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본다> 21. 이불 <1998년 이후>
리움미술관
20250904- 20260104
'이불'. 처음 들으면 당연히 예명이 아닐까 싶은 이름인데 본명이라는 유명작가. 그의 전시가 내년 연초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미술관 전시는 대개 전시 기간이 긴 편이고 오픈과 끝날 때 쯤 붐비기 때문에 적당히 관람을 미뤄두는데, ‘엄청난 규모의 서베이 展’이라는 말에 조금 서둘러 관람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머리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듯 자리한 거대한 우주선 작품이 맞이합니다. 반짝이는 표면 속에 외계 생명체가 타고 있는 것일지, 아니면 인간이 타고 어디론가 나아가는 것인지, 혹은 오히려 외계에서 보낸 정찰선일지 알 수 없는 거대한 미지의 물체에 금세 압도되고 마는 작품. 이불의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입니다. 가능하면 작품을 볼 때 제목은 그저 참고 정도로 하려고 하는데, ‘취약할 의향’이라는 말에 매료되어 다른 작품들도 그렇게 보게 되고(?) 말았습니다.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기로 한 순간, 인간은 불안정한 존재, 취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 세계에서 온 정찰선이라면, 이미 우리가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뤄내고 머리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 인간은 또 다시 취약한 존재가 됩니다. 작가가 이렇게 세계를 확장해 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그렇다면 인간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게 됩니다.
입구를 지나 블랙박스 전시실에 들어서면 거울이 가득한 어둡고 큰 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습니다. 사진을 찍다 떨어뜨리면 거울이 깨지고 작품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해봅니다. 실제로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 조금 조심스러웠습니다. 거울 속에는 현재의 내가 있고, 그런 내 머리 위와 곁에 미래적인 작품들이 있고, 미세하게 과거에서 온 빛들이 반사되어 빛나고 있어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그럼에도 빛나는 조명과 반사광들은 너무나 아름다워 슬픈 느낌마저 듭니다. 여러 시점이 뒤섞인 그 순간이 영원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찰나로 느껴져서였습니다.
이 공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솔직히 거대한 코인 노래방-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I>(2000, 1999년 작 재제작). 작품이었습니다. 밖에선 우주를 계속 말하고 있는데, 브라운관 형 TV 안에서 흘러나오는 흐릿한 해상도의 노래방 화면과 거기서 흘러나오는 추억의 노래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던 이 작품은, 그러나 바로 뒤에서 사람들이 그 곳에 들어가기를 줄 서서 기다리고 있기에 감히 가창 실력을 뽐내기가 민망합니다. 뒤에서 정말 잘 들렸거든요. 앞에 들어갔던 사람이 틀어둔 Dancing Queen을 멈추고, 오랜만에 내 추억속의 <Lovefool (Cardigans)>를 들으며 흐릿한 화면 속에 떠오르는 내 유년을 잠시 생각해보다 나왔습니다. 온통 미래와 우주로 가득한 그 공간을 뒤로 하고, 그 우주 속 아주 사적이고 사소한 과거의 세계에 집중하게 되는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캡슐 자체가 하나의 우주선이라고 생각하면, 역시 나의 취약함과 먼지처럼 가벼운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죠.
이어지는 지하의 그라운드 갤러리에는 작가의 작업을 아카이빙한 거대한 구조물과 함께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몇몇 작품들을 떠올려봅니다.
<천지>라는 작품은 욕조에 검은 물이 담긴 모습입니다. 윗부분은 백두산 천지의 모습을 닮았으면서 아래로는 깨진 타일로 만든 욕조 모양인데, 검은 물이 고요하게 고여 있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이 욕조는 박종철 열사의 물고문 사건을 연상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라 합니다. 검은 물은 말 그대로 ‘흑역사’를 말하는 듯하기도 하고 깊이를 알 수 없을만큼의 고통을 말하는 듯도 합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려 하면 맑게 비치는 내가 아닌 흐릿한 나 자신이 보입니다. 우리는 이 욕조 안에 담긴, 아니 다 담지 못한 수많은 희생 덕에 오늘 날의 모습으로 살 수 있었지만 정작 그 사실을 자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엔 더욱 허상과도 같은 그 괴리를 느끼며 쓴 맛으로 돌아서게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몽그랑레시: 바위에 흐느끼다>라는 작품은 아이와 갖고 놀던 자동차 트레일 장난감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조금 복잡한 구조입니다. ‘몽그랑레시’는 한 철학자가 말한 ‘거대서사의 붕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데, 가느단 철근 여러 개 위로 바위가 얹어져 있고, 그 위로 길이 그럴 듯하게 위치해 있지만 서로 통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대단한 것을 건설하려다 실패한 하나의 풍경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아름답다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작가는 한국 근현대사와 다양한 나라의 건축을 참조해 이런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하는데요. 저는 내 기억 속의 구조를 뜯어보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 시간 순으로 열거되지 않고 여기저기 구멍 난 채 주관에 의해 얼기설기 엮어진 모습. 그 자체로 거대 서사는 무너지고 사사로운 기억만 남은 어설픈 형상의 내 머릿 속 기억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외에 수없이 많은 작품들이 있어 전체를 다 보는 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고 조금 지치기도 했습니다. 작품이 워낙 많다 보니 그 작품들에 대한 내 기억도 몽그랑레시 연작의 일부가 되는 기분입니다.
꽤 시간차를 두고 이 글을 남기는 지금, 마음에 남아 있는 건 수많은 거울로 된 작품들 속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과거가 되어 비쳤던 내 모습과, 비즈 커튼이 반사하던 반짝이던 순간, <천지>의 검은 물 속에서 미래의 나를 바라보고 있을, 그러나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인물들에 대한 상념 같은 것들입니다. 빠짐 없이 필요한 정보를 모두 휴대폰에 입력하지만 정작 내 몸은 텅 빈 채로 다니게 되는 요즘, 이 몸으로 상상하는 미래란 당연히 연약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비관적인 생각도 듭니다 (물론 저에 한정된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미래를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는 힘이란 점점 기술에 의존해가는 생활 속에서도 의미 있는 것들로 자신을 채워 나가려는 힘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혹은 성글게 짜인 과거의 기억 속에서 아주 드물게 길어내는, 그러나 그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유산들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혹은 그저 뚜벅뚜벅 걸어가던 관성이 만나는 우연 속에 탄생하는 것일까요? 이제는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하는 육신으로 나의 미래에게 묻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묻기도 전에, 나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느냐고.
*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촬영 불가 구역의 사진은 작가 이불이 밤 비행기에서 처음 떠올린 태양의 도시 에서 발췌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을 인터뷰입니다.