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신호

<나 혼자 본다> 8. 미야지마 타츠오: Folding cosmos

by per se


갤러리바톤

20250522~20250628


미야지마 타츠오(Tatsuo miyajima)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리움미술관의 전시를 보러 들어가던 순간이었습니다. 사실은, 엘리베이터 층수를 알려주는 패널과 비슷해서 ‘음? 이것도 작품? 간단해 보이는데....’라고 생각했었죠.


그 뒤로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난 것은 일본 나오시마의 <이에 프로젝트>를 통해서였죠. 버려진 집 카도야의 다다미를 들어내고 얕게 물을 깐 바닥에 숫자 LED를 띄워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 차가운 발광 물체가 꽃인지 반딧불이인지 알 수 없는 고요한 빛으로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광경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빛을 잃은 집 안에 들인 이 차가운 불빛이 이렇게 따뜻하게 비칠 수 있을까요? 의미는 몰라도 아름다운 것- 제가 꼽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전시되느냐에 따라 작품이 이렇게 달리 보일 수 있구나, 느낀 계기이기도 했죠.

<시간의 바다> (1998) - 나오시마 이에 프로젝트 中


그런데 갤러리 바톤에서 다시 만난 그의 작품은 주로 거울을 이용해 느낌이 조금 차갑습니다. 반면에 작품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비치는 내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작품에 다가가면 내 얼굴도 더 자세히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죠.

아무리 아는 것 없이 보는 전시지만 그래도 궁금해졌습니다. 명멸하는 숫자들 속에 읽히는 것은 ‘어쩐지 알 수 없는 무상함’뿐인데,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대부분 제가 생각한 의도와 작가의 의도는 전혀 다른데, 의외로 제가 추측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다른데 다르지 않습니다. 갤러리 바톤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글을 잠시 빌려올게요.


미야지마 타츠오하면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점멸하는 숫자 LED(발광 다이오드)는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1996), 헤이워드 갤러리(1997),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1997) 등 세계 주요 미술기관에서 개인전을 거쳐,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1999) 일본관에 첫 선을 보이며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다.
매체로서의 LED는 미야지마의 철학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계속 변화한다. 모든 것은 연결된다. 영원히 계속된다. (It keeps changing, it connects with everything, it continues forever.)"을 유용하게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그의 작품에서 LED 디지털 소자는 각기 다른 속도와 색상으로 0을 제외한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반복한다. 각각의 LED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각자의 리듬과 정체성을 가진 독립적인 ’Seimei’를 상징하며, 카운트다운 속도와 광색의 차이를 매개로 그 대상들의 개별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된다. 작가는 디지털 시대의 상징인 LED가 가진 세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에 주목, '시간의 개념과 거기에 결부된 각 개체의 시각화'라는 거대 담론의 미적 접근에 활용해 왔다.


설명을 보니 한마디로 0을 제외한 한 자리 숫자들이 점멸을 반복하며 변화하는 모든 것을 표현하며, 숫자 하나가 하나의 별 혹은 한 명의 사람처럼 각자의 속도를 가진 개체를 의미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숫자 하나하나의 변화를 보며 의미를 찾는 것도 재밌지만, 전망대에서 야경을 바라보듯 살피는 것이 더 좋습니다.

<C.T.C.S. k'in - no.7> ( 2024)


이번 작품들은 그동안 제가 보아온 작품들보다 보다 직접적으로, 거울을 통해 나를 그 안으로 좀 더 직접적으로 끌어들입니다. 제 얼굴을 담은 사진도 있지만 최대한 담기지 않게 주의하며 찍었더니, 한 우주가 또 다른 우주의 눈에 비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지구에서 다른 별을 바라보고, 그 다른 별에서 누군가 응시하듯 말이죠.

<Changing Time with Changing Self - Flower> (2014)


긴 빛의 띠를 이룬 이 작품은 은하계 어느 행성의 띠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숫자 사이에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반짝이는 것만으로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불 하나가 꺼지고 켜짐에 따라 전체를 이루는 선이 완전히 달라지죠. 내 빛 하나는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내가 내 빛을 꺼버리면 그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세상이 되죠. 카를로 로벨리의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양자역학을 다룬 책 제목이 떠오릅니다. 내가 꺼져도 다른 세계는 존재하지만, 내가 있던 세상은 사라집니다. 얼핏 간단한 작업처럼 보이지만 미야지마 타츠오 작가의 대단한 점은 이런 점입니다. 차갑고 딱딱한 숫자들을 껐다 켜는 것만으로, 그 숫자의 반짝임을 어디에 두느냐 만으로 (물론 작업 방식은 간단하지 않다고 들었습니다만) 관객을 다른 차원의 세계에 대해 사유하게 하는 점 말이죠.



갤러리바톤의 바깥쪽 다른 뷰잉 룸에 오면, 어두운 관람 환경이 아닌 밝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창 밖 풍경을 담게 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감상할 땐 우주 사이사이를 유영하는 기분이다가, 비로소 현실에 좀 더 가까워진 기분입니다. 이 작품들은 갑자기 지구에 떨어진 행성 같습니다. 자기 빛을 내며 평범한 우리 풍경과 대화를 나누려는 것처럼 보이죠. 갤러리 안에서 이 별들이 보내는 이 신호를, 밖에서 알아챌 수 있을까요?


적어도 미야지마 타츠오가 창조한 세계 속에서는 이렇게 어울려 있는 숫자들이 시어(詩語)와 같은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다고 숫자 하나하나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숫자의 발광에 기대어 자신의 또 다른 색을 발견하는 순간이 없다면 확장성을 갖지 못합니다. 남의 빛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남보다 내가 더 빛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 모두 멀리서 보면 이런 작은 숫자 하나와 다르지 않을지 모르죠.

혹시 숫자 하나로도 그만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요? 전체의 의미와 나 개인의 의미를 비교하는 일은 무의미한가요? 그 답을 작가는 알고 있을까요? 명멸하는 숫자들에 담긴 변화무쌍함과 시간의 무상함, 그리고 그 숫자의 신호들이 함께 빚어내는 이야기를 보며 궁금해해 봅니다.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지만, 세상의 수많은 당신들이 없다면 내 세상이 어떨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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