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한 올로 바위 들어올리기

<나혼자 본다> 9. 시오타 치하루: Return to earth 展

by per se

가나아트센터

20250725 – 20250907


누군가 힘든 일을 겪고 나면 그 사람을 두고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거나 확실히 철이 들었다는 말로 결과에 대해 평가하곤 합니다. 실제로 어떤 중대한 일을 겪고 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좋은 일이라면 세상이 다 내 손 안에 있는 내 것 같고, 아니라면 나를 막아선 세상의 너른 등짝만 보일 때가 많죠. 보통 후자의 경우가 많다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그 등짝을 돌려 세워 내 갈 길을 가는 좋은 방법이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우 그냥 대체로 숨 쉬고 있다 보니 여전히 살아 있더라는 표현이 정확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누군가 가장 숭고한 방법으로 자기 앞의 바위를 들어내는 이가 있다면 바로 ‘승화시키는 사람’이겠지요.


실 상자 작품은 <State of being>/ 붉고 까만 실 원피스 두 작품은 <Second skin>.




‘시오타 치하루’는 자신을 짓누른 절망을 그렇게 극복해낸 작가라고 합니다. 암 투병, 유산 등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경험을 실타래 삼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가 조형물이나 회화로 풀어내는 이 이야기는 결코 어렵지 않아서, 실 안에 갇힌 아이의 옷이나 인간의 장기와 뼈대 등을 보면 금세 작품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저에게도 숱하게 많은 위기가 있었는데, 작가와 마찬가지로 유산했던 경험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창 첫 아이가 너무 예뻐서 힘들지만 그래도 좋았던 날들 속에 찾아온 둘째 아이는 처음부터 심장 소리가 아주 약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가능하면 누워 있으라고 했지만, 첫 아이가 이제 막 걷고 뛰고 할 때라 누워있는 건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아이 낮잠 시간에는 마감을 지켜야하는 일도 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죠. 외출할 때도 실은, 의사의 말을 그다지 떠올린 적이 없었습니다. 첫째 아이를 너무 건강하게 순산했기 때문에, 둘째도 당연히 그럴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살아 숨쉰다’는 것은 그리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혈이 시작되면서 그제야 의사 말을 듣고 억지로라도 눕기 위해 노력했고, 모든 일을 미뤄두었습니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 들은 말은 결국,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가끔 드라마 속의 인물들이 유산을 했다고 하면 그게 그렇게 흔한 일인가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흔한 일이었고 내 일이기도 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산부인과가 참 잔인한 것이 의사의 말을 듣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왔는데, 그 앞에는 아무리 애써도 아이를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과 이미 만삭인 사람들, 이미 아기를 낳고 진료받으러 온 사람들이 주르륵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리다 저 같은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인데요. 그들이 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싶습니다.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을거란 걸 알면서도 그 때는 그게 참 신경 쓰였습니다) 아무튼 그런 눈길을 느끼면서도 눈물이 줄줄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우습기도 한 것이, 당시에 집에 돌아오니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가 마주 앉아서 과일을 깎아 드시고 계셨는데, 두 분이 눈이 시뻘개져 들어와서 울먹이는 저를 보면서 “아유, 그럴 수 있어. 그렇게 울 일 아니니까 울지 말고 기운 내. 별일 아니야”라며 와서 과일이나 먹으라는 듯한 투였다는 겁니다. 아이의 유산이라는 것이 두 분께 시시한 이벤트라는 뜻으로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상황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정말 서운했습니다. 당연히 어쩌냐며 위로해주실 줄 알았거든요.


벽면 작품은 <Connected to the universe>/ 붉은 실 덩어리로 보이는 작품은 <Cell> 시리즈

이 전시 서문을 읽으며 생각난 것은 일종의 선고나 다름없었던 유산 진단 순간보다, 의외로 그 장면이었습니다. ‘별 일 아니야’라던 그 말. 때로 참혹한 고통이지만 결국 살아 있다면, 살고자 한다면 지나가기 마련인 별 일 아닌 시련. 작가는 자신의 고통을 직관적으로, 실을 사용해 이를 여러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혈관처럼 보이는 검고 붉은 실 속에 둔 옷가지나 인체의 일부를 보면 고통은 오히려 평면적입니다. 지나간 일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혹은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박제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가장 입체적인 것은 작품의 일부와 다른 일부를 잇는 ‘가느다란 실 한 올’입니다. 일부러 의식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잊고 살기 쉬운, 생명과 죽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아무리 미약한 연결감이라도 생명과 생명, 한 마디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대가 각자의 무거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 실에 ‘별 일 아니야’가 흐르고 있는 것이죠.


전시의 하이라이트 <Return to earth>.

전시의 끄트머리에 도달하면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Return to earth>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실의 길이는 각각 다르지만 결국 모든 실은 흙으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작품 둘레를 걷다 보면 나 역시 저 작품 속의 실 한 올이 되고, 나 아닌 다른 관람객과 함께 작품과 비슷한 풍경을 만들게 됩니다. 지금은 얼굴도 전혀 기억도 나지 않고 모르는 완벽한 타인과 만드는, 작품과 비슷한 풍경. 특별히 관계를 맺지 않아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흙과 실. 우리 인생은 이 작품의 재료처럼 그다지 대단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지만, 조금 거리와 시차를 두고 보면 이렇게 근사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가슴에 불덩어리를 안고 괴로워하고 있는 요즘이라, 이 전시를 통해 기억 속에서 소환한 그 말을 여러 번 되뇌는 중입니다. 과일이나 깎아 먹으며 별 일 아니라고, 몇 번씩 말해보지만 물론 아무 것도 괜찮아지지 않습니다. 한 올의 실로 바위를 움직이는 건 원래 어려우니까요. 그럼에도 언젠가는 별 일 아닌 것이 될 날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곁에 있는 누군가와의 실낱 같은 연대감, 그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가장 최후까지 나를 지지해 줄 나 자신과의 연결감, 혹은 희미하고 연약한 희망에 기대기도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