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엉덩이

<나 혼자 본다>15. 김창열 展

by per se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25.08.22 – 2025.12.21


저는 날씨의 악마입니다. 집에 있으면 날이 너무 좋고, 나가서 전시를 보면 비가 쏟아지는 날이 많습니다. 여행 갈 때 누구라도 날씨 요정이 끼지 않으면 돈 쓰고 비만 맞고 오는 날이 부지기수입니다. 이 전시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날도 그랬습니다. 송현광장 한 옆을 지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에는 황톳빛 강이 하나 생겼을 정도로 비가 많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엔 이 날이어서 더 좋았던 관람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김창열. 가장 인지도 높고 인기 좋은 작가. 누구라도 이름 한 번은 들어보았거나, 물방울이라도 한 번은 보았을 작가. 개인전과 그룹전을 통해 숱하게 접했지만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그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 중 한 컷. 공식 포토


영화 속에는 거대한 고요함 속에, 왜소하고 굽은 등을 한 그가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그림만 그리는’ 그는 거의 모든 말을 물방울로 대신하는 듯했습니다. 그를 설명할 때 흔히 소개되는 ‘전쟁이 남긴 상처’라는 말이 그 이유인가 했는데, 그의 전시를 보고 또 보다 보면 그보다는 ‘말할 틈 없이 그렸다’는 게 더 맞는 이유 같습니다. 사실 그 말이 그 말인지도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라면, 그러나 상처에 짓눌리지 않기를 택하려면 그 고통을 똑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감정과 응어리가 새어 나오기 마련일 것입니다. 김창열의 고요함은 그것이었습니다. 새어 나오는 마음을 말 대신 그림으로 표현하기로 택했을 때에 남은 빈자리를 채우는 고요 말이죠.


말이란 얼마나 무력한가. 반면에 고요란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주는가. 차라리 말을 않기를 선택할 때의 고통이란 무엇인가 생각합니다. 나의 사적인 피치 못할 사정이라는 것도, 이유가 있든 없든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물며 국가와 국가, 그리고 정치의 어떤 거대한 힘이 내게 미치어 나의 소중한 것들을 앗아갔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은 또 다른 이야기일 것입니다. 왜냐고 물어봐야 소용없는, 대답을 들을 수도, 대답이 있을 리도 없는 세상의 파고(波高)를 개인이 정통으로 맞고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때로 ‘극복’이라는 말은 마치 고통의 근원이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새로운 자신을 맞이한 이들에게 붙이는 수식 같지만, 사실은 이런 고통을 끝까지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더 적절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엔 고통과 그 그림자를 내 생이 다할 때까지 쉬지 않고 바라보는 사람이 더 드무니까요. 이렇게 생각하고 보면, 김창열은 캔버스를 눈물샘 삼아 수천수만 개의 눈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생애 내내 고통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그린 사람입니다.


그의 작품에 물방울이 나타나기 전, 초기 작품들.

60년대 그의 초기 작품들을 보면 젊은 나이에도 얼마나 죽음을 가까이 두고 생각하던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멈춘 바이탈사인 같은 직선들을 보고 있으면 전후 한국사회에서 타 들어간 생명에 대한 제의(祭儀)가 느껴지는데요.


본격적으로 물이 출현하기 시작한 때의 작품들.

70년대 초반 뉴욕에서 그린 작품들은 보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칼선 사이로 뭉근한 질감의 액체가 흘러내리는 듯한 회화들이 많습니다. 이후의 작품들을 알고 보면 물방울의 떨어지기 전, 어디엔가 고여 있다가 결국 터져 나오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우리가 아는 그, 물방울 작품들. 대부분 '회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드디어 우리가 아는 80년대 작업에는 마침내 맑고 투명하고 둥근 형태의 물방울들이 맺혀 있습니다. 수많은 작품들이 <회귀>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어 그 외에 어떤 작품에 어떤 이름이 붙어 있는지는, 솔직히 다 알지 못합니다. 고통은 평생 그의 삶을 옥죄었을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보는 이들에게 많은 자유를 부여하는 원천이 됩니다. 물방울 하나하나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지,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물방울을 그리고 싶은지, 나는 내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돌이켜보며 각자가 나름의 해방일지를 갖게 되죠.


물론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개관행사에서 물방울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그가 ‘물방울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는 기사를 보고 순간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는지요. 의미에 천착하는 것도 병인지 대단한 답을 내놓았을 줄 알고 기대했는데 말이죠. 물론 어떤 의미라고 설명해 버리면 그 의미대로 해석하게 될 관람객들을 배려해서 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좀 더 그의 마음을 헤아려보자면 얼마나 많은,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것이며 설명하려 들다 보면 설명을 못해 그림을 그린 것인데 그걸 자꾸 물어보는 이들이 답답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의미가 무엇이라 한들 어차피 우리는 영원히 알지 못할 겁니다. 그에게 돌을 던진 것은 시대의 소행이었을지언정, 고통은 한없이 개인의 것일 테니까요. 작가이기 이전에 보편적인 정서와 마음을 가진 보통 사람일 것이고요.

그런데 또 어느 기록을 보면, 전쟁 중에 죽은 동기들의 총알 맞은 구멍이 물방울의 근원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의미가 하나일 필요가 있을까요. 아마 하나만의 의미에 집착했다면 이만큼 많은 작품을 남길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의 작품을 접하면서 처음에는 물방울의 디테일과 실제감에 감탄했지만, 요즘은 매 전시에서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고 그 방대한 작품 양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은 엉덩이가 무겁다더니, 그는 정말 무거운 엉덩이로 앉아서 물방울만 그린 사람이 맞습니다. 볼 때마다 새로운 그림이 나오는가 하면 이런 조형 작품이 있었나 싶어질 정도로, 수많은 다른 작품들을 만나게 됩니다. 캔버스와 물방울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 이상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 만나서 내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무언가 다른 것을 이루어낸 사람일 수는 있어도 화가는 아니었을 겁니다. 사람보다 캔버스를 마주하는 일이 익숙하고 좋았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캔버스라는 숙제가 주는 중압감이나 또 다른 고통이 있었더라도 말이죠.


그릴 거리 앞에 앉힌 그의 무거운 엉덩이 덕분에 우리는 또 이런 세계를 실컷 누릴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과 인터뷰, 남긴 편지 등에 영감을 받아 만든 듯한 미술관의 여러 장치와 디자인적인 요소들, 충분한 층고와 공간감으로 인해 적당히 울려 퍼지는 대화 소리 등 모든 것이 또 하나의 물방울 그림처럼 보였죠. 대형 미술관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설명을 따라 작가의 고통만을 주목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저는 물방울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오래도록 생각했습니다. 누구라도 고통이 남긴 흉터 위에 자란 이 빛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술을 긴 호흡으로 사랑하는 이들은 단순히 화려함에 사로잡히기보다 바로 이런 반짝임에 이끌리기 때문이겠죠.

어디서도 보지 못했을 그의 다양한 작품들과, 소중한 자료들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인생에 한 번 볼만한 전시.


삶의 전부를 고통이라 말한다면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저에게 삶을 대신할 말 하나를 고르라면 고통이 가장 앞에 오는 말 중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이 반짝임은 정말 소중합니다. 어떤 반짝임과 그 의미를 읽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직설적인 빛을 선사하는 이 물방울 그림이, 내 가슴에 반사되어 누군가의 반짝임이 될 때까지... 내 길을 걸어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별 의미도 없는 것에 매달린다는 핀잔을 듣거나 ‘내가 왜 이런 걸 하고 있지’ 싶더라도 숙명처럼 주어진 일을 엉덩이 힘으로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내 일의 의미는 내 엉덩이가 대신 증언해 줄 겁니다. 어떤 의미가 있거나, 별 의미 없을 거라고요. 어차피 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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