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엔 내가 없었어요

<나 혼자 본다> 12. 김수자: 호흡 展

by per se

※ 업로드 오류로 연재글로 재업로드 하는 글입니다. 먼저 읽어주신 분들, 죄송합니다.


선혜원

20250903 – 20251019


요즘은 한옥에서 열리는 전시가 참 많습니다. 그런 전시의 써머리나 간단한 정보를 보고 전혀 끌리지는 않지만 조금 궁금해질 때, 아주 솔직하게는 ‘멋있는 한옥 구경이라도 하고 나오겠구나’ 하면서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전시는 달랐습니다. 전시의 거의 대부분이나 다름없는 거대한 스포일러와 같은 단 한 장의 사진을 본 순간, 이미 숨이 멎을 듯한 기분에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강렬한 끌림을 느꼈습니다. 한옥의 서까래, 기둥, 창을 호수처럼 끌어안은 거울 속에 발견하게 될 한옥의 새로운 아름다움이 궁금해서였죠. 네이버 예약을 통해서만 갈 수 있어서 가기가 쉽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한다 할만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전시 네이버 예약 창의 대표 이미지, '호흡' 작품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이렇게 자세히 보지 않고 사진만 들여다보다가 가서 알게 된 사실은 조금 부끄럽게도, 이 바닥의 거울이 공간 자체인 줄 알았는데 작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전시 제목인 여기서 김수자 작가의 전시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곳이 아닌 다른 공간에 있는 보자기 작품들만 작가의 작품이라 생각했던 겁니다.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덧신을 신고 나면 관람객은 누구나 작품 곁을 서성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작품 안으로 들어선 사람’이 됩니다. 문을 여는 순간 한옥의 아름다운 풍경이 거울의 끝자락을 중심으로, 하늘과 맞닿은 바다 저 편을 보듯이 확장되죠.

<선혜원 경흥각에 작품 '호흡'이 펼쳐진 풍경>

지금까지 보아온 대부분의 거울 설치 작품은 천장에 거울이 설치되어 있어서, 위를 올려다보아야 또 달리 펼쳐지는 시야를 경험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 작품은 반대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거울은 내 주위 모든 배경을 끌어당겨 바닥에 펼쳐냅니다. 발 쪽을 내려다보아야 어딘가의 위에 선 나 자신이 보이죠. 힐링을 위해 내 몸, 나 자신의 감정을 직선적으로 들여다보길 권유하는 요즘의 시간 속에서, 이 작품은 한 번 더 나를 둘러싼 주변의 아름다움을 둘러보며 그 속에 굴절된 나를 발견하기를 기대합니다.

드높은 천장을 하늘과 다름없이 여기게 해주는 건 바닥이고, 일상적으로 굳이 시선이 닿지 않는 바닥이 생명과 풍경을 갖게 해주는 건 천장과 한지 바른 창입니다. 거울을 매개로 다른 차원의 것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죠. 이 작품의 제목이 왜 ‘호흡’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호흡은 생명과 의식을 잇는 다리이며, 몸과 생각을 연결해 주는 통로다’라는 틱낫한(Thich Nhat Hanh)의 말이 떠올랐는데, 나를 의식하지 않고 보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선명하게 새것 같아 아쉬웠던 경흥각 내부>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한옥이 너무나 ‘새것’ 같았다는 겁니다. 이 곳에 며칠 머물면 새집 증후군에 걸릴 것만 같은, 진짜 ‘새것’. 물론 이 정도 규모의 한옥이 옛 것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면 이러한 작품 설치 자체가 불가능했을 수도 있고, 애초에 전시 용도가 아니었던 때에도 옛 것의 상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너무 밝고 샛노랗고 매끈한 새 목재 느낌이어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렇다고 오래된 것 흉내를 내었다면 더 역효과였을지 모르지만). 창살 역시 현대적 해석인지 그저 현대적인 것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남깁니다. 공간을 넘나드는 이 작품에 시간성이 담겼다면 얼마나 더 멋있었을까. 반대로 새롭게 꾸민 한옥을 비추어서 이런 작품이 탄생했다면, 다른 건물에 이 작품을 설치했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작품 안에 들어서는 것이 흔한 경험은 아니기에, 꼭 한 번 가서 볼만합니다. 아름다움의 문제가 아닌 공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김수자 작가의 거울은 단지 자본으로 만든 웅장함을 떠받치는 도구에 머물지 않습니다. 풍경과 거울의 이음새가 분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완벽한 하나의 풍경을 창조해 내는 역할을 충실하게 해냅니다. 거울이 있어도 관람객은 자기 자신보다 풍경 속에 타인이 거니는 모습을 먼저 보게 되죠. 그 속에 나는 어떠한가 돌아보게 합니다.

때문에 저는 새롭게 발견하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기대하고 가서, 오히려 작품의 힘을 믿게 되었습니다. 관람객이 많아 처음 본 것만큼의 좋은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위와 아래, 주변, 발아래를 둘러보며 느꼈던 경험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김수자 작가의 대표작인 '보따리'(2022)>


이 작품을 벗어나 지하로 향하면 대표 작품으로 알고 있던 보따리(2022)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보따리를 보면 늘 떠오르는 것이 그 옛날 할머니들이 머리에 이고 다니던 모습인데, 말 그대로 일상의 무게를 머리에 고스란히 지고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까지 잡고 다니던 것이 우리 여인네의 모습이죠. 작가는 보따리를 이러한 여성의 경험과 노동, 기억과 역사를 담은 오브제로 재창조합니다. 보따리로 싸면 안의 것이 되고, 풀면 밖의 것이 되는 단순한 행위는 어찌 보면 숨길을 통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숨을 안의 것과 밖의 것으로 만드는 호흡의 일종이기도 합니다. 위층 경흥각에서 거울을 통해 모든 것을 펼쳐내 보였다면, 아래에서는 싸매어 숨긴 세계가 어떨지 유추해보게 합니다. 다만 위에서 압도적인 느낌이 연출되는 작품을 보고 난 뒤라 그런지, 여성의 삶의 관찰자가 되어 보따리 사이를 걷는 기분은 상대적으로 평면적이었습니다` (적은 작품 수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린당에서 본 경흥각의 이곳 저곳. 잡상이 눈길을 끈다>

그 외 달항아리 모티프의 작품 등을 감상하고 나오면, 하린당의 마루에 앉아 선혜원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경흥각 지붕 위에는 기존의 한옥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독특한 잡상(雜像)들을 볼 수 있었는데, 몇 개의 한자 외에는 정확히 알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이곳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옛 것의 보존이나 복원보다는 의미와 전통에 ‘착안’한 현대의 아름다움이 방점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볼 뿐입니다. <호흡> 작품을 보며 아쉽게 느꼈던 부분이 이해가 되면서도, 여전히 이 거울이 다른 곳에 펼쳐져 있다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피노컬렉션에 소개되었다던 호흡 작품을 실제로 봤다면 어땠을지요.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듯합니다.


이 글을 남기며 다시 한 번 그 날의 <흐름> 작품을 눈 앞에 떠올려봅니다. 바닥에 거울을 놓는다는 건 참 단순한 일인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이렇게 많이 불러일으키는 걸까요.

다시 생각할수록 거울이 나를 비추지 않고 내 주변만을 담는 것은 참 드문 경험입니다. 내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어디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경험 말이죠.

명상이든 요가든, 나와 내 상태를 알기 위해 나를 들여다보던 시간들도 참 많았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별 게 없어서 점점 그저 잡념만 꼭꼭 씹었던 순간들이 더 많았고, 무용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국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흘러갔습니다. 이제는 내 발 밑의 거울처럼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땐 내 주변을 비춰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둘러싼 이들과 환경이 어떤 모습인지를 확장해나가 보면, 그리고 그 모습을 대하는 내가 어떤지 자문해보면, 내가 내 안으로 잠입하는 데에 실패하더라도 좀 더 쉽게 나의 좌표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성장과 퇴보로 읽는 그래프 속의 좌표가 아니라, 삶과 죽음 혹은 행복과 슬픔처럼 수치화 할 수 없는 인생의 흐름 속에 있는 나의 상태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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