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기는 멈추지 않기

<나 혼자 본다 20> 전국광- 쌓는 친구, 허무는 친구 展

by per se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20250924- 20260222


조각. 회화에 비해 표현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던 영역. 그러나 회화가 가질 수 없는 공간성을 가지고 더 넓은 시야로 작품을 보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 조각가의 개인전을 본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각 너머의 세계를 발견할 때의 기쁨을 찾아 관람하러 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광’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접한 적이 드물기에, 그의 작품 세계와 인생을 포괄해 둔 이 좋은 전시를 일찌감치 다녀왔습니다.


전시의 머리말을 읽다 보면 ‘45세에 타계한 작가’라는 말이 들어옵니다.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나이에 타계했다니. 그럼에도 생전에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추상 조각에 한 획을 그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 지내다 기념 조각가의 아래에서 조각을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척하면 조각이 만들어져 있다 싶을 정도로 ‘손이 빠른 사람’으로 이름났다는 것을 보면 정말 타고난 것은 환경을 타지 않나 보다 싶습니다.


전시 섹션 1 <쌓는 친구: 積> 전경.

<쌓는 친구: 積>이라는 이름의 첫 전시장에는 자연물을 쌓아 올린 형태의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볕이 잘 드는 오전 시각, 자연의 조명을 받은 작품들이 아름답게 빛납니다. 멀리서 보면 그저 그런 돌덩어리 같은데, 가까이서 보면 마치 점토를 빚어서 굳힌 것처럼 주름 잡힌 형태의 돌들이 결을 맞대고 쌓여 있습니다. 돌을 깎아서 이런 형태를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물결처럼 자연스러운 주름들입니다. 이런 느낌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매만지고 내려쳤을지, 주름이 맞닿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디테일을 신경 썼을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전시 섹션 2. <매스를 기리며: 매스의 碑> 전경.


두 번째 전시장은 <매스를 기리며: 매스의 碑>라는 공간입니다. 기존의 쌓는 작품에서 허무는 작품으로 가는 과도기에 탄생한 작품들을 전시했는데, 제작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말 그대로의 ‘무게’ 때문에 자유롭지 못했던 환경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조각을 지향한 흔적이 보이는 작품들입니다. 이전 조각들에서 볼 수 있었던 물결과 주름이 조각 덩어리 자체에 새겨져 있습니다. 금속 재질 특유의 색채감이 은은하게 더해져 이전에 비해 세련된 느낌이죠.


전시 섹션 3 <허무는 친구: 적積의 적敵> 전경.

세 번째 전시장은 <허무는 친구: 적積의 적敵>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확실히 이전 조각보다 가볍고 자유로워진 것이 보입니다. 바닥에서, 공중에서 허물어진 조각은 그러나 일정한 질서를 갖고 존재합니다. 특히 <매스의 내면> 시리즈는 ‘허물기 위해 쌓았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항상 쌓는 사람이었던 것이죠. 같은 일을 해도 다른 재료를 다를 방식으로 다룰 때, 전혀 다른 결과물이 탄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시 섹션 4 <예술가의 목소리> 전경.


이 전시가 다른 전시에 비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마 네 번째 공간, <예술가의 목소리>라는 공간 때문일 것입니다. 미술가이지만 문학을 무척 사랑했다는 그의 자필 노트를 그대로 재현한 영인본을 직접 만지며 그의 일상적인 상념과 예술가로서의 고뇌를 느낄 수 있습니다. 홍익대 문학 동아리 <다리>의 일원이었던 그의 글은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독특하다고 알려진 그의 개성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 단어들을 열거하거나 시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다소 정돈되지 않고 맺음조차 없어 보이는 글들은, 그가 얼마나 민감하게 자기 자신을 감지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준 없이 먼지처럼 부유하는 생각과 말들을 하나하나 채집하면서 자신을 찾아가고, 또 다듬어가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또 한 가지, 지금 볼 수 없는 작가들이 현재에도 살아 숨쉬고 있음을 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건 내가 아는 인물과 접점이 있을 때인데, 전국광 작가 역시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동료와 지인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는 비디오 룸에서, 우연히 한대수의 목소리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의 공연에 갑자기 뛰어들어 시를 낭송하는 등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는데, 시대를 앞선 사람들의 ‘케미’가 어땠을지 무척 궁금했고, ‘그가 정말 그 시대를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과격한 공연으로 충격을 안겼을, 우리 락의 태동기를 풍미한 거장과 친분이 있었고 그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현재까지 생존해 있었다면 과연 어떤 거장이 되어 있었을까- 그의 못다 한 뒷 이야기도 궁금해졌습니다.


옛 벨기에 영사관이었던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전경과 야외 설치 작품.

미술관을 나서며 눈에 들어오는 눈부신 가을, 점점 져가는 이파리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평소에도 스스로에게 자주 해 온 질문인데, ‘빛나는 재능이란 무엇일까’라는 것을요. 시대나 환경과는 관계가 없는 것, 혹은 반대로 재능이 있어도 묻히기 쉬운 때일수록 더 빛나는 것이 재능일까요? 일찍부터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내 일을 끌어온 사람으로서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미술과 음악과 산문 모든 분야에서 자기 색깔이 철저했던 사람. 그런 것을 재능이라 부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색깔이 시대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나타냈다는 점에서 더더욱 말이죠.

한편으로 그가 남긴 원고와 스케치들에서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쌓고 또 쌓아가며 한계를 발견한 사람이기에 재능이 더 빛난 것 아닌가 합니다. 시작부터 자신의 시그니처를 ‘쌓기’로 규정하고 정진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그가 손이 빨랐던 것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제일 처음 조각의 길에 들어섰을 때 석고가 굳지 않도록 빠르게 젓던 석고돌이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후에는 그런 손을 가지고도 자기 작품의 무게와 작업의 ‘무거움’을 극복하기 어려웠고, 이를 인정한 뒤 다른 재료를 쓰되 쌓기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던 과정을 되새김해봅니다.


안 되겠지만 돌아서기보다 다른 길에 들어서 또 끝까지 가본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입니다. 돌의 무게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해도 그 무게에 압도되어 내 힘을 다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어차피 삶은 흘러가게 되어 있고 내 추진력을 잃은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도 어디론가 삶의 흐름에 떠밀려 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게 힘이 없다면 더욱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게 되겠죠.

사실 어릴 적에는 아직도 이 나이가 되도록 ‘힘내서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생각하고 살 줄 몰랐습니다. 더 젊은 날 열심히 일하고 지금 쯤엔 그냥 내 모양대로 맘 편히 살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인지, 원래 삶이란 이런 것인 것 모르겠습니다.

이제라도 살던 대로 살지 않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어딘가 끝에 도달해보고 싶습니다. 흘러간 곳이 원하는 곳과 닮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음에 좌절하되 나를 잃지 않고, 내 길을 개척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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