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걸 다 가질 수 없어서

<나 혼자 본다> 11. 수집, 취향의 지형도 展

by per se

S2A 갤러리

202508012 – 20250920


사람이 취향과 욕구대로 가지고 싶은 것을 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가지고 싶은 대로 다 가질 수 있었다면 지금쯤 꽤나 많은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꼽자면 수 없이 많겠지만 대표적으로는 작품을 소장했을 때의 희열, 그리고 안목 같은 것 말이죠. 한정된 예산, 좋은 작품에 대한 갈망, ‘이 가격에 이 작품 괜찮은 걸까’ 하는 망설임, 혹시 전문가나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평을 받는 작품일까 하는 의구심, 작품에 쓰는 비용을 다른 데에 대체한다면 어디서 어떤 즐거움이 올 것인가에 대한 상상.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을 구입하는 행위를 이어가며 하나의 컬렉션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엄연한 자기 발견의 과정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컬렉터의 소장품들을 전시한다고 했을 때 그야말로 ‘도파민이 싹’ 돌았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들춰보는 게 사실 제일 재미있는 법인데, 심지어 글이 아닌 미술 컬렉션으로 서술된 타인의 이야기란 여러 가지 상상을 가능하게 할 테니까요. 필립 티로, 김남규, 정승우, 이준혁, 그리고 S2A미술관의 컬렉션이라는 정보와, 특히 그중 필립 티로는 한국 고미술을 수집하는 프랑스인이라는 말에 전시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웃음이 났던 것이, 별도의 섹션 구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컬렉션 구획이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를 알 것 같아서였습니다. 한쪽은 유명 작가의 대형 작품들, 한쪽은 현대미술, 한쪽은 분명 작가 미상이 껴 있을 것 같은 고미술, 한쪽은 다소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는 작품들, 마지막은 핫한 작가들의 작은 소품 위주 컬렉션.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컬렉터 5명의 구분이 뚜렷했죠.


- S2A 갤러리의 컬렉션 일부 -


- 정승우 컬렉터의 컬렉션 일부 -


S2A 갤러리와 정승우 컬렉터의 컬렉션은 개인이 선뜻 구매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좋은 작품들을 각각 미술관과 재단 차원에서 구매한 느낌이었습니다. S2A는 다른 전시들을 통해 흔히 보았던 한국의 대가들- 김환기, 유영국, 이성자 작가의 작품을 내놓았고, 정승우 컬렉터는 래리빌, 제니 홀저, 올라퍼 엘리아슨 등 해외 작품 위주로 선보였습니다.


- 필립 티로의 고미술 컬렉션. 겸재 정선의 매작도부터 작자 미상의 작품들까지 다양하다.-


기대했던 대로 필립 티로는 한국의 색이 가장 짙은 작품들을 내놓아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런 탐구정신과 우리나라 것에 대한 탐미주의,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요. 한국에 정착해 한옥에 살고 있다는 그는 겸재 정선의 작품부터 작자 미상의 목조 불상, 신라시대 토기까지 다양한 고미술품을 컬렉팅해왔다는데요.

특히 작자 미상의 조선시대 목조 불상은, 전시의 가운데 부근을 차지하며 꽤 대단한 포스를 자랑했습니다. 흔히 아는 불상의 온화하지만 완고한 인상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뒤에 비로소 찾아온 듯한 깨달음과 평온함이 느껴졌습니다. 그 외 작가와 제작 시기조차 알 수 없는 석조상과 토기들이 있었는데, 이런 과거의 기물들을 어떻게 눈에 들이고 구매까지 하게 되었을지 궁금해졌죠. 시대만 추측할 뿐 정확한 정보가 없는 작품들을 알아보고 소장하는 고미술품 컬렉터들에겐 그들만의 노하우나 컬렉팅 원칙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 이준혁 컬렉터의 컬렉션 일부 -


가장 개성이 강했던 컬렉션은 이준혁 컬렉터의 것이었습니다. 느낌으로 치자면 아주 얇은 종이에 벤 것 같은 느낌. 전혀 다른 작품들이지만, 가늘지만 날카롭고 깊숙한 고통이 공통적으로 서술됩니다. 뜯어볼수록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는 작품들이라, 설마 이런 작품들을 집에다 걸어 놓으시는 걸까 싶기도 했죠 (비디오를 통해 실제로 이렇게 걸어놓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만). 전시장 입구에 있는 인터뷰 비디오를 보면 ‘날 것의 정서’와 ‘사실의 잔혹성’을 중심 키워드 삼아 컬렉팅을 한다는데, 컬렉팅을 통해 이런 인간과 삶의 그늘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소장한 서늘한 작품들과는 달리 따뜻한 면모를 가진 이가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 김남규 컬렉터의 컬렉션 일부 -


김남규 컬렉터의 섹션으로 가면 다른 전시들을 통해 친숙한 이름의 작가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됩니다. 야요이 쿠사마나 우고 론디노네 등 유명 작가들과 구본창, 양혜규, 이수경 작가 등의 소품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정말 집 어딘가에 두고 보기 좋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현재 이름이 가장 많이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들이라, 우리나라 미술계의 한 시절 한 모서리를 목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전시장을 나서니 헛배가 고파졌습니다. 보고 나면 ‘나도 저 중에 어떤 작품을 가지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았는데, 그보다도 이들의 취향과 안목처럼 저도 저만의 고유한 무엇을 갖고 싶어 졌습니다. (물론 그것을 완성하는 데에 중요한 자본도 무척 부러웠죠.)

여러 전시를 접할 때마다 이 작가의 이름도 제목도 모른다면, 나는 어떤 눈으로 그 작품을 볼 것인가 의문을 품습니다. 이름이 아닌 취향과 안목이 기준이 되는 컬렉팅, 저도 언젠가 해보고 싶습니다. 저도 몇 개의 작품을 어수룩한 마음으로 구입해 가지고 있는데, 지금처럼 우선 ‘내 집에 둘 수 있을 것인가’가 1순위라면 아마 진짜 내 맘에 드는 컬렉팅을 하는 날이란 오지 않겠지요.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모두 담아두는 마음의 컬렉팅이라도 마음껏 해보는 중입니다. 그 속에서 한껏 자유롭게, 작품이 주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나를 상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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