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본다> 10. 마크 브래드포드: Keep walking 展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20250801 – 20260125
(유료전시: 성인 기준 16,000원)
2021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2024년 아트리뷰 ‘power 100’ 10위에 선정되기도 한 명성 있는 작가라는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접해보지는 못했습니다. 규모에 맞는 규모의 전시를 알맞게 보여주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열린다기에 가보았습니다. 이 곳은 관람 요금으로 만만치 않은 16,000원이라는 입장료가 있지만, 그 금액이 아까웠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늘 이 곳이기에 가능한 전시들을 보여주죠.
아무래도 한 작가의 수많은 작품을 감상하려면 그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고, 실제로 그 이야기를 모르면 이해하기 좀처럼 어려운 작품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전시는 사전 정보 없이 가더라도 작품과 캡션을 읽으며 전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작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는 알 수 있습니다. 작가의 출신과 배경이 곧 작품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죠. 전단지, 신문지, 그리고 그가 어머니의 미용실에서 일할 때 매일 보고 사용했을 파마 용지(end papers) 등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재료들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까지 전달하는 충실한 전달자가 됩니다.
시작을 여는 대작 <떠오르다(float)>는 앞서 말한 ‘거리의 부산물’인 전단지, 신문, 포스터 등을 긴 끈으로 엮어 펼친 작품입니다. 알록달록하고 다소 거친 이 작품은, 아마 관람객이 지나다니며 밟고 밟을수록 점점 매끈한 표면을 갖게 되겠죠. 원래의 성별과 인종, 출신이 다양한 사람들도 결국 같은 땅을 밟고 사는 똑같은 사람들임을 이 회화적인 설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넓은 공간을 차지한 작품 위를 걷다 보면, 아마도 작가가 서서 눈으로 관찰했을 풍경들을 모두 발 밑에 두었다는 사실만으로 이런 전달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르고, 또 위에서 바라보면 그만그만 비슷한 사람들. 관람객의 시선을 위성의 눈처럼 두는 이 작품은 규모 뿐만 아니라 발상, 아름다움이 모두 압도적이어서 전시의 서두를 차지할 만합니다.
어린 시절 미용실에서 흔히 보던 엔드페이퍼 연작을 지나 섹션을 지나면 지날수록 ‘사회적인 이야기’가 좀 더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도시 계획에 따라 가난한 이들의 땅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이던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작품부터, 불평등 계층 구조 속에 저소득층 흑인과 이민자들이 놓인 현실을 다룬 작품까지 다양하죠. 일부 영상 작품 등은 혼란스럽고 어렵게 느껴지는데, 그 자체로 복잡하고 아이러니한 현대사회의 모순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런 비슷한 메시지를 가진 작품들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은,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볼 때 관람자의 배경이 작품의 메시지와 감동을 느끼는 데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일까 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고만고만한 동네’에서 자라 저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을 사귀며 자랐고, 그 당시 ‘철밥통’이라 불리는 직장(물론 IMF가 닥치기 전까지만 유효한 닉네임이었지만)에 다니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딱히 극적인 결정타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요. 세상에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산다는 사실은 대학에 입학하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거의 매일 밤, 선배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각자 자신이 자라온 배경과 그로 인해 대입 후에도 자신을 지배하는 고민들을 나누던 날들. 그 중에 누군가, 가만히 듣고 있던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넌 안 겪어 봐서 몰라.” 지금의 나이에 생각해보면 꼭 뭘 겪어봐야 다 아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대꾸할 수 있는 말인데, 그 때는 왜 그리 상처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때에 뭐라고 받아쳤더라도, 솔직히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 사실은 여러가지로 나를 괴롭히는 콤플렉스가 되었음을 인정합니다. 닿아보지 못한 층위의 괴로움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에도, 작가로서 어떤 인물을 설정할 때에도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젊은 시절에 책으로 미천한 경험의 영토를 넓혔어야 하는데 ‘책은 무슨 책이야, 부딪치는 게 최고다!’라며 딱히 그러지도 못했고, 그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술만 마시러 다녔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지금도 연락을 주고 받는 그 친구들과 저는 ‘넌 모르겠지’를 기반으로, 서로를 다른 방식으로 동경했고 간혹 어떤 점은 무시했으며 그래서 껴안을 수 있었죠.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이 맺어준 우정이라는 것이 또 따로 있나 봅니다.
아마 작품 감상의 세계에도 그런 경지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알고 난 후엔 그 전에 갈 수 있는 곳과는 분명 다른 곳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알지 못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는 점과 알았음에도 외면하거나 잊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 전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그는 잿더미의 왕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라가 타오르는 것을 볼 것이다>가 그것을 확인 시켜줍니다.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대사를 차용한 긴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모두 합쳐 펼쳐보면 세계 지도가 될 국가들이 불탄 구체에 담겨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를 살피다 보면 ‘세계는 하나’라는 말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느낄 수 있릅니다. 그 어떤 때보다 서로 쉽게 연결되는 세상이지만, 그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큰지, 또 어떤 나라에 속하는지에 따라 경제적 ∙ 생태적 위기를 체감하는 정도가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현재도 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와 웃고 있는 나라들을 떠올려보면, 결국 모든 세계를 하나로 묶는 건 인간적 위기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불타 가라앉는 속에서 마지막까지 웃는 자리를 차지하려 다른 나라를 밟고 올라 애쓰는 행위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작품의 구체들은 그 어떤 웅변보다 큰 울림으로 이러한 질문을 가슴에 박아 넣습니다. 국가가 아닌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로 치환해 해석해도 울림이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안 겪어봐서 모르는 세상을, 이렇게나마 발견합니다.
최근 그의 작품이 프리즈 서울 기간 동안 62억 원에 판매 되어 최고가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로 안 겪어봐서 모르는 세상이죠. 아마도 제가 선 여기에서 그 세계로 갈 수는 없으리라는 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작품도 목소리 내어 말할 수 있다면, 이 작가의 손에 쥐어 62억 원 짜리 작품에 속하게 된 거리의 재료들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