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미친 것

<나 혼자 본다> 14.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by per se

2025.09.03 – 2026.02.01


북촌을 거닐다 자주 드나드는 곳 중에 한 곳이 ETBA라는 카페입니다. 특히 날이 시원해지면서 한옥 툇마루에 앉아 마시는 커피 맛이 참 좋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소리를 저 멀리 한옥과 돌담 뒤로 밀어내고, 키 높은 나무들이 둘러선 작은 마당에는 새가 드나들고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그 순간만큼은 의식적으로 휴대폰을 멀리하고 그곳의 분위기를 충분히 만끽하려 해도, 이미 그곳에 당도하는 동안 도파민에 절여진 정신은 쉽게 깨어나지 않습니다. 일상적인 혐오들, 이제 끝났다고들 말하는 교육, 납치 음모론까지 경계를 넘나들며 두서없이 펼쳐지는 뉴스거리들이 뉴스로, SNS로 전해집니다. ‘아직까지는’ 나와 아무 관계없는 듯한 그 일들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무의식의 어떤 선을 넘어서 내 불안을 노려보며 입맛을 다시고, 어느새 일상의 저 먼발치에서 언제 나를 덮칠지 모릅니다. 그나마 오늘 살기 위해 내일을 잊을 뿐인 하루가 있다는 건 다행일까요, 불행일까요.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모르겠다는 체념 섞인 절망과 이러다 정말 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은, 우리 세대만의 고정멘트일까요?

이런 뉴스를 외면하고 나면 왜 그리 주변엔 아픈 사람이 많은지, 한 다리만 건너도 꽤 많은 지인들이 어려운 투병을 한다는 소식을 속속 전해오고,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희망과 절망을 번복하는 의사의 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40대 중반이면 드디어 개인이나 시대의 종말 발 끝이라도 생눈으로 목격하게 되나 봅니다.


그렇게 평화 속에 절망을 자주 생각하는 요즘의 제 눈에, 어느 순간부터 이 카페의 옆에 자리한 아트선재센터의 색다른(?)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저 안에 흙더미가 깔려 있는 게 보인 거죠. 아트선재센터를 리뉴얼하는 것인가? 싶었지만 다음 전시가 준비 중이라는 정보만 보고 돌아섰었습니다.

그런데 그 흙더미가 공사 때문이 아니라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된 게 불과 얼마 전입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정말 ‘저걸 나중에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고, ‘설치는 또 어떻게 한 건가’하는 생각이 따라옵니다. 한창 공사 중인 공사장 한 복판에 선 포클레인처럼 어떤 작품들이 우뚝 서 있고, 약간 으스스한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 안에 멀쩡한 티켓 데스크가 있었는데 밖에 작은 부스를 세워 따로 운영하는 것부터 굉장히 수상했죠. 솔직히 아트선재의 전시는 너무 난해할 것 같으면 보지 않고 지나치기도 했었는데, 이 전시는 그렇게, 계획에 없다가 갑자기 들어가 보게 되었습니다.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Adrian Villar Rojas: The language of the enemy). 낯선 작가의 낯선 전시. 안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출입구를 흙더미로 봉쇄한 걸까요?


티켓을 끊으면 몇 가지 조심하기를 당부하는 안내를 받는데, 각 층마다 온도와 습도, 냄새 등이 다르며 절대 어떠한 것도 터치하지 않을 것을 강조합니다. 안내로 인해 더욱 자극받은 마음으로 지하부터 들어가 보면, 아래의 으스스하고 음습한 기운이 어둠과 함께 밀물처럼 가슴으로 밀려들어옵니다.

저 조명 위의 것은 정체가 뭘까? 작품 제목은 몰라도 일상을 점령당했다는 건 알 것 같았다.

천천히 한 공간으로 들어가면 소극장 같은 공간이 나오고, 의자는 모두 비닐로 덮여 있어 앉을 수가 없습니다. 조명만이 훤히 켜져 있지만, 조명은 무대가 아닌 의자를 향해 있죠. 조명 위에 올라앉은 괴생명체만이 관람객을 바라봅니다. 연극은 무대가 아니라, 객석에서 시작되는 걸까요. 결국 너희 인간이 망해가는 것을 재밌게 보겠다는 듯 자리한 것 같지만, 사실 괴생명체는 별 악의 없이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인지도 모릅니다.


미술관 1층의 입구와 내부를 점령한 <상상의 종말 Ⅲ>, <상상의 종말 IV>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1층과 2층입니다. 1층에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올법한, 외계인에게 침략당한 우리 땅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모든 것이 죽은 듯 보이는 가운데 이따금씩 돌아가는 세탁기와 땅 위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과일들만이, 이 난리가 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현재의 먼 곳인지, 미래의 생물인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은 나와 공존할 수 있는 상대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 존재들이 움직이기까지 했다면 정말 섬뜩했을 것 같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관람객을 블록버스터 영화 한 가운데로 데려다주는 <상상의 종말 Ⅲ>.

1층이 가장 압도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더 큰 비주얼 쇼크를 받은 곳은 2층이었습니다. 차량이나 기계가 여러 물질과 섞인 듯한 엄청난 크기의 잔해가 나무나 식물들과 함께 거꾸로 매달려 하나의 밀림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사이사이를 거닐면서 자세히 그 거대 잔해를 살펴보면 하나하나 허투루 만든 덩어리가 아니라 정교하게 빚어진 ‘정의할 수 없는 일종의 거대 조형물’ 임을 알 수 있는데요. 어디선가 완성된 작품을 고이 모셔와 전시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천정을 뚫고 쳐들어와 관람객 앞에 불시착한 느낌이었습니다. 분명 살아있는 것이 아닌데 살아 있는 나무와 덩굴들과 어울려 있는 것을 보면 안에서 정체불명의 무엇이라도 튀어나오든가, 혼자 변이를 일으켜 괴생명체가 될 것만 같습니다. 잘 만든 영화 세트장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제목 정보는 찾기 어려웠다. 다만 종말의 한 씬임을 짐작해볼 뿐.

감탄하며 3층에 오르면 활활 타오르는 불 하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마저 종말을 맞고 마지막엔 불만 남는다는 듯. 그 불의 곁은 사람 대신 돌 하나가 지킵니다. 문이 잠겨 있어 관람객이 불에 접근하는 것이 차단되어 있는 이유는 비단 안전 문제만은 아닐 거란 느낌이 듭니다. 종말의 종말에는, 우리가 외계인이거나 이세계(異世界)의 존재가 된다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아는 물질로부터 영원히 격리되는, 혹은 주인이 아닌 침입자가 되는 그 순간이 진짜 종말인지도 모릅니다.


전시를 보고 나오니 밖이 꿈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전시를 보는 사이에도 무슨 일인가 일어나 시끄러워진 사회면 뉴스와 부재중 스팸 전화 같은 것들을 확인하다 보니, 조금 으스스하긴 했어도 인간 없는 풍경이 오히려 평화로웠다 느꼈다면 너무 비관적일까요? 그래봐야 나도 인간이면서 말이죠. 거대한 무언가의 숨통이 끊어지지 않으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세상의 면면을 마주할 때마다, 이 전시를 떠올릴 것 같습니다. 종말 체험 정도를 예상하고 들어갔다가, 차라리 이런 종말이라면 아름답겠다는 희망을 품고 나오게 하다니, 이 작가는 전복이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 틀림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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