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에 꽃이 피면

<나 혼자 본다 18> 조우(遭遇), 모던아트협회 1957-1960

by per se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51002-20260308



길을 걷다 사소한 경이를 발견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연약한 이파리로 담벼락을 뚫고 나오더니 기어이 나무가 되고 만 광경 같은 것 말이죠.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언젠가 휴대폰 저장공간을 정리하면서 지우게 될 줄 알면서도 그 모습을 담아두게 됩니다. 자신을 가로막은 벽 중 가장 약한 부위를 찾아 두드리고 또 두드렸을 줄기를 생각하면서요. 가고자 하는 방향과 힘이 내 모습을 정의하는 건 식물이나 사람이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근현대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후의 척박한 땅에서 어디든 미술의 재료가 되는 것에 드로잉이나 흔적을 남기고, 돈을 모아 재료를 사고, 함께할 동료를 찾아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사람들. 그들의 작품을 관람할 때면 누구나 ‘그 시대에 어떻게 이런 작품을 남길 수 있었을까?’하는 궁금증을 품어봤을 것입니다. 말 그대로 먹고살기도 바빴을 시대에 남긴 그들의 유산은 뭐든지 풍족하고 누구나 각자의 화려함을 뽐내는 세상 속에 더 빛이 납니다. 악착같이 그 시대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담고, 의연하게 희망을 말하고, 그럴수록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위로했을 그들이기 때문이죠.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던 1950년대 후반. <모던아트협회>라는 모임을 만든 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묵, 박고석, 유영국, 황염수 등의 작가들인데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이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 중입니다. 녹록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1957년부터 1960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여섯 차례 전시회를 열며 치열하게 한국의 ‘모던’을 고민해 온 이들의 작품 중 전시된 것만 180여 점에 이르는 것을 보면 어떤 상황에서든 무엇에 골몰하고 무엇을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단출하고 소박한 생활을 담았으나 꿈꾸었던 그 너머의 이상이란 어떤 것인지,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사유와 한계 없는 상상이란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한묵, <꽃과 두개골> (1953)

수많은 작품들 중에 좋았던 작품들 몇몇을 떠올려봅니다.

정물의 배열만으로도 눈길을 끄는 작품. 한묵의 <꽃과 두개골>입니다. 그의 작품을 자주 접하지는 못했으나 다른 기획전 전시를 통해 들었던 바로, 인간이 달에 갔다는 사실만으로 3년을 앓아누웠고 그동안 일생 놓은 적 없는 붓을 놓기까지 했다는 작가인데요. 그 이후로는 무한한 공간을 창조하고 상상으로 수놓은 완전한 추상작품들이 많지만, 이전에는 이런 작품을 그렸었구나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두개골과 꽃이라니. 전쟁 후 핏빛 흙더미에서 자란 할미꽃을 그린 이 그림만 보아도 작가가 어디에서 무엇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죽어간 병사가 마지막에 떠올렸을 어머니나 할머니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 피었을까.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그 곁에서 살아가는 일은 또 어땠을까요. 그가 남긴 <하꼬방 편상>이라는 글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어떤 최악의 시련에도 굴복하지 않는 비장과 삶에 대한 희열과 내일에의 희망이 한데 얽혀진 그런 눈물 어린 절박감이 한 개의 못과 판자에도 어이 사무처 있지 않으리...”

몸은 삼층의 작고 작은 하꼬방에 자리했을지라도 그의 사유와 집념은 끝없이 줄기를 뻗어 작품으로 향했던 모양입니다.


박고석, <소녀> (1953)

한편 박고석 작가는 ‘산의 화가’로 유명해 산을 그린 작품들을 흔히 보아왔는데, 여기서는 드로잉부터 여러 작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 <소녀> 작품은 단순히 오래된 사진 속 우리 엄마와 똑같아서 보고 또 보고, 사실은 쓰다듬고 싶었는데요. 1954년생, 많은 형제 중 맏딸이었고 일 나간 외할머니를 대신해 어릴 적부터 살림을 도맡았던 우리 엄마. 단발에 흰 카라 교복을 입고 찍은 언젠가의 사진이 그대로 그림이 되어 거기 있었습니다. 앳되지만 웃음기 없는 저 소녀. 저 나이 즈음에 나는 어땠던가. 태어나보니 폐허나 다름없던 시대에 어린 여성의 삶이란 어땠을지 감히 상상해 봅니다.



김 경, <명태> (1959)

이번엔 나의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눈길을 끕니다. 밥알 하나 보이지 않는 밥그릇 위로 바싹 마른 생선이 줄지어서 매달려 있는 것인지, 아니면 거의 다 뜯고 뼈만 남은 명태가 날아다니는지, 이 모든 게 보는 이의 눈 위에 환상처럼 떠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작품. 김 경 작가의 <명태>입니다. 추상이면서 너무나 현실적인 건 아마도’그 시대’라는 것을 알고 보아서겠지요.

저의 외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생선 반찬이 있었습니다. 집 안에 들어서기 전부터 손주들을 위해 무얼 차리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가 흘러나왔던 기억입니다. 조기, 고등어, 서대 등을 구워 주셨는데 그때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엄마도 그렇게 생선을 자주 구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춘기쯤의 나는 다 씻고 나왔는데 엄마가 고등어를 굽고 된장찌개를 끓이느라 그 냄새가 머리에 배는 것이 왜 그렇게 싫었을까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외할머니만큼 생선을 잘 굽는 것이 우리 엄마였는데. 그게 아이일 때와 사춘기의 차이점인가 봅니다. 특히 그런 점이 그대로 물려진다는 것이 뭔가 무섭고, 두렵기도 했죠. 이런 냄새를 타고 피라는 게 이어지는가 싶어서. 또 보통 그렇게 싫어했던 점을 똑 닮게 되고 마니까요.

아무튼 별 다른 반찬 없이 생선 하나로 행복했던 어린 시절 한 순간을 완성시켜 줬던 마법 같은 생선. 그런 생선이 가득한 이 그림을 그린 김 경 작가가 40대에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듣고 보니, 한 때 원망했던 이 마른 생선들을 다시 그리워할 딱 이 나이쯤에 떠난 것이겠구나 싶습니다.

이 외에도 일일이 사적인 감상을 나열하기엔 제 언어가 부족할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았습니다.


시기별, 작가별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조우, 모던아트협회> 전시 전경.



태도가 현실을 지지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는 그랬으나 현재는 아닌 것 같고, 특히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 삶은 점점 편리함을 향해 나아가지만 반대로 무엇 하나 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런 것에 의지해온 제 삶이 가지는 태도는 이때 이들의 태도를 영원히 닮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실을 살아가기가 힘이 드는 것 아닌가 싶어 집니다. 저에게도 이런 튼튼한 태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것 필요 없이 꿈꾸고, 이들이 붓을 들듯이 단순한 도구 하나로 내 할 일과 책임을 다하는 성실함. 본 것을 본 것으로 두지 않고 내 것, 내 세상으로 만드는 사유.


마지막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공식 홈페이지의 전시 소개 말미를 소개해봅니다.

“예술은 어떻게 시대의 현실과 교차하고,
생활의 언어는 어떤 과정으로 예술로 전환될 수 있는가.
모던아트협회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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