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의 우범지대에서 지낸 하룻밤과 마추픽추까지의 여정
0. 들어가며
'25년 6월에 다녀온 남미여행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남미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원래 '21년도 말에 약 10개월간의 콜롬비아 생활을 마무리하고, 남미 일주를 하려고 했다. 근데 그 당시에는 원래 비자가 필요 없던 곳들도 코로나로 인해서 비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 달간 콜롬비아 일주만 했는데, 그때 아마존을 여행하기 위해 콜롬비아/브라질/페루 세 곳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을 간 적이 있다. 입국심사도 없이 간단히 넘어갈 수는 있었지만, 그때 '이런 식으로 나라만 채우는 건 의미가 없지. 내가 나중에 정식으로 간다.'라고 하면서 건너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또 두 나라를 가게 되어 감회가 새로웠다. 가게 된 이유는 브라질 출장으로 멀리 온 겸 쓴 휴가였다.
1. 리마에서의 숙소 선택
아직 한국에 있을 때, 브라질에서 리마로 가는 비행기가 갑자기 이틀 밀렸다. 하필 그날 리마 공항 리뉴얼로 인해 아예 일정 시간 동안 착륙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밀린 거였다. 이것도 인생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한 이벤트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항공편을 다시 조정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다소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잘 조율해서 하루만 늦게 가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무튼, 일정이 틀어지면서 리마에서의 체류 시간은 20시간으로 줄었다. 새벽에 공항에 다시 가야 하니, 이렇게 된 이상 그냥 공항 근처 숙소를 잡기로 했다. 이 공항 근처는 Callao라는 지역인데, 해당 지역에서 별점이 높고 저렴한 곳을 택해서 숙소를 정했다. 예약해 놓고 나서 가기 직전에 다시 찾아보니, 이 Callao라는 지역은 우범지대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고, 몇 년 전에 우리나라 대사관에서도 여행 경보를 내린 리마의 유일한 구역이었다. 더 알아보니 몇 개월 전에는 페루에서 국가비상사태로 경보를 내린 적도 있었다. 걱정은 됐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그냥 그대로 머무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공항에서의 직선거리는 가까워 보였으나, 우버를 타고 숙소로 가보니 빙빙 돌아서 가야 하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그리 가깝지도 않았다. 가는 길에 창밖을 보니 남미답게 모든 문이 철창과 함께 굳건히 닫혀있었다. 게다가 수도공사 같은 걸 한다고 땅을 전부 다 파놓아서 온통 흙길에 흙구덩이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괜히 폰 꺼내서 사진 찍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주인의 말에 강도당할까 봐 사진은 못 찍었다. 아무리 내가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지만, 치안과 안전은 다른 문제다. 나중에 다른 현지인한테 물어보니까 Callao에도 안전한 곳이 있긴 한데 내가 머문 지역은 아니라고 하더라. 그래도 잔뜩 경계하며 세비체를 먹기 위해 숙소 주인이 추천해 준 근처 식당까지 10분 정도 문제없이 걸어가서 맛나게 먹었다. 식당에서 리마 시내로 택시 타고 가서 구경 후 밤늦게 돌아왔다. 리마는 해안가에 있어서 나름 아름다운 부분도 있었지만, 하루로 충분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쿠스코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숙소에 비용을 지불하고 주인아저씨의 우버 서비스를 이용했다.
2. 마추픽추 마을까지, 그리고 마추픽추 티켓팅을 위한 티켓팅
리마에서 출발한 쿠스코행 비행기는 지연 없이 잘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버스와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 마을로 가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미리 Perurail을 통해 왕복 티켓을 구매해 두었다. 그것도 아침에 쿠스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마추픽추 마을로 가는 일정으로! 이 왕복 교통비만 무려 152달러, 당시 약 20만 원이었다.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버스정류장 근처로 가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버스에 올라 Perurail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고,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 마을로 향했다.
사실 가는 내내 마추픽추를 다음 날 볼 수 있을까 초조함이 가득했다. 마추픽추 입장권의 경우 한 달 전 웹사이트에서 예약하거나 현장 발권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출장 김에 휴가 승인을 받고 가게 된 것이었다. 출발하기 약 3주 정도 전에 여행하기로 정해졌기 때문에, 입장권을 미리 예매하기엔 너무 늦었었다. 그리고, 검색해 보니 현장 발권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다. 직접 마추픽추 마을에 도착해서, 입장 전날 오전부터 '웨이팅' 티켓을 뽑고, 그날 저녁부터 웨이팅 티켓 순서대로 그다음 날의 입장권을 구매할 수 있는 구조였다. 현장 발권은 하루에 딱 1,000장 판매가 되는데, 이것도 코스 및 시간마다 입장 가능한 인원이 다 달랐다. 그래서 늦으면 좋은 코스로 마추픽추를 보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어떤 블로그 후기를 보니 성수기 때는 아침부터 줄을 서서 오전 9시 정도에 웨이팅 티켓이 매진된다고 해서 걱정이 좀 됐다. 그래도 비수기니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표 못 구하면 일정 바꿔서 하루 더 지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우선 가기로 해서 교통편도 그렇게 예약해둔 것이다. 마추픽추 마을에 도착하니 오후 2시쯤이었다. 다소 불안감을 안고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웨이팅 티켓을 받기 위해서 뛰었다. 살짝 늦은 시간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웬걸, 여권을 제출하고 받은 대기 번호는 539번이었다. 이 번호라면 인기 코스를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는 순번이었다. 이런 행운이 있다니, 신나서 춤이 절로 났다. ‘오예’라는 소리를 몇 번 했는지 모르겠다.
3. 대망의 발권과 마추픽추 입장
그날 저녁 마추픽추 입장권을 사기 위해서 다시 티켓팅하는 곳으로 향했다. 원래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2-A, 2-B 이 두 개다. 각각 300자리씩 나오니까, 순번을 믿고 이 코스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망의 발권 순간. 2번 코스 티켓을 달라고 했더니, 내 순번에서 남아있는 시간은 쿠스코로 돌아가는 기차 편이랑 맞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다음으로 인기 있다는 50명 제한의 와이나피추 등산 코스를 골랐는데, 티켓값은 당시 약 11만 원이었다.
입장권을 샀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마을에서 마추픽추 유적지까지 올라가는 버스도 예매해야 했다. 매표소에서 입장 시간을 확인한 후 그에 맞는 시간으로 버스를 예매할 수 있었다. 왕복 약 3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버스를 타고 약 15분을 올라가야 한다. 만약 이 버스를 타지 않는다면 몇 시간은 등산해야 한다고 들었다. 버스표까지 구매를 마치고, 다음 날 마추픽추를 향할 준비가 완료됐으니 그만 방으로 들어가서 피곤한 몸을 뉘었다.
다음 날 아침, 근처 노점상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러 갔는데, 이 줄 또한 어마어마했다. 이 줄에 서 있으면 가이드가 필요 없는지 계속 물어보는데 그냥 가이드 없이 가기로 했다. 어차피 설명을 들어도 얼마 안 가 내용을 까먹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해서 보니 1, 2, 3 코스에 따라서 입장하는 곳이 달랐다. 가이드가 없던 나는 이 사실을 몰랐고, 2코스 대기 줄에서 10분간 기다렸다. 그러다 뭔가 이상함을 느껴 주변의 가이드에게 물어 3코스 입구를 찾아갔다. 3코스는 인원이 적어 줄 없이 방명록 같은 것만 작성하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3-A 티켓을 구매하게 될 당시에는 다소 아쉬웠지만, 이것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만약 다시 가게 된다고 하면, 이 코스를 고를 생각이 들 정도다. 해당 루트가 좋았던 점은, 마추픽추 내부야 어느 곳을 선택하든 볼 수 있는데, 마추픽추의 전경을 산에서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코스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진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 마추픽추의 대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와이나피추 루트는 거기서 좀 더 들어간 뒤 산으로 향할 수 있다. 가파른 길이 좀 있긴 하지만, 등산의 난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고산병 같은 것이 있을까 싶었는데, 전혀 없었다. 혹시 가게 된다면 등산을 좀 하더라도 3-A 와이나피추 루트를 꼭 선택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날씨 운도 끝내주게 좋아서 진짜 마추픽추를 원 없이 보고 왔다. 정말 운이 좋았다. 더 이상의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사진으로 설명하겠다.
그런데 나는 이때 정말 중요한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마추픽추를 여행하는 내내 보조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을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