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 일류의 시대에 어중간함에서 오는 행복

적당함의 미학일까 아니면 패자의 변명인가.

by 페릴러


뭐든지 일류가 되어야 하는 세상인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세상은 그랬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더 들기 시작했다. 물론, 남들의 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겠지만, 일류가 되어야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이에 기인한 명성을 통해 돈을 번다. 특히, 유튜브 등 인터넷 방송의 발달로 인해 어떤 능력만 훌륭하면 그것들이 부와 명성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외모가 수려한 사람들은 그 자체로 후원을 받으며, 잘 먹는 사람, 여행을 잘하는 사람, 더빙을 잘하는 사람 등이 수익을 창출한다. 이에 더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발전으로 기회의 폭은 더 커진 것 같다. 신체 능력이 월등한 운동선수들, 뛰어난 실력을 갖춘 요리사들, 노래, 춤, 랩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 자신들의 재능과 노력으로 인해 이미 최고의 실력을 갖췄으나, 빛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 이 시대는 그런 빛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을 노출할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기회는 이들이 인정받고 부를 성취하게 해주는 발판이 된다.


그런 시대에서도 나는 무엇 하나 일류가 되지 못한 채 이렇게 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그저 이 삶에 만족하며 사는 그런 인생. 내가 가진 역량 중 누구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부끄럽게도 그만큼 뼈를 깎는 노력을 한 것도 없었기에 그런 일류가 되지 못한 거겠지. 이 글만 해도 그렇다. 재능이 있어서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에 어떤 작가가 되어 성공해 보겠다는 목표도 없다. 재능이 없으니 그냥 나를 위한 취미로 글을 진지하게 써보자는 그런 어중간한 생각으로 시작한 브런치.


그렇다. 나는 항상 일류보다는 어중간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다. 매우 잘하지도, 그렇다고 못 하는 것도 아닌, 그냥 적당히 잘하는 그런 삶이라고 하나. 적당히 평균보다는 나은 삶. 신체적으로만 봐도 그렇다. 나름대로 이성의 대시도 받아 봤으나 객관적으로 평범과 못생김 사이에 있는 외모. 어디 가서 쉽게 시비 걸리지 못할 적당히 큰 덩치와 평균 키는 넘지만 180은 못 넘는 키. 노래방 가면 항상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하지만 그렇다고 밴드 보컬도 하지 못할 노래 실력. 선천적으로 힘이 다소 센 편이고, 어렸을 때 주변의 유일한 운동부에 스카우트받을 정도는 갖췄지만, 그렇다고 어느 대회를 나갈만한 실력은 못 되는 운동신경.


그렇다면 다른 평가 기준인 공부 실력이나 직장은 어떠한가. 머리는 좀 빨리 돌아가는 편인 것 같은데, 공부량에 그리 비례하지 않았던 성적을 봤을 땐 머리가 특출나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기는 했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고등학교부터는 전교 1등이 되지 못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최악의 성적표를 수능 때 받고서도 운 좋게 서울 상위권 대학교의 경영대학에 입학했지만, SKY는 입학하지 못했다. 대기업에는 입사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대기업이다. 급여도 적당히 내 나이의 평균보다는 잘 받는 편인 것 같지만, 이름난 대기업처럼 성과급 잔치하는 것은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게 뭔가 항상 못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최고, 일류는 아닌 그런 삶.


내가 어떤 노력을 해서 일류가 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지만, 딱히 일류로 키울 시도를 해볼 만큼 특출난 재능은 없다. 그렇다고 막대한 노력을 쏟아 성장시켜 낼 만큼 흥미를 느끼는 것도 못 찾겠다. 그나마 자부심이 있는 건,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빠르게 배웠고 현지인에게 인정받았던 외국어 습득 능력인데, 이 능력이 큰돈으로 치환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5개 국어 이상을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잘한다는 생각이 쏙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일류는 꼭 그런 재능이 아니라 더 큰 노력을 쏟아서 된다는 말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만큼 피 터지게 노력할 깜냥도 없고 불확실한 리스크에 운명을 걸 정도로 대담하지 못하다.


그러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그렇게 피 터지게 노력해서 오는 것은 무엇인가. 일류가 되어야만 하려나. 나는 일류가 되고 싶은가? 되고 싶다면 왜? 돈. 아무래도 돈이겠지. 이 세상,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최고다. 나도 부자이고 싶다. 나는 왜 부자이고 싶은가? 외제차나 명품은커녕 비싼 브랜드에도 큰 욕심이 없다. 그냥 스트레스 없이, 크게 욕심 안 부리고 적당히 남들처럼 평범한 수준에서 살고 싶어서. 그냥 유유자적하면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어서려나. 그렇게 가끔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기대하지 않는 척 그렇게 소소한 행복이라 포장하며 로또 한 장과 연금복권 한 세트를 산다. 실은 당첨될 확률이 너무 낮아서 딱히 당첨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만원의 소비를 통해 부자가 되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삶은 패배한 삶이려나. 이런 부족한 나지만, 적어도 부모님에게는 항상 자랑거리였다고 한다. 어릴 때 가난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줬다고. 엄청나게 출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랑거리인 아들. 어릴 때는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탔다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외 생활을 했다고. 커서는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신기한 곳에 여행을 다녀와서 선물을 사 들고 온다고. 그렇다. 나도 부모님에게는 일류의 자식인 것이다. 이런 나도 누군가에게는 자랑의 대상이고, 선망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도 그 자체로 충분한 사람이지 않나. 왜 미디어와 타인들이 세워놓은 기준에 의해 일등, 일류가 되지 못하면 부족하고 패배자가 되는 것일까.


한동안 많이 듣던 영국 싱어송라이터 Samm Henshaw의 노래 중 ‘Enough’라는 노래가 있다. 후렴구에 ‘How high is high enough?’, ‘How rich is rich enough?’, ‘So when is enough enough?’ 등의 가사들이 나온다. 정말 어느 정도가 되어야 충분한 것일까. 그저 만족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나도 나름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적당히 월급 받으면서, 소소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이렇게 글을 쓸 여유도 있는 삶. 이런 삶 또한 내 나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충분히 만족하는데, 얼마큼이 정말 충분한 걸까?


만족의 정도는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평가하든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최후의 평가는 스스로가 하기 마련인 것 같다. 글은 이렇게 써놨어도 나는 나의 삶에 나름 만족한다. 그냥 남들처럼 일하면서 하고 싶은 거 적당히 하는 삶. 가끔 부자들을 보면 부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쫓아가기 위해서 만족하고 있는 나의 삶을 어떤 불확실성에 갈아 넣고 싶지도 않다. 누군가는 현재의 안주하는 나의 삶을 보며 패배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충분히 성공해서 안정적인 사람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겠다. 어찌 되었건, 나는 지금 내 삶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그냥 글쓰기를 취미로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남들 다 꾸는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가끔씩 만원을 투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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