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본다> 16. 벙커: 어둠에서 빛으로 展
청주, 당산 생각의 벙커
20250820- 20251116
저는 전시를 자주 보기는 하지만 전시를 보는 곳은 항상 정해져 있는 편입니다. 특정 갤러리의 취향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유명하거나 작아도 안목 있기로 정평이 난 갤러리를 찍어두면 그곳에서 유치한 좋은 전시를 믿고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혀 새로운 것을 보고 싶다면 계속 ‘시도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거나 이전과 다른, 새로운 곳을 찾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내 취향은 내 취향이 아닌 것을 볼 때 더 확고해지기 때문이죠.
청주 국립현대미술관과 시립미술관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왕 가는 길에 근처에 또 볼만한 전시는 없는지 찾다가 알게 된 것이 바로 이 전시였습니다. <당산, 생각의 벙커>라는 이름만 들었을 땐 제 취향과 거리가 굉장히 먼 전시를 하는 곳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립미술관과 연계해 <MMCA X CMOA 청주프로젝트 2025 <벙커: 어둠에서 빛으로>>라는 전시가 진행 중이라는 말에, ‘그럼 어차피 가기로 했던 곳과 연계한 전시가 있으니 가보자' 라는 마음으로 가볍게 들렀습니다. 심지어 근처에 맛집이 많으니 일행과 가는 길에 잠시 들르자는 소리까지 했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한 시간도 훌쩍 넘게 이곳에 머물렀죠.
이 날 따라 입구 부근에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출입이 출구 쪽으로만 가능해, 한참을 헤매다 출구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서늘한 터널의 기운, 어둑한 내부, 코 끝을 편안하게 간질이는 향 냄새가 맞이해 오감을 사로잡습니다. 작은 산 아래 위치해 옛 터널인가, 혹은 창고인가 했는데 1973년 군사 지휘 통제용으로 지어졌던 벙커를 문화 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라는 설명에 이곳이 더 환상적으로 느껴집니다.
다만 처음 들어가면 작품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고 빛나는 밤송이 같은 것이 천정에서 흔들리는 것만 눈에 띄어 전시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졌습니다. 최우람 작가의 <비밀의 추>라는 이 작품은 감각적으로 어둠 속에서 도사리고 있는 미지의 생명체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이 터널의 태생과 맞물려 원래의 자연이 가진 눈빛과도 같아 보입니다. 인간이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이곳을 지었으나 언젠가는 회복될 생명의 비밀함과 힘을 보여주는 것 같죠. 다만 정지해 있지 않고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어, 위태로움과 인간이 제어 불가능한 힘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외 작품들은 모두 터널 양 옆에 뚫린 거대한 구멍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아마도 군수용품을 보관하거나 군인들을 대피시킬 목적으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 각 방은 빛과 생명이 잉태되는 생동감 넘치는 주머니로 변모해 있습니다. 총 열한 개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갤러리처럼 한 공간에 여러 작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공간이 한 작품을 위한 방으로 이용되고 있어 각각의 작품에 몰입해서 볼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아마도 환한 대낮의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었다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보았을 작품들인데, 이곳이었기에 가능한 감상을 갖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많은 작품들 중에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사일로랩(SILO LAB)의 두 작품이었습니다.
<묘화>는 말 그대로 묘한 빛이라는 뜻인데, 조선시대에 백열등을 도입하면서 쓴 말이라고 합니다. 켜지고 꺼지는 백열등의 불빛은 나름의 리듬감을 가지고 야경처럼 어둠을 밝히는데, 사실 최근에는 잘 쓰지 않는 백열등들이 ‘나도 아직 내 빛을 잃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듯 전구만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참을 바라보다 보면 추억 어딘가 짚이기도 하고, 혹은 잊은 것들을 환기하며 애상감에 젖게 됩니다.
<파동>은 들어서자마자 전시 후반부를 맞이해서인가, 달과 가장 가까운 지구에서 대보름을 맞이한 기분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작품의 처음으로 돌아가면, 스크린에 비치는 물의 파동으로 고요하게 시작된 영상이 한 두 방울 떨어지는 물을 따라 파문을 그리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물은 실제로 어디서 떨어지는 것인지, 수면 아래의 장치를 통한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명상에 젖어들게 되기 때문이죠. 물 그림자와 환한 달빛에 탄성을 내뱉으며 들어온 관객들을 금세 수행자의 마음으로 돌려놓는 이 작품, 정말 멋있었습니다. 뜨면 지게 되어있는 자연의 순환과 덧없음도 함께 느낄 수 있었죠.
한편 시각예술가 장민승과 작곡가 정재일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의 <상림>이라는 작품 또한 인상적입니다. 이 영상은 다섯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고 러닝타임이 꽤 되기 때문에 전체를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 전시공간으로 들어서자마자 잘려 나간 통나무로 만든 관람석과 스크린에 비친 앙상한 나무가 이룬 또 하나의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 켠이 잘려 나간 기분이 됩니다. 상림은 신라시대의 인공 숲 ‘상림’에서 착안한 것인데, 화면의 황량한 숲은 경북 산불 이후의 숲을 촬영해 이곳에서 새로 피어나는 생명을 비춘 것입니다. 또한 직접적으로 생명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어린이들의 담백하고 아름다운 연주가 영상미를 고조시킵니다. 이 작품은 미술 작품이라기보다 영화 한 편에 담긴 종합예술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스크린 뒤로 비치는 나뭇가지와 관람석까지 하나의 풍경이 되어 이 작품을 완성해 여운이 긴 한 컷의 기억을 남깁니다.
이병찬 작가의 <플라스틱 유기체>는 가장 배신감을 준 작품으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작품마다 일정 거리를 두고 있기에 다음 작품 공간으로 가면서, 이 작품에 도달하기 전까지 이곳에서는 뭔가 잔잔하고 아름다운 자연 친화적인 풍경이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이파리 부딪치는 소리와 그 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 어떤 생명체가 숨 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죠. 그런데 발견한 것은... 비닐과 잡동사니로 이루어진 큰 인공 생명체였습니다. 이파리 부딪치는 소리는 비닐끼리 스치는 소리였고, 들숨과 날숨 소리는 그 생명 없는 생명체가 내는 소리였죠. 이 배신감 때문에 이 시대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외의 작품들도 생성과 소멸, 그 사이와 그 너머의 생명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들이라, 긴 시간 관람하고 나온 것이 지나고 보니 우습습니다. 의외의 전시 장소에서 의외의 충만함을 느낀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요. 군 시설이었던 곳에서 이런 전시를 열었다는 것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근현대 추상화를 좋아하는 저에게 취향을 넘어선 관람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마 대부분이 그럴 것입니다. 일부러 하는 관람 행위가 아니면 알지 못할 세계가 있는 줄은 알면서도, 계속해서 아는 것과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찾는 건 아마 관람 습관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의 일상에 속한 습관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내 취향을 찾아다니고, 어떤 것은 소장하는 기쁨을 적당히 누리면서요.
그렇지만 이렇게 매캐한 향 냄새와 어둠- 그 속에 피어난 초록과, 빛과, 생명을 생각하는 순간과 같이 순수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이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구나’, 그리고 ‘특별한 주제는 아니지만 공기처럼 익숙한 보통의 이야기라 가끔은 의도적으로 환기해 볼 이야기다’라는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 그러면서도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을 가진 작품들로 채운 전시야 말로 좋은 전시가 아닐까요.
최근 일상과 사물을 다룬 수없이 많은 전시들 속에서, 일상이지만 일상이 아닌 자연과 생명을 다룬 전시를, 마찬가지로 습관을 벗어난 비일상적인 행동 덕분에 이 전시를 볼 수 있었다는 게 행복했습니다. 대단한 결심은 아니더라도 과거 혹은 어둠으로부터 흔들림 없이 빛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보통의 마음이 나에게도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