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나라는 사람의 공식을 찾아가는 과정
MBTI가 바뀌었다. 나는 과거에 써놓은 글들을 모아서 Gemini에 올린 다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분석해 달라고 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직접 쓴 글을 객관적으로 분석해서 스스로를 비춰볼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Gemini의 Deep Research라는 기능을 쓰면, 아예 나에 대한 논문을 작성해서 주는데, 상당히 흥미롭기에 한 번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새로운 글이 몇 개 모일 때마다 그전에 썼던 것들을 모두 종합해서 이를 의뢰하는데 문득 내 MBTI는 뭐라고 분석해 주려나 하는 궁금증에 물어봤다. 그런데 99%의 확률로 INTJ 같단다. ISFJ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성격 테스트를 다시 해봤다. 결과는 정말 INTJ. 원래는 20대부터 3년 전까지만 해도 XSFJ로만 나오던 MBTI가 변한 것이었다. 충격이었다. 마치 인지하고 있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방정식의 일부가 변경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평소 MBTI에 관심이 없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 수만큼의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류가 단순히 16개의 성향으로 나뉠 수는 없다. 나조차도 내 결과에 대한 모든 설명이 나와 일치하지는 않았기에 MBTI는 단순히 사회생활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잘 모르는 데다가 크게 관심이 없으니, 나와 같은 XSFJ를 제외하면 한 귀로 흘려서 XSFJ를 제외한 단 한 사람의 MBTI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MBTI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이었고, 부랴부랴 이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INTJ에 대한 묘사를 읽어보니, 연애/관계 부분을 제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변했다는 뜻일까.
T가 되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업무에서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 일을 어떻게든 수습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자책하고 있을 상대방을 굳이 상처 주거나 할 필요도 없다. 비난은 쓸모없으며, 일단 일을 수습할 방법을 생각해야 이 사람도 안심할 테니 말이다. 이렇게 일에서의 나를 보면 T이지만,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나를 생각하면서 다시 테스트를 해보면 F가 나왔다. 가까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가만히 들어주고 공감하는 일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마음으로는 공감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해결방법을 찾고 있는 때가 있는 것 같다. 고민 상담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본성은 T인데 살아가면서 F인 면모를 갖추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N은 다소 혼란스러웠다. 나는 ‘만약에’로 시작하는 질문 공세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만약에 ~하면 어떻게 할 거야 부류의 질문들 말이다. 비현실적인 상상이나 공상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잠깐일 뿐이며 굳이 그걸 타인에게 묻지 않는다. 그런 질문을 들으면 진이 빠지기 시작하기에 내가 N인 걸 더욱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나는 가만히 보면 철학이나 실존주의적인 질문들을 좋아한다. 그런 나를 보면 N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S와 N을 나누는 질문을 보니 다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현실적인 생각을 많이 하지만 가끔 공상도 한다. 디테일을 보다가, 결국은 큰 그림을 보려고 한다. 현실 대비가 어느 정도 끝나면 그때는 미래도 상상한다. 나는 어중간한 것인가.
혼란하던 와중 이렇게 나를 MBTI에 끼워 맞추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이런 흑백논리나 객관식 문제가 나를 정의할 수 있는가? MBTI는 자신의 결과와 안 맞는 부분에 대해선,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상대에게 전달해야 할 답은 한 개인을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는 16개 중 한 가지이다. 그러나 어떤 존재건 그렇게 간단히 나눌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MBTI가 중요할까. 그것은 복잡하고 심오한 탐구 없이, 간편하게 자신과 타인을 정의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 결국은 ‘누구인가’에 대한 탐구와 이해의 일부다.
누구나 자신에 관해 탐구하고 정의하고 싶어 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자신 안에 다양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혼자일 때의 나, 가족들과 있을 때의 나, 친구들 앞에서의 나, 애인과 있을 때의 나, 회사 사람들과의 나, 낯선 사람과 있을 때의 나, 외국어를 쓸 때의 나, 여행할 때의 나, 일할 때 등 각 상황에 따른 성격과 반응 방식은 각기 다르지 않은가?
내 글을 본 AI는, 내 기본 성격은 INTJ, 연애/관계에서는 INFJ, 갈등/가족에서는 ISFX, 사교/리더 모드에서는 ENFJ, 여행/위기에서는 XSTP라는 부캐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단다. 설명에 따르면, 기본 성격은 현상의 본질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큰 그림을 기획하고 통제하려 한다. 반면, 연애/관계에서는 이상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타인의 감정과 경계를 침범할까 봐 두려워하여 지극히 방어적인 모습을 보인다. 갈등/가족에서는 무의미한 충돌을 극도로 꺼리며, 갈등을 만들기보다 평화를 유지하려 침묵한다. 사교/리더 모드 관련해서는 평소엔 독립적이지만, 자신의 울타리 안이거나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며 타인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데서 기쁨을 느낀다. 여행/위기에서는 돌발상황을 두려워하기보다 현실적 감각을 동원해 즉각적이고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면모를 보인다고 한다. 참 많은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설명을 읽어보면 납득이 간다. 저 부캐들은 가짜 ‘나’인가? 아니. 그것 또한 특정 상황에 따른 진짜 ‘나’이다.
내가 정의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엔 대입하는 값에 따라 답이 바뀌는 공식만 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이라도 변하기 마련이고 상황에 따라서도 변하기 때문이다. ISFJ이던 내가 INTJ로 바뀌었고, 상황에 따라 다른 MBTI가 발현되듯 말이다. 그 공식이란, 미지수로 이루어지고 종종 다른 미지수가 추가되는, 그런 고정된 결괏값이 없는 복잡하고 변칙적인 수식이다. 미지수에는 다양한 숫자들이 들어갈 수 있으니, 그때마다 나오는 답도 바뀐다.
그 미지수는 주어진 때나 상황일 수 있고, 자신의 장단점과 호불호는 무엇인지 등도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무슨 가치관을 따르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등 본인과 관련된 수많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에 대해 발견한 새로운 미지수들을 나라는 공식 안에 포함시키거나 갱신한다. 그렇게 ‘현재의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공식을 ‘평생’ 찾아가는 과정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내가 누군지 계속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를 바탕으로 어제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이 삶을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더 잘 알기 위해서 생각을 돌아보며 [생각정리] 글을 쓴다. 그러다 보면 안갯속에서 흐리게 보이던 나라는 인간의 형상이 점차 뚜렷해진다. 아마 내 MBTI가 변한 것도 글쓰기를 통해 나를 더 잘 알게 돼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 내가 MBTI를 조금 비판했다고 이것의 긍정적 측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복잡하지만 간편하게 표현하기 가장 좋은 것이 MBTI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다양함을 표현하긴 어려우므로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그냥 이렇게 대답하련다. ‘기본 성격은 INTJ인데, 가까워지면 IXFJ 같고 상황에 따라서 달라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