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 상처 주는 말을 안 할 수는 없을까

무의식적으로 예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by 페릴러


나는 오늘 하루 어떤 말로 다른 사람을 상처 줬을까.

최근 흑백요리사2가 끝나고, 최강록 셰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팬이 됐다고 해야 할까. 나는 다큐멘터리나 여행 프로그램을 딱히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에서 그분이 일본 여행 다니시는 영상이 눈에 들어와 팬심으로 본 적이 있다.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물론 화면 속의 모습만 보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 영상에서 묻어나는 배려를 보면 참 선한 분이구나 하는 인상을 받는다. 한 번 더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만 그분을 속단하자면, 말을 다소 느리게 하는 모습에 자칫 답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말을 하기 전 잠깐 주저하고 느리게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한 프로그램에서 언급하셨던 내용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말을 하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나는 성격이 급한 편이다. 말도 빠르다. 그래서 종종 말을 뱉고 나서 나중에 돌이켜보면, 아니 굳이 시간이 더 들 필요도 없이 말을 뱉자마자, ‘아, 내 의도는 이게 아닌데.’ ‘아, 이 발언은 무례한데.’ 하는 후회가 들 때가 있다. 특히 격한 운동이 끝난 다음은 더 그렇다. 뇌로 산소공급이 잘 안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특정 호르몬 작용인지 친한 코치님들한테 뭔가 내 의도와는 다르게 표현이 무례하게 나올 때가 종종 있다. 어떤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 정리한 다음 이를 말로 뱉어내는 것이 가장 좋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나에게 이는 시간이 다소 소요되는 일이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시간을 들여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행동해 보는 성격처럼 말도 종종 그렇게 나온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지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그 말에 대한 일종의 이미지가 형상화된다. 형체를 갖추긴 했지만, 아직 엉망진창인 그런 추상적 이미지다. 이 생각이 머무르는 시간도 짧기에 바로 뱉어내야 그 사고를 완성시킬 수 있다. 판타지물을 보면 주인공이 허공을 걸으면 가는 대로 길이 생겨나듯이, 내 말이 미완성된 사고를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말 앞에는 사고가 이어진다. 이런 방식으로 끊김없이 길을 완성 시키는 것 같달까. 그렇게 뱉어낸 말들이 거친 사고를 머릿속에서 재조립하며 말과 생각이 함께 정리된 길을 만들어낸다. 그러다 보면 가끔 흐트러진 형체 속에 날카로운 부속품들이 다듬어지지 않고 상대에게 날아간다. 그리고 내 의도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반성한다.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듯이, 최대한 말을 예쁘게 하려고 곰곰이 생각하면 필터링이 되기는 한다. 특히 회사에서는 순간적으로 짜증 나는 일이 많이 발생하는 반면, 협력을 구해야 하는 일이 많다. 그렇기에 최대한 표현들을 솎아내서 한 번 순화한 후 꺼낸다. 특히 메시지나 이메일 같은 글로는 더욱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긴 한다. 그러나 한 번의 사고를 더 거친다는 것은,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까지나 업무니까 가능하다. 서로가 업무에 바쁘니 답장이 늦어도 이해가 가능하며, 대화하더라도 일단 들어보고 정리한 다음에 일의 정확도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한 발 뺐다가 다시 묻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일반적인 관계에서는 이런 골라내기 작업을 하다가 종종 얘기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문자도 상처 주지 않으려다가 답장이 늦어지고 이 때문에 가끔 오해받는다. 그렇기에 조금 더 빠른 필터링이 필요한데, 나의 경우 이를 위해선 관계를 상당 기간 유지해야 하는 것 같다. 가장 애매한 것은, 적당히 친해진 관계나 내가 적극적으로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계가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나도 모르게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이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나름 이를 타진하기 위해서 연습은 하고 있다. 내가 독서모임에 나가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런 것이다. 책 내용을 재구성하듯이 내 생각도 정리하고, 말을 잘 다듬어서 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역설적이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말에 대한 필터링은 가장 오래된, 가까운 친구들에게 잘 되는 것 같다. 남자들끼리는 더 편하고 가까울수록 말을 더 함부로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나는 이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물론 친하기에 어느 정도 강도 센 농담도 주고받고 서로 용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친분이 오랜 기간 쌓인 결과다. 농담에 대한 선 등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포용할 수 있는 점이 많아져서 가능한 것이다. 만약, 선을 넘게 되더라도 이러한 침범이 친밀감으로 ‘무뎌진 것’이거나 ‘참아주는 것’이지, 친해진다고 마땅히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권리를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중할수록, 가까울수록 상처 주지 않을 표현으로 잘 골라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몇몇 친구들과 대화할 때는 무의식중에 말을 뱉으려다가도 필터링이 의식적으로 떠오른다. 친근한 마음에 서로 웃어 넘길 수 있는 거친 단어들을 주고받다가 조금이라도 상처줄 수 있는 내용은 걸러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그들과 하는 대화에서 이런 훈련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타인에게 상처 주는 것을 고민하는 걸 보면 소심하고 예민한 걸까 싶기도 한데, 완전한 부정은 못 하겠다. 딱히 착한 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도 선을 넘는 인간에게는 복수하겠다는 상상을 하는 그런 소심하고 어찌 보면 찌질한 인간이다. 나는 그냥 갈등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냥 서로 기분 안 나쁘게 잘 지내면 좋지 않나 싶은 그런 관점에서 시작한 것일 뿐이다. 남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고,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그런 생각이다. 그리고 정말 착해서 이런 걸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나는 이미 예쁘게 말하는 게 생활화되지 않았을까.

노력은 하고 있지만 필터링하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말을 예쁘게 하게 됐으면 좋겠다. 이런 다짐에도 불구하고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은 아직 나에겐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오늘 하루 어떤 말로 다른 사람을 상처 줬을까. 돌이켜본다. 그리고 또 소망한다. 언젠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예쁜 말만 술술 나오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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