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본다> 13. 안토니 곰리를 각기 다른 세 곳에서 경험하는 일
*뮤지엄 산: Drawing on space / 20250620 - 20251130
*타데우스 로팍: 안토니 곰리: 불가분적 관계 (Inextricable) 20250902- 20251108
*화이트큐브: 타데우스 로팍과 동명의 전시. 20250902- 20251018
같은 작가의 전시가 세 곳에서 동시에 펼쳐지는 경우는 아마 드문 일일 겁니다. 먼 교외의 넓은 뮤지엄 공간에서, 도심 한 가운데와 도심을 약간 벗어난 갤러리 세 곳에서 동시에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의 개인전이 펼쳐진다니, 세 곳을 모두 경험한다면 더 없이 충만한 관람 경험이 될 거라는 기대가 컸고 한 편 세 곳을 다 볼 수 있을까 초조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뮤지엄 산에 갈 결심’은 몇 차례의 폭우에 밀리고 또 밀렸으나, 마침내 운이 좋게 세 전시를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세 곳의 전시 모두를 경험하지는 못했더라도 갔던 모두가 극찬했던 곳은, 역시 뮤지엄 산의 전시 공간이었습니다. 뮤지엄 산의 전시공간 중 별관처럼 지어진 실험적인 공간 <GROUND>는 유명 건축가 안도 타다오(Tadao Ando)가 설계해 공개 이전부터 기대를 모았는데요. 마치 곰리의 작품을 위해 지어진 듯 작품의 완벽한 무대이자 화룡점정으로 작품을 완성시켜준 거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알맞게 어우러지는 완벽한 풍경을 위해 시간별로 입장해 아무런 대화 없이 관람을 해야 하는 관람객들은, 그래도 이 순간을 영원 속에 담고 싶어서 계속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들어서자마자 터져 나오는 나지막한 탄성에 이어 셔터음이 쉴 새 없이 이어지기를 몇 분, 그 후에는 찍을 만큼 찍은 사람들이 ‘진짜로’ 작품을 보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거대한 돔 형태의 공간에 햇볕이 쏟아지는 구멍, 햇빛의 움직임에 따라 각도를 달리하며 빛이 들어오는 광경을 가만히 응시하는 듯한 몇 개의 작품들. 그리고 그 돔의 트인 부분을 통해 총천연색의 초록과 파랑을 병풍삼아 선 작품들을 보는 건 말 그대로 장관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작품 옆에 작품과 비슷한 포즈로 앉아 보기도, 누워보기도, 가만히 명상하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 안토니 곰리의 작품을 경험한 건 작은 소품 형태로 경매에 나온 것, 혹은 대형 전시의 일부로 소개된 것뿐이었습니다. 오밀조밀 큐브 형태가 얽혀 사람 형상이 된 것을 들여다보면서 조형적인 아름다움만 감상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러나 이 공간에서 만난 곰리의 작품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작품 그 자체보다는 배경과 작품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느낄 수 있었고, 나 자신이 작품 중 하나,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웅크려 앉은 작품은 귀엽기도 했는데, 거대한 자연과 건축물 사이에 오히려 압도당한 인간의 모습 같아 마음이 갔습니다.
잎새를 스치며 들리는 바람결 하나하나, 나뭇잎 하나의 소리, 서로 흔들리며 부딪치는 나뭇잎 하나하나의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심에서 듣지 못했던 새 소리 속에 녹을 옷처럼 입고 서거나 웅크려 앉은 일종의 인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굳이 작가의 의도를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다 보면 가장 마지막에 편안한 내 몸의 상태를 참 오랜만에 만날 수 있습니다.
한편 타데우스 로팍과 화이트 큐브에서 만난 작품들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릅니다. 특히 화이트 큐브 갤러리의 바깥에 전시되어 오가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은, 도시인의 모습 그 자체처럼 보입니다.
긴장과 압박이 느껴지는 스트레스풀한 작품, 오그려 앉아 고뇌하는 듯한 작품 등은 뮤지엄 산에서 만났던 해방감 가득한 작품들과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공간과의 시너지를 느껴보라는 작가의 의도 그대로, 갤러리 내부에는 작품들이 적적하게 서서 도식화된 도시 공간에 적응한 인간 군상을 그대로 그려내죠. 갤러리 밖에 있는 작품들은 더욱 외롭고 고독해 보입니다. 도시의 일상에 다소 찌든 우리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타데우스 로팍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래도 이 쓸쓸한 무드에 위트가 더해져 있습니다. 끝없는 자연 속은 아니지만 나름의 공간과 세상을 펼친 작품도 있고, 천정에 붙어 관람객을 맞이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속이 빈 큐브들이 포개져 있는 것 같지만, 무한루프럼 구불구불한 선들이 인체를 이루고, 이를 멀리서 보면 공간을 이루는 선들과 하나로 이어져 보입니다.
이 모든 작품들이 한 데 놓고 보았다면 그저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졌을까요? 각 장소의 작품들을 서로 다른 곳에 배치했다면 분명 같은 작품도 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작품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찌보면우리가 어디에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사를 생각할 때 보통 비용과 편의에 떠밀려 후순위가 되는 것이 생활 양식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부엌에서, 침실에서, 거실에서 내가 살고 싶은 모습대로 살고 싶다면 공간 역시 내가 살고 싶은 곳이어야 합니다. 회사가 흥하면 공간부터 바꾸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공간은 결국 나를 바꾸니까요. 라이프스타일을 말할 때 장소와 건축을 떼놓을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겠죠.
라이프스타일이라 하면 ‘돈벌어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나 취향을 마음껏 따르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생각을 아직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지만, 이 세 곳의 작품들을 보며 어떤 곳의 어떤 살림 사이에서 어떻게 시간을 꾸리며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다시 한 번 해봤습니다. 장소에 의해 규정되는 나를 부정할 수 없지만, 원하는 모습을 닮기 위해 집부터 잘 치우고 살아야겠다는 아주 소박한 다짐을 해보면서요.
+ 그러나 몇 마디, 저의 소박한 잡념과 달리 인상 깊게 읽었던 밀도 높은 그의 인터뷰가 있어 덧붙여봅니다. 이 우주, 이 나라, 이 도시 혹은 산골에서 우리는 어디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으면서 연결되어 있을지, 눈감고 생각해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여전히 당신을 원초적 경이로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 오후, 10년 전에 우리가 심은 플라타너스나무 잎사귀 위에서 반짝이며 춤추는 빛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그 일부임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공감과 나눔의 기쁨 속에서, 우리는 넓고 경이로운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예술로 인해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생생히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특히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몸의 움직임, 정신, 영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 예술을 지향한다.”
(모두 2025.09월호 마리끌레르 인터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