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만 있는 스마트폰을 찾아서
4. 보안요원과 함께 마추픽추를 누비며 벌인 추격전
이번 페루 및 브라질 여행에서 강도라는 변수를 고려해 과거에 쓰던 폰을 보조 폰으로 가져갔다. 전화번호는 없고 인터넷만 되는 여행용 유심을 꽂아 지도를 보거나 우버를 부르는 용도로 썼다. 원래의 메인폰으로는 사진을 찍고, 인터넷이 필요하면 보조 폰의 핫스팟을 쓰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나는 여행할 때는 지도 외에는 폰을 잘 안 쓰는 편인데, 마추픽추는 길이 정해져 있어 지도를 볼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사진 찍는 용도로 메인폰만 열심히 사용했다. 인터넷도 필요 없으니 마추픽추를 보는 2~3시간 동안 나는 내 보조 폰을 찾지 않았다.
와이나피추 산에서 하산한 다음 이대로 마추픽추를 바로 떠나기는 아쉬워 잠시 쉴 겸 보조 폰을 찾았다. 그런데 아뿔싸. 폰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그 조그만 슬링백을 10번은 더 뒤져본 것 같다. 그래 봤자 있을 리가 없었다. ‘하, 이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리다니. 어디서 잃어버렸지? 남미에서 잃어버린 건데 어떻게 찾냐. 뭐 어차피 강도당할 거 각오했는데 그냥 잃어버렸으니 와이파이 찾아서 로밍이나 해야겠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허망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오면서 입구에 있는 보안요원한테, 스마트폰 잃어버렸는데 찾은 거 있냐고 물어봤다. 그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며 방명록 비슷한 걸 작성하고 입장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방명록 작성하면서 나도 모르게 거기에 놓고 왔을까 봐 물어본 거였다. 역시나 그곳에 없었지만, 갑자기 핫스팟을 켜주더니 Find IPhone 기능을 써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별도로 내부에서 폰 습득된 것이 없냐며 열심히 무전을 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큰 기대 없이 Find My를 켜봤는데, 이게 웬걸! 아직 근처에 보조 폰이 있었다! 나는 원격으로 바로 락을 걸었고, 내 메인폰의 전화번호를 띄워놨다. 내 보조 폰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보안요원이 한참 보더니 아마 마추픽추 안에 있는 것 같다고 하면서 나를 다시 들여보내 줬다. 그러면서 청년 하나 들어간다고 무전을 막 하시기 시작했다.
다시 마추픽추 내로 들어가니까 다른 보안요원 두 분이 나를 맞아주셨다. 핫스팟을 켜서 핸드폰 위치를 찾는 것을 도와주셨고, 나는 원격으로 알람을 계속해서 보냈다. 그러는 동안 무전을 해주시는데, 또 다른 보안요원 아저씨가 오셔서 자신이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면서 나와 함께 추격전을 해주셨다. 그렇게 우리 둘은 마추픽추 깊은 곳까지 내 보조 폰을 뒤쫓기 시작했다. 그런데 쫓을수록 GPS의 위치가 자꾸 바뀌었다. 우리는 누군가가 들고 있음을 확신하며 추격전을 계속했다.
어느 시점에 아저씨와 내가 다시 지도를 확인했을 때는, 마추픽추 밖에서 위치가 확인됐고 우리는 밖을 향해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옮겨진 위치에 와서 알람을 울려도 소리가 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GPS를 보여주니 누군가가 내 폰을 들고 하산하고 있는 것 같다는 거다!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말씀하시기에 실망하고 ‘아, 그냥 포기해야겠다.’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GPS 위치가 정정되면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은 카페와 버스정류장 부근이었다. 우리는 버스정류장이 내려다보이는 카페의 테라스로 급히 달려갔다.
“핸드폰 찾는다고 소리쳐봐! 빨리!”
아저씨가 말했고 나는 스페인어로 열심히 소리치기 시작했다.
“누구 내 빨간색 아이폰 본 사람 있나요!!!!!”
그때였다. 내 메인폰의 왓츠앱으로 전화가 울린 것은. 여기 버스정류장인데, 폰을 보관하고 있으니 찾아오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했고, 이 버스정류장의 아저씨는 나에게 폰을 건네주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쨌건 나는 내 보조 폰을 되찾고 나를 도와주신 이 보안요원분의 친절과 인류애에 눈물이 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그리고, 바로 하산 버스를 타야 해서 악수를 끝으로 인사를 보냈다. 뭐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가진 게 없고 돈을 드리기는 뭔가 이상해서 구글 지도에 아저씨 칭찬만 남겼다. 이제 여행 갈 때 인류애가 샘솟을 정도로 도움받는 순간이 오면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걸 챙겨 다녀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후일담이지만 돌아가는 버스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내내 버스정류장 보관소에 있었던 것 같다는 게 내 추측이다. 마추픽추에 올라가는 버스에서 선크림 바른다고 잠시 보조 폰을 다리 사이에 뒀는데, 내 메인폰만 잘 있나 체크하느라 깜빡하고 놓고 내린 것 같다. 그 보조 폰은 버스에 탑승한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처음부터 버스정류장에 보관되어 있었을 것이다. 만약 다른 곳에서 떨어뜨렸다면 그렇게 보관되지는 않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중에 다시 지도를 침착하게 살펴봤는데, 처음 GPS가 가리키던 장소도 바로 그 버스정류장이었다. 그런데 GPS 위치가 혼자서 자꾸 바뀌면서 혼선을 준 거라는 짐작이 갔다. 게다가, 원격으로 화면에 내 원래 핸드폰 번호를 띄우고, 알람을 그렇게 울릴 때는 연락이 없었는데 하필 버스정류장까지 수사망을 좁혀오고 나서야 갑자기 전화해 준 것을 보니까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의 아저씨도 별 설명 없이 그냥 너의 것이 맞냐고 여러 번 확인하고 내 사진을 찍어가기만 했다. 원래 주인이 안 나타나면 다른 생각이 있으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보안요원 아저씨가 분명히 소리를 들었다고 했고, GPS 위치가 조금씩 바뀌어서 우리는 마추픽추를 누비며 추격전을 벌였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향해 추격전을 벌인 것이었을까? 아무튼, 핸드폰을 잘 찾았고 재밌는 추억도 생겼으니 뭐! 결과적으로는 마추픽추 보안요원 아저씨들의 엄청난 친절로 인해 나는 내 보조 폰과 재밌는 기억을 무사히 집에 들고 올 수 있었다! Mil gracias, tíos!
5. 별이 돌던 마추픽추를 떠나는 길
핸드폰을 무사히 찾은 나는 안정된 마음으로 마을로 돌아왔고 여유롭게 점심을 먹었다. 기차 시간이 늦은 오후였기에 마지막으로 마을을 한 바퀴 쭉 둘러보았다. 여기에도 한국 라면을 팔고 있었고, ‘패딩턴’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었는지 벤치에 해당 캐릭터가 앉아 있었다.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으로 작은 기념품을 산 다음, 쿠스코로 복귀하기 위한 기차에 올랐다.
열차 안에서 라마 털로 만든 옷 패션쇼도 해주고, 다과도 주었다. 앉은 좌석이 앞이 뻥 뚫린 맨 앞자리였는데, 터널을 지나갈 때마다 놀이기구를 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람이 직접 기차에서 내린 다음 뛰어서 선로를 바꿔주는데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신기했다. 옆자리에 혼자 여행 온 브라질 청년이 있었고, 긴 침묵이 이어지다가 잠깐 대화를 나눴다. 가방에 깃발 모양의 배지 같은 게 수십 개가 있어서 물어보니 브라질의 각 주들을 여행하면서 모은 거라고 해서 흥미로웠다. 지금은 남미를 여행하고 있는데 아타카마 사막과 우유니 사막이 좋았다며 추천을 해주었다. 들어보니 가고 싶어져서 여행 버킷리스트에 추가했다. 또 페루의 사악한 물가, 특히 마추픽추에 관련한 비용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기차는 도착지에 다다랐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탄 후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하늘을 보는데, 공해가 없어서 그런지 가로등이 빛나고 있어도 별이 잘 보였다.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는 버스에 앉아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의 시선으로 보기에, 하늘이 별을 쏟아내며 천천히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 같았다. 가로등이 계속 내 시야를 방해했음에도 별은 선명했으며, 반짝반짝 빛나는 별과 함께 돌아가는 하늘이 신기하고 낭만적이었다. 그렇게 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잠이 들었고, 무사히 쿠스코로 복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