 외면하며 또 외면한다. 다만, 나도 외면이 능사는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누나의 상실을 겪는 나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 누나를 추모하기 위해, 나는 내가 머무는 오피스텔로 돌아와 이 글을 작성하고 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시간이 하염없이 지나도 바래지 않는 일들도 있는 것이다. 1년이 지났다고 어찌 가족을 상실한 아픔이 조금이라도 아물겠는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 봤자 이 슬픔에 조금이나마 덤덤해질 뿐이겠지. 그나마 이 글을 통해 누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나의 마음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누나의 일을 얘기함으로써 누나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다. 저세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혹시 그런 곳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는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길. 그렇게 다시 재회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