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정리] 내가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

서로의 행복을 위할 수 있을까

by 페릴러


어느덧 나는, 내가 태어났을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됐다. 나는 7살 터울의 큰누나를 두고 있으니,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도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결혼도 못 한 채 그 나이가 된 것이다. 20대 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만 30살 즈음에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고 나니 30대 중반이 돼버렸다. 그리고 주변 동생들의 결혼 소식도 하나둘씩 들리기 시작한다. 결혼 평균 연령이 어렸을 때 대비 다소 올라갔음에도, 나는 이 나이에 결혼은커녕 애인도 없이 이렇게 살고 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싶냐고? 그렇다. 내가 이 글을 적고 있는 것은 슬슬 걱정되기 시작해서이다. 나는 결혼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할 질문들이 몇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그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나는 ‘왜 결혼을 하고 싶은가?’이다. 20대 후반 이후의 사람들에게 결혼하고 싶냐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그렇지’나 ‘하게 되겠지’라고 대답한다. 나처럼 어릴 땐 결혼을 안 하겠다던 사람들도, 그 나이가 되어 정착하고 나면 보통은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 같다. 하지만 거기서 ‘왜’ 결혼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하면 다양한 답이 나온다.


주변에서 다들 하니까, 주변에서 하라고 해서 등 수동적인 답도 있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실질적인 답도 있다. 생존의 문제와 연결된 것들도 많은데, 혼자 살기 각박해서 함께 이겨내려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서,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 등의 이유다. 참으로 각박한 시대라는 것을 대변하는 답도 있는데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자신을 뒷바라지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신분 상승을 위해, 편하게 살려고 같은 이유다. 하지만 뭔가 정말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나는 어떠한가?


내가 결혼하고 싶은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다. “‘서로’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나는 무의미한 이 삶을 어차피 살아갈 거라면, 최대한 행복을 좇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인생의 중대사들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해 왔고, 결혼 역시 그런 관점으로 접근하려 한다. 과연 결혼이 나에게 어떤 행복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언제 행복한가에 대한 답을 찾으면 그것이 결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답도 줄 수 있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 세 가지를 꼽자면, 새로운 경험을 할 때, 누군가에게 어떤 경험을 처음 시켜줄 때, 나의 사람들이 나로 인해 행복할 때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 시도 하나하나가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주고, 나를 성장시킨다. 결혼은 내가 아직 체험한 적 없는 세계다. 각기 다른 두 타인이 서로를 평생 책임지겠다는 맹세부터, 가족이 아니었던 타인과 한 지붕 아래에 산다는 것, 아이를 태어나게 하고 함께 키우는 것도 그렇다. 내가 아직 겪어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라서, 가정을 이루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새로운 순간이 될 것이다. 전부 행복한 경험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함께 성장할 테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하면서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어떤 경험을 처음 시켜주는 것도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우리나라의 술, 음식, 문화 등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즐거움을 얻었다. 내가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즐거움을 얻었듯이, 누군가가 처음 하는 경험에서 보이는 다양한 반응을 보면 행복하다. 내 배우자와 함께 그런 경험을 하겠지만, 특히 이는 내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이유와 같다. 만약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이 아이에게는 나와 함께하는 거의 모든 순간이 처음일 것이다. 첫걸음, 첫 자전거, 첫 여행, 처음으로 무엇을 먹어볼 때 등 내 아이들에게 처음을 선사해 주고 싶다. 그러는 순간 속에서 내 아이가 성장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은 나 또한 행복하게 할 것 같다는 기대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중 마지막, 그중에서도 1순위는 ‘나로 인해 나의 사람들이 행복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에게 사랑의 정의는, 진심으로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웃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움직이고 더 나아가 희생까지 한다. 나 또한 그런 감정을 몇몇 연인들을 통해서 분명히 느꼈다. 내가 그 자체로 목적인, 진정한 사랑을 받으면서 충만해지는 느낌, 사랑을 줌으로써 상대가 행복한 것을 보며 느꼈던 감정들은 내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결혼에서 내게 가장 중요한 것도 사랑이다.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하는 것이므로 나만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편익과 행복을 위해서 타인을 이용하는 것은 나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 ‘사람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 내가 어릴 때 세웠던 일종의 가치관이다. 알고 보니 칸트 철학이라던데, 내가 저런 목적을 위해서 배우자를 수단 삼아 결혼하고 싶다면 이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렇다, 나의 배우자는 수단이 아니라 나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바로 사랑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나의 배우자가 될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내가 행복하다면, 서로가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나는 결혼을 하고 싶다. 앞서 서술한 ‘나의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경험으로의 인도’는 그 과정에서 오는 부수적인 행복일 뿐이다.


이런 이상을 말하면, 현실주의자들은 결혼은 사랑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하겠다. 사랑으로 결혼했다는 선배들도 장난으로 결혼하지 말라며 그런 말을 한다. 나도 물론 이런 현실을 알고 있다. 인생은 어차피 고난의 길이다. 어떤 목적으로든 결혼을 함으로써 앞으로 그런 전쟁터를 함께 헤쳐나가야 한다. 하지만 어떤 결혼을 보면, 단 두 사람의 관계에서도 서열과 주도권을 정한다. 사회구조나 재산 등 다른 배경에 대한 변명만 있을 뿐 사람 대 사람으로 한 맹세의 결과 끝에서 동등한 관계는 없다. 게다가 상대가 아니라, 상대의 조건을 사랑한다. 조건이 무너지는 순간 ‘상대를 사랑했다’라는 환상도 깨진다. 모든 구조가 그렇게 돌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사랑에 의한 자발적 희생은 얼마든 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 간에 어떤 서열의 주도권을 잡고 싶지 않고, 반대로 잡히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이를 극복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호르몬에 의한 감정이 끝났더라도, 서로가 했던 맹세에 책임감을 느끼고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위해, 즉, 사랑의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관계. 그런 노력을 이해하고 고마워하며 서로를 더 위하고 배려할 수 있는 관계. 그에 부응하기 위하여 스스로 더욱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관계.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외도 등으로 상대방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책임감이 있는 관계. 그러겠다는 계약이 바로 결혼이라고 생각하며, 이 모든 것은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기에 결혼을 할 거라면 적어도 나와 결혼관이 비슷한 사람과 하고 싶다. 설령 나의 꿈이 실패로 끝날지언정, 적어도 이상적 결혼의 시도는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결혼할 다른 의미도 못 찾겠다. 이렇게 말하는 내가 외모나 조건 등을 아예 안 본다며 가식을 떠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의 일방적 희생을 원하지 않는 만큼, 반대로 나의 일방적인 희생이 뻔히 보이는 관계도 시작하고 싶지 않다. 이를 추구하려면, 인간적인 매력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매력 또한 어느 정도 갖춰두어야 그럴 자격과 기회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솔직히 단둘이 골방에서 시작할지언정 서로만 행복하면 그만인, 사랑을 꿈꾼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했다간 ‘네가 능력이 없으니까 그런 걸 원한다’라는 소리만 들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다 보니, 적어도 그런 소리 안 들을 정도로,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에 대하여 몇 가지 부분에서라도 부응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떠나서 적어도 결혼이라는 관계를 시작하려면, 사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양쪽 모두 상대의 행복을 위할 수 있는 그런 관계의 형성 말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사랑을 한다고 정확히 느꼈던 적이 한 번 있다. 아직 대학생일 때 만났던 미국인 유학생이었다. 정말 무인도에 둘이 떨어져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믿음과 사랑을 주는 야무졌던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때에다 변변치 않은 외모를 가진 내가 당시 장발한다며 기르던 머리도 거지존에 있던 때이기에, 정말 내가 어떤 사람인지만 보고서 나를 사랑해 줬던 사람이다.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이유로 결국 떠나보냈지만, 그런 전례가 있었기에 그 이상의 새로운 사랑과 관계를 다시 형성할 수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몇 년 전에 내가 결혼을 왜 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나와 같이 ‘서로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 사람을 단 한 명 봤다. 평소 말하는 습관을 보면 정말로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나와 행복에 대한 생각이 비슷한 데다가 외모도 내 스타일이어서 인상 깊게 보고 있었다. 어쩌다 자주 만나면서 친해질 계기가 생겼는데 신중하게 접근한다고 머뭇거리는 사이 애인이 생겼고 지금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과거의 이야기일 뿐,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주변 또래들에 비해 다소 늦어지고는 있지만, 나는 이것이 단지 결혼에 대한 이유와 목적이 타인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운을 믿는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는 항상 어떤 행운이 찾아왔었다.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흔히들 말하는데, 그런 사람을 마주칠 기회도 아직 한 번 더 남았다고 생각한다. 이에 더해 운이라는 것도 내가 움직여야 마주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다시 한번 더 밖으로 나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를 행복하게 할 사람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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